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천재적인
베네딕트 웰스 지음, 염정용 옮김 / 단숨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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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은 한 젊은이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이 친구, 어둡고 긴 터널 한 가운데에 있다고 생각하는군요. 현재는 빛도 한 점 안 들어오고 있답니다. 사뮈엘 베케트의 [이름 붙일 수 없는 것(Unnamable)]의 마지막 구절이 딱 들어맞는 상황입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지? 모르겠어. 아마도 끝까지 모를 테지. 너는 알지 못하는 정적(靜寂)에 잠긴 채. 너는 반드시 계속해야 해. 나는 계속 할 수 없어. 나는 계속 할 거야."

 

2. 첫 무대는 정신병원입니다. 이 젊은이의 이름은 프랜시스구요. 프랜시스의 어머니가 입원해있습니다. 어머니 곁에 앉아서 프랜시스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눈을 감고서 자신이 절벽에서 뛰어내려 바닷속 깊숙이 입수하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자유란 바로 그런 걸 말하는거지."

 

3. 불면증과 피해망상의 그의 어머니. 어머니의 나이는 마흔 살입니다. 프랜시스는 18살을 앞두고 있는 고등학생입니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지요. 그에겐 이부(異父 兄第)가 있군요. 얼마 전까지 함께 살던 의붓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자 프랜시스의 동생은 따로 살고 있습니다. 좀 멀리서..

 

4. 프랜시스에게 끊임없이 제기되는 의문은, 도대체 내 친아버지는 누구냐입니다. 어머니는 그것을 전혀 알려주지 않는군요. 딱 한 번, 아주 멀리 있는 어떤 사람과 잠시 연애 관계에 있었다고 말했지요. 더 이상 들려주는 이야기가 없자. 나름대로 상상을 합니다. '아주 멀리'라는 말 뒤에는 로스엔젤레스에 놀러 왔다가 레이커스 경기를 관람하고 나서 어머니와 하룻밤을 보내고 떠난 여피족 건달 녀석이 있을 수 있다는 추측까지 합니다.

 

5. 사는 형편이 궁색합니다.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입원해있고, 모아 놓은 돈도 없고, 이혼한 의붓아버지가 생색내며 보내주는 얼마 안 되는 돈은 어머니 치료비로 다 들어가고, 참 한심합니다. 수업이 끝나면 알바로 일을 해야하니 공부가 될리가 없지요.

 

6. 프랜시스는 그저 모든 것에서 놓여지고, 떠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뭘 해보고 싶어도 방법이 안 떠오르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결정적으로 고등학교에서 유급이 확정되는군요. 나름대로 말썽없이 학교 생활은 했지만, 성적이 협조를 안 해줬군요. 잠시 정신이 돌아온 어머니가 그것을 알고 다음 해에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당연한 말을 늘어놓자. 프랜시스가 이렇게 답합니다. '이 지겨운 클레이몬트 고등학교를 1년 더 다니느니 차라리 군에 자원입대해서 이라크나 아프카니스탄의 전쟁터로 나가겠다'. 돈이라도 벌겠다는거지요. 프랜시스는 사실 이 말을 농담반 진담반 뱉어놓은 말이지만, 어머니는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7. 그리곤 잠시 맑은 정신의 어머니가 프랜시스에게 편지를 써놓곤 다시 상태가 안 좋아집니다. 그 편지엔 프랜시스가 그리도 궁금해하는 출생의 비밀이 적혀 있군요. 이 소설의 진입부가 좀 지루한 듯 하던 참에 분위기가 바뀌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편지의 키워드는 "넌 시험관 아기였단다, 프랜시스" 프랜시스의 어머니는 단지 이 말을 전해주고 싶어서 지난 과거를 해명합니다. "나는 이 사실을 너에게 차마 알려줄 수가 없었어. 그러나 넌 평범한 시험관 아기가 아니었어. 만약 이것이 너에게 위안이 된다면 말이야. 너는 특별한 유전자를 지니고 있단다."

