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쟁실록 - 전쟁이 바꾼 조선, 조선이 바꾼 세계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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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쟁실록 - 전쟁이 바꾼 조선, 조선이 바꾼 세계

_박영규 / 김영사

 

 

조선의 전쟁 중 양대 전란이라 함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왜구의 침략이다. 왜구의 침략은 임진왜란과 성격이 좀 다르다. 왜구라고 하면 해적 무리로 생각했으나, 그렇게 간단한 존재가 아니었다고 한다. 고려 말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왜구가 한반도를 침략한 횟수는 600회에 육박했다. 그 기간은 무려 70년에 이른다. 조선으로서는 누적된 피해와 전쟁 피로감이 상당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왜구의 병력이 많을 때는 3만에 이르렀는데, 이 때문에 고려 시대에는 수도 개경이 함락 직전에 이르기도 했다. 조선만 왜구에게 시달린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최강국 명()조차 왜구가 골치 아픈 존재였다. 명나라 입장에선 왜구가 조선을 발판삼아 또는 조선과 일본이 세력을 규합하여 중국 영토를 침략해올지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있었다.

 

조선이 항상 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조선의 왜구 토벌’ (대마도 정벌)도 세 차례에 걸쳐 이뤄졌지만, 조선의 여진 토벌(만주 정벌)도 역시 세 번이나 이어졌다. 여진은 발해가 거란에 멸망한 뒤, 지속적으로 거란에 저항하며 발해의 부흥을 시도한 발해 유민을 통칭하는 용어다. 여진은 원나라 말기부터 점차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해 요동 지역뿐 아니라 고려 땅도 위협하고 있었다. 고려 공민왕은 원의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예종 시절에 확보한 동북 9성으로 영토를 확대했고, 이 때문에 이곳을 터전으로 삼고 있던 여진 세력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고려와 여진이 자주 분쟁하던 차에 1391년 여진족이 함경도 만포진(압록강 중류의 나루터)과 갑산을 점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1392년 조선 왕조가 들어섰다.

 

여진족 입장에서 조선의 6진 개척은 커다란 위협이었다. 최윤덕의 파저강 토벌에 이어 6진까지 설치하자 건주의 여진은 늘 조선군의 대대적인 토벌이 있을까 봐 몹시 두려워했다. 이에 따라 건주위 여진의 수장 이만주는 부족들을 결합해 조선의 공격에 대응하려 했다. 이런 일은 세종이 죽고 문종이 왕위에 오른 뒤에도 계속 이어졌다.

 

세조가 즉위 한 이후 10여 년 동안 이만주나 여러 여진 세력과 화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던 중 명이 조선과 여진이 빈번하게 왕래한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이 때문에 명은 조선이 여진과 함께 자국을 공격할 수 있다는 의심을 품었다. 그러자 조선은 여진인이 평안도로 왕래하는 것을 금하고 함경도 길로만 내왕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우선 명의 요구를 들어주는 척하며 여진과의 화친도 유지하려는 계산이었다.

 

중종 이후로는 삼포왜란 등 왜구와의 전쟁이 잦아 북방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선조 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임진왜란 때는 명도 조선에 대군을 파병한 까닭에 여진을 누를 힘이 없었다. 그 틈을 이용해 여진 세력은 크게 성장했고 결국 건주위의 누르하치가 여진족을 통일해 후금을 건국했다. 이어 명을 무너뜨린 그들은 대제국 청()을 세웠다.

 

역사 대중화의 기수로 잘 알려진 이 책의 박영규 저자는 한 권으로 읽는 역사시리즈를 20여 년 동안 펴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조선 건국기 왜와 여진과의 전쟁부터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거쳐 서양의 침략 전쟁인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 이르는 조선의 모든 전쟁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평가한다. 아울러 그 전쟁의 과정에서 사용된 전술과 전략, 장수 운용과 무기 체계 등에 대해서도 상세한 설명을 덧붙인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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