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 새로운 과학기술시대를 꿈꾸는 사람들의 지침서
이준승 지음 / 생각의나무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 새로운 과학기술시대를 꿈꾸는 사람들의 지침서

     _이준승 (지은이) | 생각의나무

 

 

 어떤 눈으로,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대상의 사물은 달라진다. 세상을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 반드시 한 곳에 고정시킬 필요는 없다. 이런 관점, 저런 관점에서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이 균형 잡힌 일상이라고 생각 든다.

 

 

이 책은 연구 현장의 과학자이자 과학기술정책 기획자인 이준승 박사의 혜안과 고민을 담고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작은 성과에 급급했던 '조급한 성과주의'를 벗어나 대혁신을 위한 '슬로 사이언스'를 외친다. 지은이는 균형감각과 비전을 가지고 문화와 시스템 측면에서 우리 과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한 나라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시기와 과학기술의 흥함은 그 궤를 같이 한다. 그 나라가 융성할 때 과학기술도 찬란하게 꽃을 피웠던 것이다. 이는 역사가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명백한 사실이다.

 

 

스웨덴 패러독스(Swedish Paradox)가 있다. 볼보자동차로 유명한 유럽의 대표 강소국 스웨덴은 GDP3.75%를 연구개발에 쏟을 정도로 연구개발에 대한 국가적 열정이 높다. GDP 대비 연구개발비는 단연 세계최고수준이며 다양한 분야에서 유용한 기술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스웨덴이 좋은 기술을 기업의 수익으로 연결하는 데 몹시 서투르다는 것이다. 이를 스웨덴 패러독스라 부른다. 지은이는 투자규모 면에서 정점을 향해 달리고 있는 한국이 스웨덴과 같은 상황에 빠지지 않고 원전 수출과 같은 경제적 결실을 맺으며 또한 그런 성과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으려면, R&D(Research and Development)투자가 양적, 학술적 성과로만 머물지 않고 일자리와 기업의 창출로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는 무엇보다 혁신 주체간의 연결과 지식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져야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너 나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세상. 빠름이 미덕이 되는 세태의 흐름에 역류현상이 있다. 바로 '슬로 라이프'(Slow Life)'이다. 슬로 라이프 운동을 이끄는 일본의 유명한 환경운동가 츠지 신이치는 이러한 삶을 무한경쟁, 속도전, 대량생산과 소비, 패스트 이코노미에 맞서 느림, 친환경, 지속가능 발전을 화두로 삼는 삶이라고 말한다. 종종 느린 것은 곧 뒤처짐으로 인식되기도 하는 풍토에서 '슬로 라이프'를 지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대 비즈니스에선 터부시될 수도 있다. 한정된 자원과 시간 속에서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이 비즈니스의 목적이라는 관점에서 그러하다.

 

 

'슬로 라이프'에서 '슬로 사이언스'가 나온다. 진정한 녹색성장을 위해서는 최종 연구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인내하고 고통을 감수하는 과학자의 마인드로 돌아가 지속가능한 친환경 과학기술의 구상과 창조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지구온난화가 가뭄과 홍수, 폭염, 생태계 파괴 등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면서 인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의한 경제 손실이 매년 세계 GDP 5%를 차지할 만큼 세계 경제는 환경 파괴로 인해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또한 선진국의 삶의 질 재고, 중국 및 인도 등의 급속한 산업화가 맞물리면서 20세기 에너지 수요는 급격히 증가해왔다. 그 외에도 광물 자원과 원자재의 수급 불안은 국제 사회의 주요한 이슈다.

 

 

지은이는 이런 과제를 맡아 해결해야 할 위치와 역할을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의 개발을 담당하는 과학자에게 두고 있다. 따라서 과학자에게 과학적 윤리, 사회적 책임, 신뢰 등에 책임을 져주길 원하고 있다. 즉 과학자 및 과학기술 관련 기관들은 미래사회의 다양한 과학기술적 수요와 사회적 책무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 싱크탱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존재와 표현 - 메를로-퐁티의 애매성 철학에 대한 비판적 해석
박이문 지음 / 생각의나무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다시 간단하게 정리하면, 메를로-퐁테 철학에 나타난 ‘표현‘ 개념에 대한 존재론적인 탐구다. 존재론으로 여러 가지 철학적 난제들을 풀지는 못하지만, 대부분의 철학적 문제들을 열수 있는 길을 안내해 줄 수 있는 기능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존재와 표현 - 메를로-퐁티의 애매성 철학에 대한 비판적 해석
박이문 지음 / 생각의나무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존재와 표현 - 메를로-퐁티의 애매성 철학에 대한 비판적 해석