 

8. 이 때부터 프랜시스는 그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한 장본인인 정자 제공자인 그의 아버지를 찾아나섭니다. 아, '정자 은행' 들어보셨지요? 국내에도 공식, 비공식으로 추진되는 부분이지요. 문제는 불임 부부이기 때문에 시험관 아이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돈많은 어느 야심가의 프로젝트의 일환이었기 때문이지요. 불임부부도 포함되긴 했지만, 이를 주도한 먼로라는 백만장자는 단지 우생학적인 면에만 관심이 컸지요. 그러니까, 똑똑한 아이들만 낳아서 세상을 바꿔보자는 어찌 보면 매우 위험한 발상이지요. 먼로이야기론 천재들은 후손이 없는 반면 멍청이들은 자식들을 줄줄이 낳는다나 어쩐다나..

 

9. 그래서 태어 난 겁니다. 프랜시스가 정자제공자인 아버지를 찾아나섭니다. 긴 여행을 떠납니다. 웬지 그 아버지는 머리도 좋고, 건강하고, 잘 생기고 아뭏든 그를 만나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행길엔 프랜시스의 친구인 그로버가 동행합니다. 학교에서 왕따인 그를 프랜시스가 살갑게 대해주다보니 절친이 되었군요. 그리고, 엔메이라는 또래 아가씨가 함께 합니다.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정신병원에서 알게 되었지요. 엔메이는 자살을 기도하다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지요. 프랜시스의 여행길에 합류하기 위해 병원에서 탈출합니다.

 

10. 프랜시스는 아버지를 만났을까요? 예..물어물어 힘들게 만나긴 했습니다. 그러나 해피 엔딩이 아니네요. 자, 이젠 프랜시스는 다른 꿈을 꿉니다. 그가 자주 꾸는 꿈이 있습니다. 잠들어있을 때 말입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큰 돈을 따는겁니다. 아버지를 찾아 나섰을 때 4천 달러를 날렸지요. 다시 그는 그곳에서 배팅할 자금을 모으기 위해 2년 동안 열심히 일을 합니다. 드디어 5천 달러를 손에 쥐고 라스베이거스로 달려갑니다. 드디어 배팅. 50만 달러까지 법니다. 그리고 50만 달러 모두를 한 곳에 겁니다. 100만 달러를 만드느냐 다시 무일푼이 되느냐입니다. "검은색과 빨간색 숫자 칸을 들락거리던 공은 딸깍 하며 공이 최종적으로 어떤 칸에 떨어지는 소리가 납니다." 프랜시스는 숨을 멈춘 채 눈을 떠봅니다.

 

11. 젊은 작가 베네딕트 웰스는 이 소설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요? 나는 두 가지로 축약합니다. 소설에 나오는 세 젊은이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도 있는 캐릭터입니다. 작가의 분신이기도 하구요. 아무리 노력하면 뜻을 이룰 수 있는 세상이라지만, 한계는 있지요. 미국을 '꿈의 나라'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하루 아침에 신분상승도 이뤄질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극히 일부분이지요.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느냐가 평생을 가고, 자손들에게도 대를 물려주게 되지요. 좋은 자질, 좋은 여건만 물려준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운명이려니 받아들여야 할까요? 주인공 프랜시스의 삶의 여정을 들여다보면서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을 생각하며 더욱 겸손해지렵니다. 올려다보는 것은 이제 그만하고 몸도 낮추고 마음도 낮추렵니다.

 

12. 또 하나는 유전자조작과 변형이 날로 더해가는 현대 유전공학의 위기감을 함께 느껴보자는 의도도 있습니다. 더하면 더하지 절대 덜해지지 않을 상황이지요. 우수한 두뇌들로만 채워지는 이 세상이 편해질까요? 나는 절대 그렇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닮은 꼴이라곤 전혀 없는 자갈로 이뤄진 담장 보셨지요? 그런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고, 세상의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면서 어우러져 가는 삶이면 되었지. 더 뭘 바랍니까. 그 이상의 것들은 모두 허상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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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뇌 - 당신의 위장이 스스로 생각한다
마이클 D. 거숀 지음, 김홍표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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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뇌가 두개골안에만 있다는 선입견을 버려야겠다. 이 책의 저자 마이클 거숀은 컬럼비아대학 해부학과에 재직 중인 신경 생물학자이다. 코넬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대 신경위장관학의 대부로 통한다.

