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징 브레인 - 생생한 뇌로 100세까지 살아가기
티머시 R. 제닝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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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정상적으로 움직여주는 것은 뇌이다. 정신이다. 몸이 좀 불편하다고 해서 머리까지 이상해지는 것은 별로 없으나, 뇌 기능이 원활하지 못하면 몸은 통제가 안된다. 이 책을 통해 과학연구에 근거한 뇌 건강 원리를 이해하고 실천방법을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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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4-29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말씀입니다 :)

2021-04-29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숨이 차오를 때까지 - 제3회 웅진주니어 그림책 공모전 입상 웅진 우리그림책 72
진보라 지음 / 웅진주니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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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달리기가 아닌, 오래 달리기가 테마이다. 아이들에게 ‘꾸준히‘, ‘끝까지 잘 하기‘라는 메시지를 심어주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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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 젖은 땅 - 스탈린과 히틀러 사이의 유럽 걸작 논픽션 22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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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 젖은 땅 】- 스탈린과 히틀러 사이의 유럽

_티머시 스나이더 / 글항아리


“20세기 중반 유럽 대륙의 중앙부에서, 나치 독일과 소비에트 러시아는 약 1400만 명의 사람을 살육했다. 그 희생자들이 쓰러져 간 땅, 블러드랜드(Bloodlands)는 폴란드 중부에서 러시아 서부, 우크라이나, 벨라투스, 발트 연안국들에 이른다.”


이 책의 저자 티머시 스나이더 교수는 중유럽 및 동유럽사와 홀로코스트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다. 그간 출간되었던 홀로코스트 관련도서와 다른 점은 보다 깊고 넓게 관련 자료들을 정리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유럽 16개 기록보관소를 뒤져 새롭게 찾아낸 감춰진 역사의 기록을 이 책에 담았다.


책의 시작 부분은 스탈린이 소련을 굶주림에 빠뜨리고, 동족에게 테러를 벌인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히틀러가 저지른 만행, 전쟁 전후의 인종청소 등으로 이어진다. 스탈린 치하의 1930년대 후반, 가장 박해받은 유럽의 소수 민족은(주로 이민 때문에 수가 줄어든) 약 400만 명의 독일계 유대인이 아니라, (주로 처형 때문에 수가 줄어든)600만 명에 달하는 폴란드계 소련인이었다. 스탈린은 민족 대학살의 선구자였고, 폴란드계는 소련의 소수 민족 중에서도 가장 처참한 피해자였다.


히틀러에게 유대인 학살은 Plan B였다. 동유럽 정복이 지지부진하고 실패로 돌아갈 상황을 느끼자, 첫 번째 목표를 성취할 수 없다면, 두 번째 목표라도 이루고자 했다. 곧 유대인을 위한 ‘마지막 해결책’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1941년 히틀러 충신들에 의해 “유럽 내 유대인의 생물학적 박멸”이란 섬뜩한 플랜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히틀러의 꿈 실현자 중에 힘러가 있었다. 그는 과잉인구와 쓸모없는 식충들을 분류하고, 유대인들에게 낭비되는 식량을 아껴야 한다고 주장했다. 힘러와 하이드리히는 괴링으로부터 마지막 해결책 수립에 관한 공식 권한을 받아냈다.


왜 유대인들이 타깃이 되었는가? 여러 이유가 있지만, 양차 대전 사이 상당수의 유럽인은 유대인들을 공산주의와 결부시켜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독일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선전거리로 써먹을 만 했다. 사실 이 기간에 유럽 각국의 공산당은 평당원들은 물론이고 특히 지도부의 태반이 유대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실 하나만으로 ‘마지막 해결책’을 실행한 것은 크게 잘 못된 일이다. 유대인들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도 국가 내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비난을 한 몸에 받았는데, 전쟁이 시작되고 소련 혹은 독일의 침공으로 국민국가 자체가 무너지자 유대인에 대한 책임 전가 유혹은 한결 더 커졌다.


모든 전쟁이 그러하지만, 2차 세계대전에서의 모든 죽음은 단지 숫자가 되었다. 저자는 중요한 질문은 오직 하나라고 한다. “어떻게 그토록 많은 사람이 폭력적인 최후를 맞게 할 수 있는가(있었는가)? 소련과 나치 독일 모두에서, 유토피아는 비전으로 제시되고, 현실과 타협되고, 대량학살로 실행되었다. 1932년에는 스탈린이, 1941년에는 히틀러가 그렇게 했다. 히틀러와 스탈린은 둘 다 특정 형태의 폭군 정치를 했다. 그들은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고, 자신들의 선택을 두고 적들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며, 수백만 명의 목숨을 빼앗고는 자신들의 정책이 필요하고 바람직했다고 주장했다.