   _박이문 (지은이) | 생각의나무

    

    

"주관과 객관의 관계에 대한 탐구는 현상학의 핵심적인 문제다." 프랑스의 현상학자 메를로-퐁티가 한 말이다. 이 책의 지은이 박이문 교수는 메를로-퐁티가 경험주의와 주지주의에 대해 행했던 비평이 옳았다고 인정되는 부분이 있지만, 그의 철학적 문제 중 하나인 '언어 이전의 언어적 의미'라는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은이가 주장하는 '존재-의미 매트릭스(onto-semantical matrix)'라는 개념의 도입과 그 이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본 논문()의 중심 논지다.

 

 

책은 3 챕터로 되어 있다. 1,2 챕터는 실재하는 모든 것들의 궁극적인 본성에 대한 메를로-퐁티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3 챕터는 지은이가 메를로-퐁티가 불충분한 상태로 멈췄던 지점을 넘어서서 주제를 더욱 더 발전시켜가려는 시도를 펼쳐나가고 있다. 지은이는 이 책의 키워드이기도 한 주관과 직관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 관계 속에서 주관은 '표현하는 자 (expressor)'이며, 반면에 객관은 '표현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그런 관계로 인식되어야 한다."

 

 

메를로-퐁티는 지각된 대상은 필수적으로 주관(의식)과 관련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이는 곧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은 내적으로 의식과 연관됨을 의미한다. "우리는 지각되지 않거나 지각할 수 없는 어떤 것도 인식할 수 없다. 버클리가 말했듯이 심지어 미지의 사막이라도 최소한 어떤 한 사람에 의해서 관찰되어야 한다. 즉 내가 그것에 대해 생각할 때의 나 자신, 내가 그것을 순순하게 정신적 경험에서 지각할 때다. 대상(사물)은 그것을 자각하는 사람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 퐁티

 

 

절대적인 엄밀성과 확실성을 가지고 선객관적 세계 또는 체험세계에 대해 완전하게 기술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퐁티의 현상학을 설명하면, 선객관적 세계에 대한 절대적 기술, 다시 말해 기술을 행하는 주체의 특수성에서 비롯되는 무(nothing)를 통합하는 기술의 불가능성은 바로 지각의 구조 그 자체에서 비롯된다. 지각은 지각하는 주체와 그 주체에 의해 지각된 대상을 함께 포함한다. 선객관적 세계에 대해 절대적인 엄밀성과 완전성을 가지고 기술이 불가능 한 것은 다음의 두 가지 근본적인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 이유는 주체의 구조로부터 발생하며, 두 번째 이유는 대상의 구조에서 발생한다. 퐁티는 지각은 이미 주체와 그의 세계에 대한 '표현'이라고 했다.

 

"모든 지각, 그리고 그것을 전제하는 모든 행위, 즉 몸을 사용하는 모든 인간의 행위는 이미 원초적으로 표현이다. 이러한 원초적 표현은 어딘가에서 그것들의 의미와 용법으로 주어지는 표현된 기호라는 것을 대체하는 이차적 행위가 아니라, 최초에 기호로써 기호를 구성하는 근원적인 작용이다. 그리고 그것들의 배열과 구성을 통해 표현된 것이 그것들 속에 거주하는 것이며, 의미가 발생하는 그 즉시 그 의미 자체가 완전해 지는 것이 아닌, 다시 말해 그 의미를 하나만 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미를 이식하는 것이고, 제도나 전통을 발견하고 질서를 새로이 여는 것이다."

 

 

퐁티에게 철학이 표현이라면, 지각과 철학은 예술가와 그의 작품, 화자의 사고와 그가 사용하는 언어, 인간 집단 혹은 사회적 집단과 그것의 역사 간의 관계와 같은 구조를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표현'으로써의 지각은 지각대상에 독립적이지 못하다. 지각된 혹은 인식된 대상을 주체와 그의 세계 둘 다의 표현으로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 그 이유이기도 하다. 퐁티는 예술현상학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예술과 관련된 철학적 질문들에 대해선 명확한 답변을 못하고 있다. 미와 추에 대한 정의. 미적 판단의 기준 등과 같은 예술에 대한 중요한 철학적 문제들을 그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예술에 대한 그의 관심은 오직 미적대상으로써의 예술작품과 예술가의 행위 사이의 관계, 즉 미적 경험에서 발견되는 의식과 그 대상 사이의 관계였다.