 

2. 우리 몸에는 소화 기관을 따라 약 100미터에 이르는 신경계가 존재하고 이는 식도에서 항문까지 뻗쳐있다. 저자는 이 소화 기관 신경계에서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에 주목한다(95%가 창자에서 만들어진다). 또한 약물 혹은 우리가 먹는 음식, 기호식품이 소화 기관의 신경계와 어떤 상호 작용을 하고 있는지를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소화관에 관한 시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소화기관에 푹 빠져 있는 학자이다.

 

3. 세로토닌은 우리의 기분을 조절할 뿐만 아니라, 식욕, 수면, 근수축과 관련한 많은 기능에 관여한다. 또한 사고(思考)기능과 관련하기도 하는데 기억력, 학습에 영향을 미치며, 혈소판에 저장되어 지혈과 혈액응고 반응에 관여한다.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우울증, 불안증 등이 생긴다. 또한 식욕 및 음식물 선택에 있어서 중요한 조절자로 작용하며 탄수화물 섭취와 가장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소적으로 세로토닌이 증가하면 식욕이 떨어지게 되고, 감소할 경우에는 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한편 세로토닌은 생체 내에서 비교적 빠른 속도로 파괴된다. 저자의 노력은 세로토닌의 빠른 분해와의 싸움으로 모아진다.

 

4. 이 책을 읽다보니, 꽤 오래전에 출간된 '제3의 뇌 / 야기다 이스께 외 / 광명출판사. 1985년'가 오버랩된다. 인간의 두뇌에는 좌뇌와 우뇌 사이에 위치한 간뇌(間腦)가 있다. 일반적으로 좌뇌는 지성의 장소이고, 우뇌는 정서의 장소라고 알려져있다. 이 지성과 정서를 통합하여 비약, 승화 시키는 간뇌가 곧 제3의 뇌이며 '영성(靈性)의 자리'라고 이야기한다. 그 뒤에 이어지는 스토리는 다분히 추상적이고 초종교적인지라 대중적인 호응도는 미약했다.

 

5. 그러나, 이 책에 적힌 내용들은 실질적이고,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다. 건너뛰어 제3의 뇌까지 간 사람이 있었지만, 차분하게 제2의 뇌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내 안의 신세계 : 소화 기관 신경계를 향한 첫 발걸음.  대장정 : 입에서 항문까지.  제2의 뇌의 기원, 그리고 소화 기관 기능이상.

 

6. 이 책의 키워드이기도 한 '소화기 신경과학'은 소화 기관에 정말로 제2의 뇌가 있다는 초기의 발견으로부터 비롯된다. 거슬러 올라가면 19세기 영국의 과학자 베일러스와 스탈링부터라고 기록되어있다. 이들은 동물 실험을 통해 중추 신경계 부위를 끊었음에도 불구하고 소화 기관의 연동 운동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관찰하게 된다. 즉, 소화기관은 중추신경 즉, 뇌와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7. 소화기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다 : 위는 단순히 음식물을 보관하는 기관은 아니다. 큰 음식물의 덩어리를 개고 섞어서 작은 분말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위 다음 단계의 소화 기관인 소장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다. 음식물 덩어리가 큰 채로는 절대 위를 통과해 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위는 음식물을 저장할지, 혹은 개서 반죽을 해야 할지, 휘저어야 할지 혹은 소장으로 내려보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소화 기관의 활성은 시시때때로 변하고 가끔 가다가 정반대의 일을 할 때도 있다.