“나치와 소련 체제는 사람들을 숫자로 바꿔버렸다. 그들 중 일부는 단지 추정치가 되어버렸고, 나머지 일부는 우리의 정밀한 추계를 통해 복원 될 수 있다. 이 숫자들을 찾고, 이를 통해 일정한 전망을 내놓는 작업이 절실하다. 인간의 마음을 가진 우리로서는, 그런 숫자들을 사람들로 돌려놓아야 한다. 우리가 그럴 수 없다면, 히틀러와 스탈린은 단지 우리의 세상을 마구 뜯어고쳤을 뿐 아니라, 우리의 인간성마저 개조했다는 뜻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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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쟁실록 - 전쟁이 바꾼 조선, 조선이 바꾼 세계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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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을 통해 조선 건국기 왜와 여진과의 전쟁부터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거쳐 서양의 침략 전쟁인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 이르는 조선의 모든 전쟁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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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쟁실록 - 전쟁이 바꾼 조선, 조선이 바꾼 세계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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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쟁실록 - 전쟁이 바꾼 조선, 조선이 바꾼 세계

_박영규 / 김영사

 

 

조선의 전쟁 중 양대 전란이라 함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왜구의 침략이다. 왜구의 침략은 임진왜란과 성격이 좀 다르다. 왜구라고 하면 해적 무리로 생각했으나, 그렇게 간단한 존재가 아니었다고 한다. 고려 말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왜구가 한반도를 침략한 횟수는 600회에 육박했다. 그 기간은 무려 70년에 이른다. 조선으로서는 누적된 피해와 전쟁 피로감이 상당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왜구의 병력이 많을 때는 3만에 이르렀는데, 이 때문에 고려 시대에는 수도 개경이 함락 직전에 이르기도 했다. 조선만 왜구에게 시달린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최강국 명()조차 왜구가 골치 아픈 존재였다. 명나라 입장에선 왜구가 조선을 발판삼아 또는 조선과 일본이 세력을 규합하여 중국 영토를 침략해올지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있었다.

 

조선이 항상 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조선의 왜구 토벌’ (대마도 정벌)도 세 차례에 걸쳐 이뤄졌지만, 조선의 여진 토벌(만주 정벌)도 역시 세 번이나 이어졌다. 여진은 발해가 거란에 멸망한 뒤, 지속적으로 거란에 저항하며 발해의 부흥을 시도한 발해 유민을 통칭하는 용어다. 여진은 원나라 말기부터 점차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해 요동 지역뿐 아니라 고려 땅도 위협하고 있었다. 고려 공민왕은 원의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예종 시절에 확보한 동북 9성으로 영토를 확대했고, 이 때문에 이곳을 터전으로 삼고 있던 여진 세력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고려와 여진이 자주 분쟁하던 차에 1391년 여진족이 함경도 만포진(압록강 중류의 나루터)과 갑산을 점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1392년 조선 왕조가 들어섰다.

 

여진족 입장에서 조선의 6진 개척은 커다란 위협이었다. 최윤덕의 파저강 토벌에 이어 6진까지 설치하자 건주의 여진은 늘 조선군의 대대적인 토벌이 있을까 봐 몹시 두려워했다. 이에 따라 건주위 여진의 수장 이만주는 부족들을 결합해 조선의 공격에 대응하려 했다. 이런 일은 세종이 죽고 문종이 왕위에 오른 뒤에도 계속 이어졌다.

 

세조가 즉위 한 이후 10여 년 동안 이만주나 여러 여진 세력과 화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던 중 명이 조선과 여진이 빈번하게 왕래한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이 때문에 명은 조선이 여진과 함께 자국을 공격할 수 있다는 의심을 품었다. 그러자 조선은 여진인이 평안도로 왕래하는 것을 금하고 함경도 길로만 내왕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우선 명의 요구를 들어주는 척하며 여진과의 화친도 유지하려는 계산이었다.

 

중종 이후로는 삼포왜란 등 왜구와의 전쟁이 잦아 북방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선조 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임진왜란 때는 명도 조선에 대군을 파병한 까닭에 여진을 누를 힘이 없었다. 그 틈을 이용해 여진 세력은 크게 성장했고 결국 건주위의 누르하치가 여진족을 통일해 후금을 건국했다. 이어 명을 무너뜨린 그들은 대제국 청()을 세웠다.

 

역사 대중화의 기수로 잘 알려진 이 책의 박영규 저자는 한 권으로 읽는 역사시리즈를 20여 년 동안 펴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조선 건국기 왜와 여진과의 전쟁부터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거쳐 서양의 침략 전쟁인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 이르는 조선의 모든 전쟁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평가한다. 아울러 그 전쟁의 과정에서 사용된 전술과 전략, 장수 운용과 무기 체계 등에 대해서도 상세한 설명을 덧붙인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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