 

 

지은이는 '존재론적' 사유를 목적으로 하고, '있음(there is)'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조건들을 결정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길 원한다. 표현된 것 또는 인식되는 과정 중의 대상의 존재론은 무엇인가? 앎의 내용을 '있는 것'과 동일시해야 하는가? 또한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올바르게 진술하기 위해 이러한 성격 규정을 넘어서야 하는가? 에 대해 답해보고자 한다. 그 내용이 챕터3에 실려 있다. 궁극적 실재는 '표현하는' 과정이고 '있는 것(being)'은 궁극적으로 '표현하는' 행위로 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표현의 존재론'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지은이의 논지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장점이라는 언급도 함께 한다.

1) 이론적 경제성 : 표현의 존재론은 실제로 존재하는 모든 현상들 심지어 잠재적 현상들까지도 단일한 실재로 해명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일원적 존재론이기 때문에 설명될 수 없는 사물들의 수는 최소한으로 남겨진다. 이런 점에서 이는 설명될 수 없는 하나 이상의 실체들을 남겨두는 이원론이나 다원론보다 더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다. 2) 유물론적 존재론 또는 관념론적 존재론, 심지어 스피노자나 사르트르의 일원론에 비해 '표현의 존재론'은 모든 형태의 일원론들이 필연적으로 빠지게 되는 역설에서 벗어나는 데 유리하다. 3) 마지막 장점은 '표현의 존재론'이 가설이나 그 자체로는 진리임을 밝히거나 설명 할 수 없는 설명을 위한 원리로 제안되거나 가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그보다 '표현의 존재론''의식은 필연적으로 무엇에 대한 의식'이라는 현상학적 근거와 경험의 다양한 양태들을 통해 우리가 경험하는 대상에 대한 현상학적 기술이라는 지반 위에 세워진다. '표현(expressing)'개념은 하나의 가설이거나 단순하게 임시방편으로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 아니다. '표현'의 과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이 책을 다시 간단하게 정리하면, 메를로-퐁테 철학에 나타난 '표현' 개념에 대한 존재론적인 탐구다. 존재론으로 여러 가지 철학적 난제들을 풀지는 못하지만, 대부분의 철학적 문제들을 열수 있는 길을 안내해 줄 수 있는 기능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 든다. '존재론'적 사유가 결국 철학의 문을 들어서기 위한 첫 발이 아니던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괴물이 된 그림 - 우리를 매혹시키는 관능과 환상의 이야기 ART & ESSAY 1
이연식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인간이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 등의 작품에 괴물이 존재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괴물성을 표현한 것일까? 아니면 불쑥불쑥 일어나는 불안감을 몰아내기 위해 괴물의 이미지를 방패막이로 삼는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괴물이 된 그림 - 우리를 매혹시키는 관능과 환상의 이야기 ART & ESSAY 1
이연식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괴물이 된 그림 - 우리를 매혹시키는 관능과 환상의 이야기

       _ 이연식 (지은이) | 은행나무

    

 

인간이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 등의 작품에 괴물이 존재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괴물성을 표현한 것일까? 아니면 불쑥불쑥 일어나는 불안감을 몰아내기 위해 괴물의 이미지를 방패막이로 삼는 것일까?

 

 