 

8. 뇌의 주요한 기능이 정신 질환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이미 상식수준이다. 따라서 중추 신경계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소화 기관의 기능도, 역시 중추 신경계가 정신적인 질병을 다룰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영향을 받으리라고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정신 질환이 있는 환자가 역시 소화 기관의 이상을 지니고 있다는 점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거식증, 폭식증 등이 바로 그것이다.

 

9. 흥미로운 것은 어떤 종류의 성격 장애는 사회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항문 조임근을 조절하는 방식을 학습하는 것과 관련된다는 것이다. 깐깐하다거나(anal-retentive) 강박증이 있는(obsessive)성격이라는 말은 의학에서 시작되어 문학이나 일상용어로 넘어간 경우다. 따라서 신경성 소화기 질환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대중사이에 스며들어갔다.

 

10. 이 책을 옮긴이 김홍표 교수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소화 불량이라는 말은 다른 영역에서도 간혹 사용된다. 가령 전 지구적 소화 불량은 지구를 둘러싼 대기의 산소량을 설명 할 때 등장한다. 대량의 유기 물질, 즉 식물체가 산소를 소모하지 않은 상태로 매장되었기 때문에 산소의 양이 증가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또 세포의 소화 불량을 얘기하기도 한다. 세포가 어떤 세포를 잡아먹고 미처 소화하지 못한 것이 식물의 엽록체이고 우리의 미토콘드리아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진짜 소화 불량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제 거숀 박사를 따라 우리 몸의 외부로 여행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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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만든 책들 - 16가지 텍스트로 읽는 중국 문명과 역사 이야기
공상철 지음 / 돌베개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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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을 만든 책들은 또한 중국이 만든 책이기도 하다. 16가지 텍스트로 읽는 중국 문명과 역사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중국 문학을 전공한 저자 공상철은 중국의 문화적 자산을 문명 차원에서 재해석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옮긴 책으로는 루쉰의 『외침』이 있고, 중국 현대문학에 관한 몇 편의 논문을 썼다.

 

2. 중국을 연구하는 것은 인내가 필요하다. 그 이유는 시간의 두께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3천 몇 백 년의 시간 속에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 역시 중요하다. 그 시간의 지층들이 균질하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기에 더욱 힘들다. 울퉁불퉁한 역사의 단층대를 살펴보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다층의 ‘역사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얼굴의 ‘중국들’이 존재한다는 표현도 한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이란 존재는 오랜 기간에 걸쳐 역사적으로 형성된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3. 문학(文學)으로 중국을 설명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굵직한 문제의식들에 관심을 갖는다면, ‘중국’을 형성하는 존재론적 원리 같은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동양고전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중국이 우선 연상된다. 학문적 자료 역시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과연 중국의 문명적 자산이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끌어 낼 수 있을까? 중국의 초등학생들이 매일 아침 논어를 외운다고 하는 요즈음, 그 아이들이 이끌어갈 중국은 어떤 모습일까?

 

4. 기록이 없다면 구전으로 내려오는 설화정도 밖에 없다. 기록이 남아 있어야 문명의 옷을 걸친다. 따라서 문명의 역사는 곧 '책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책에서 저자는 책을 통해 중국의 역사 단층을 더듬고 있다. 저자의 이런 표현에 공감한다.“우리 앞에 버티고 있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공룡, 그것도 심각한 변비로 신경질 그득한 이 공룡의 행보와 동선이 향후 한반도의 삶과 직간접으로 연관된다. 이는 정세 분석이나 동향 연구, 담론적 접근만으로는 어렵다.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이를 가능케 하는 문화생리학적 맥락을 짚어보는 일, 여기에 이 책의 일차적인 목표가 있다.” 

 

5. 『세계의 무늬 갑골문』에서 양수명의 『동서 문화와 그 철학』까지 이어지는 열여섯 이야기를 통해 중국이라는 나라의 이력을 개괄적으로나마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고대 중국의 하늘은 ‘거룩한 말씀’대신 신비한 무늬의 형태로 강림했던 것 같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 날 황하(黃河)에 용 한 마리가 나타났는데, 그 등 비늘에 신비로운 무늬가 어른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이 무늬에 ‘황하의 도상’, 즉 ‘하도(河圖)’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무늬에 근거해서 팔괘(八卦)가 만들어졌다.

 

6. 우리가 통상적으로 쓰는 ‘도서(圖書)’라는 단어가 이 하도낙서(河圖洛書)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거북딱지나 물소 뼈에 새겨진 책들은 갑골문(甲骨文)으로 명명되어 중국사의 연대기를 훌쩍 앞당겨 놓았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상(商)나라-혹은 은(殷)나라로 불리는 기원전 1700년경에서 기원전 1100년경까지 존재한 왕조-의 실체가 이로부터 빛을 보게 된다.


7. 그 발견은 정말 우연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백여 년 전인 1899년, 북경에 왕이영(王懿榮)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그런데 그가 학질에 걸리자 몸에 좋다는 거북의 골편을 대거 사들였는데, 마침 그 집에 식객으로 있던 유철운이라는 자가 거기서 이상한 글자들을 발견하고는 급히 그에게 보인다. 평소 고대 문자 해석에 일가견이 있던 왕의영은 그 글자들을 보는 순간 입을 못 다문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상나라 문자가 거기에 빼곡히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골편의 출처는 안양 소둔촌이었다. 이런 식으로 출토된 골편의 수가 무려 16만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8. 책에 소개되는 도서들은 다음과 같다. 『시경(詩經)』,『주역(周易)』,『논어(論語)』,
『산해경』(山海經), 『춘추번로』 (春秋繁露) , 『사기』(史記) ,  『설문해자』(設文解字),『노자주』(老子注),  『전당시』 (全唐詩),  『벽암록』(碧巖錄),  『사서집주』(四書集注),『천주실의』 (天主實義),  『명이대방록』 (明夷待訪錄).  [외침] (吶喊),  『동서 문화와 그 철학』등이다.

 

9. 책 한 권에 열 여섯 이야기를 풀어놓으려니 저자도 숨이 가쁜듯하다. 읽는 나도 한참을 달려왔다. 책 제목은 본듯하나 내용은 낯선 친구들이 몇 보인다. 세계를 표상하기 『산해경』(山海經). 저자는 『산해경』이라 불리는 책은 신화라고 하기엔 좀 덜 체계적이고 판타지라 하기엔 덜 조직적이며 그냥 상상력의 집적물이라 하기엔 왠지 미진한, 그런 느낌의 세계로 설명하고 있다.

 

10. '어느 선교사와 유학자의 대화' 『천주실의』 (天主實義). 두 문명이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눈다. 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마두라 불리는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 또 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원양을 건너온 복음에 귀 기울이는 익명의 중국 유학자이다. 이 둘이 주고받은 교리 문답이 이 책의 내용을 구성하는데, 일방적인 교리의 설파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도타운 이해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교문명사적 가치를 갖게 된 텍스트이다.

 

11. 이 책은 저자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개설한 교양 강좌의 강의록이다. 한 편 한 편의 이야기가 그리 가볍다고 볼 수도 없고, 반대로 무겁다고 볼 수도 없다. 열 여섯 꼭지의 이야기가 스토리 텔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읽기에 지루한 감이 별로 없다. 싫든 좋든 중국 문학을 통하지 않고 동양고전의 숲을 들어갈 방법이 없다. 하도(河圖)라는 단어에서‘도서(圖書)’가 탄생했다니 멀리 하기엔 너무 가까운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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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더하기 삶 - 한국의 건축가 13인이 말하는 사람을 닮은 집
김인철 외 지음, 박성진 엮음 / MY(흐름출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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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집'이라는 공간은 더 이상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다. 사람이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곧 '집'이라는 환경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밖에서 시달린 몸이 빨리 가고 싶은 집인가, 아님 조금이라도 더 있다 가고 싶은가는 집안에 있을 사람과도 상관이 있겠지만, 어쨌든 '집'이 주는 편안함이 비중을 많이 차지할 것이다.