두말 할 나위 없이 괴물은 이미지다. 형상을 지닌다. 15세기 그뤼네 발트가 그린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이란 그림과 설명부터 시작된다. 괴물이 유혹을 한다는 것은 '얼굴 없는 미녀'라는 말처럼 공허하게 들린다. 일단 괴물이 유혹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괴물의 이미지나 형상을 보면 우선 긴장하며 움츠러들 것이다. 경계하고 도피하는 수순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림에는 하나같이 '유혹'이 붙는다. 아마 그림 속에서 당하는 입장에 처한 사람 눈에는 괴물의 형상이 아닌 '유혹' 그 자체의 이미지로 보이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의 지은이는 '괴물'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한다. "괴물은 나와 다른 것, 바깥 세계의 존재, 혹은 말할 수 없이 매혹적인 것을 일컫고, 스스로 가늠할 수 없고 제어할 수 없는 내면의 충동과 광기를 가리키기도 한다. 안팎에서 존재하며 작용하는 불가항력의 힘이 괴물인 것이다. 따라서 그림 속에 제 모습을 나타낸 괴물을 들여다보는 것은 인간 내면과 바깥을 탐구하는 일이며, 동시에 인간의 문화에 대한 탐구이다." 세이렌과 스핑크스는 수많은 화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앞 다투며 그림을 그려냈다. 세이런은 나중에 인어공주로 변신해서 이미지 전환을 한다. 귀스타브 모로의 스핑크스는 깃털 달린 날개를 위로 바짝 치켜들고, 머리는 마치 불꽃처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묻는다. 대체 저 머리는 누가 저렇게 치장해 주었다는 말인가? 별게 다 걱정이다. 그러나 나도 궁금하다. 화가에게 묻고 싶다. 슈투크의 스핑크스는 알몸이다. 암사자처럼 엎드려 있다. 남성들을 무장해제 시키려는 의지가 온 몸에 충만해있다.

 

 

()은 상서로운 동물로 그려지고 있지만, 역시 괴물이다. 동양의 용과 서양의 용은 다르다. 동양에서 용은 구름과 비를 부리는 신령스러운 존재이다. 용이 번개와 천둥, 파도와 폭풍우를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서양의 용은 대개 거대한 몸집에 박쥐의 날개가 달렸고, 꼬리에 가시가 달린 도마뱀 또는 뱀의 형상을 지녔다. 입에서 불길을 토하고 코에서 유독한 가스를 뿜어낸다. 괴물의 또 다른 이름은 '악마'. 기독교에서 악마는 일반적으로 사탄(satan)이라고 불린다. 그림 속 악마의 이미지는 만만치 않게 많다. 그래도 앞서의 세이렌이나 스핑크스에 비하면 평준화되어 있는 느낌이다. 악마는 하나님에게 반항했다가 추락하면서 흉측한 모습이 된다. 손발은 짐승의 것으로, 손톱은 갈고리 손톱으로, 코는 새의 부리로, 깃털 날개는 박쥐와 같은 가죽 날개로 바뀌었다. 악마의 몸뚱이가 검은 것은 빛이 결여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날개는 필수다. 그래서 악마는 잘도 돌아다닌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사실주의 화가 일리야 레핀의 그림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라는 그림을 보면 나의 심경까지 복잡함으로 채워진다. 유배지에서 오래도록 고생하다가 집으로 돌아온 정치범과 그를 맞는 가족의 당혹스러운 모습을 보여 준다. 주인공의 홀쭉하고 어두운 얼굴에는 집으로 돌아왔다는 기쁨과 안도감, 가족들이 자신을 어떻게 맞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뒤엉켜있다. 아마도 가족들은 오랫동안 가장이 없는 삶에 몸과 마음을 적응시켜 왔음에 틀림없다. 흉터는 남았지만, 고통은 사라진 듯하다. 그런데 가장이 갑자기 돌아왔다. 가족들의 반응은 복잡하다.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기뻐하거나 낯설어 하거나 불안해한다. 노모는 기쁨과 놀라움에 사로잡혀 마치 유령을 보는 것 같은 모습이다. "괴물은 달리 있는 게 아니다. 여기 없어야 할 존재가 여기 있으면 괴물이다."라는 지은이의 표현이 참으로 적절하다

 

 

인간이 만든 조각이 생명을 얻은 경우도 이 책의 테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하다.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의 전설이다. 르네상스 미술을 이해하려면 역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스터디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피그말리온이 조각한 새하얀 상아 미녀가 여신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사람이 된다. 해피 엔딩이다.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는 종종 여성을 피조물처럼 여기는 남성의 욕망을 가리키는 장치가 된다. 버나드 쇼의 희곡[피그말리온]에 나오는 여주인공이나, 히치콕 감독의 영화 [현기증]에서 나오는 여주인공이 그 모델이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의 결말은 해피 엔딩이 아니다.

 

 

이 책엔 95개의 도판(그림)과 수십 권의 참고문헌이 들어있다. 지은이의 열정이 느껴진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본다. 괴물은 그저 이미지에 불과할까? 아니 설령 이미지로 머물지언정 우리 주변엔 인간의 형상을 한 괴물이 없는 곳이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 든다. 어떤 형상을 하고 있던 우리 마음에 괴물로 그려진다면 괴물 맞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