 

2. 이 책은 국내에서 내노라하는 13인의 건축가가 지은 집들에 대한 스토리다. [하우징 스토리]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다뤘던 건축가와 건축물을 재구성한 책이다. 진행자는 각 건축가들에게 묻는다. '좋은 건축이란?' 공통된 단어를 하나로 줄인다면, '삶'이다.

 

3. 사실, 이런 책은 불편하다. 난 어느 세월에 이런 집에 살아보나. 내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그런 기회나 오게 될까? 그러나, 최근 이런 류의 책. 집과 관계되는 책들을 연이어 보게되는 것은 나름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든다. 사람 일은 모르니까 마음 속에 그림이라도 그려보자.

 

4. 집을 하나의 작품으로 보고 싶다. 전원주택이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주거 밀집 지역에 있는 집이 아닌, 호숫가 근처 또는 절벽 끝머리쯤이나 강가 등이다. 스치듯 그런 집들을 보며 자연과 잘 어우러진 집들을 보면 그 안에 사는 건축주나 건축가가 착한 사람으로 그려지나, 그렇지 않고 내 고집만 내세워 지은 집들을 보면 불편하다. 그러니까, 집이 너무 튀어도 안 좋다는 이야기다. 집이 주위 자연환경을 살려주고, 자연환경은 집을 더욱 집답게 만들어준다면 그만이다.

 

 

 

5. 다행히 이 책에는 그런 집들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책은 4챕터로 구성되었다. @ 집 더하기 자연-푸른 달빛이 흐르는 집. @ 집 더하기 이웃-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집. @ 집 더하기 작업-일이 왠지 즐거워지는 집. @ 집 더하기 쉼-게으름이 살아 숨쉬는 집.

 

6. 처음 등장하는 집은 '은빛 호수 위의 점 하나'로 소개된다. 겉보기엔 투박한 듯 해 보이나 호수를 포함한 주변 경관을 손상시키지 않고, 마치 처음부터 그리 자리잡고 있었던 듯 차분하다. 건축가의 말이다. "저에게 설계를 의뢰하는 많은 분들이 처음 만났을 때 대부분 '예쁜 집 지어주세요'라고 말을 꺼냅니다. 그러면 저는 '그건 당연하고, 거기에 멋을 더해야죠'라고 답합니다. 제가 말하는 '멋'이란 어디 멀리서 찾을 수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집에 살 사람들의 일상에서 우러나오는 그들의 삶입니다.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잘 담아내는 건축이 바로 좋은 설계 아닐까요?"

 

 

 

7. 많은 건축물 중에서 특히 눈길이 머문 곳은 건축가 김억중의 리모델링 하우스 무호재(無號齋)다. 애물단지 단무지 공장이 보물단지로 변신했다. 건축가 김억중은 우연히 공주 계룡산 자락을 지나다가 본 허름한 단무지 공장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시큼시큼 썩은 단무지 냄새가 코를 찌르고 쓰레기에 뒤덮여 폐허가 되어버린 그 공장을 마주하자마자 흙 속의 진주를 발견한 듯 신이 났다고 한다. 

 

 

 

 

8. 꽤 튼튼한 골조로 만들어진 단층의 노출콘크리트 구조물. 에라, 모르겠다, 그는 그 공장을 발견한 날 바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다 더해봐야 10여 곳 겨우 넘는 이웃집과 산자락 풍경이 고즈넉한 시골마을. 그 대단한 변신의 과정을 보면서 역시 건축가의 안목은 다르구나 하는 마음을 느낀다. 마음에 드는 구조다. 특히 서재가 정말 마음에 든다.

 

 

 

9. 사(買)두기 위한 집이 아니라, 사람이 살기(生)위한 집. 우린 그런 집에서 살다가야 정상이다. 사람이 건강하면 집도 건강해지고, 집이 건강하면 사람도 건강해진다. 크고 화려하고 전망이 좋다고 모두 좋은 집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조악한 환경일지라도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합해지느냐 흩어지느냐를 생각해본다. 죽을 때 갖고 갈수도 없는 집이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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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공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에리카 종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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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와 너가 저지르고 사는 일은 크게 두 가지다. '뭐 그렇게까지?' 또는 '최소한 이렇게는 해야지!'이다. 70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력적인 여성 에리카 종은 후자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는 쓰고 살아야지.'를 느낀다. 물론 그녀의 말이 아니고, 내 생각이다.

 

2. 자전적 소설을 읽을때는 특히 마음문을 활짝 열어줘야 한다. 쓰는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아마도 썼다 지웠다 할 수도 있다. 이것 빼고 저것 빼다가 아무 것도 안 남자 그만 포기하고 다 쏟아놓았을 지도 모른다.

 

3. 이 책 비행공포(Fear of Flying)가 출간 된 것은 1973년이다. 올해 꼭 4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지금 읽어도 '어허~' 하며 읽어야하는데 아무리 동,서양이 성(sex)과 적나라한 솔직함을 받아들이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큰 반향을 일으켰음에 틀림없다. '전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는 표현이 이해된다.

 

4. 책을 펼치자 도발적인 문장이 시선을 잡는다. "꿈의 학회 혹은 '지퍼 터지는 섹스'로 가는 길". 소설 속에서 이사도라라는 이름만 바뀐 작가는 빈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타고 있다. 117명의 정신분석 전문의와 함께 한다. 그 중엔 작가의 두 번째 남편도 섞여있다. (써 놓고 보니 이 표현이 적절하다. 이사도라의 남편은 그 많은 남자들 중 한 사람일 뿐이다).

 

5.모름지기 작가는 관찰력과 상상력이 뛰어나야한다. 그 다음엔 표현력이 요구된다. 에리카 종은 이 모두를 갖추었지만, 특히 관찰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사람들에 대한 묘사. 그들의 내, 외면의 모습을 어찌 그리 섬세하고 리얼하게 묘사했는지 감탄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모두 실존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에리카 종의 가족들, 친구들, 전 남편, 그녀와 사랑을 나눴던 남자들.('사랑'이라고 쓰고 '섹스'라 읽는다). 여전히 그녀는 세번 째, 네 번째 남편과의 결혼 생활을 낱낱이 담은 소설을 속속 출간하고 있다. 내 모든 것이 까발려지지 않기 위해선 그녀와 거리를 둘 일이다. 그녀의 남편들은 이를 각오하고 그녀와 결혼했을까. 얼떨결에 당했을까 궁금해진다.

 

6. 이 소설 속에 자리잡은 그녀의 남편은 베넷이다. 자유분방한 섹스 라이프를 추구하는 여인이 또한 결혼생활의 공백을 감당못하는 것도 아이러니 하다. 대담한 듯 하면서도 사실 이 여인은 여린 편이다. 포비아도 의외로 많다. "나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공포를 갖고 있다. 비행기 추락, 성병, 유리가루를 삼키는 것, 식중독, 아랍인, 유방암, 백혈병, 나치, 흑색종...., 아무리 건강한 것 같아도, 통증이나 상처가 전혀 없어도, 성병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다."

 

7.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녀가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뜨거운 열정을 그녀의 몸 안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마음 안에만 쟁여놓지 못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녀가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진실'이 외면되고 묻히는 것이다. 그녀에겐 '진상'으로 표현 될 수도 있는 그 진실. "진실을 말하는 건 위험하면서도 필요한 일이다. 내게 [비행공포]가 그랬다. 이 책을 쓰는 내내 나는 무척 두려웠고, 책이 출판된 직후에는 열렬한 찬사와 날선 비난을 동시에 감당해야 했다. 솔직함이 항상 인정받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그로 인해 감옥에 갈수도 있기에. 그러나 진실을 말하지 않는 작가는 오래갈 수 없다." _에리카 종

 

8. 최근 외국의 어느 여류작가(대학교수이기도)가 자신의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노출한 책을 출간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결혼도 했지만, 어느 유부남과의 사랑이야기를 가감없이 옮겼단다. 그녀도 비슷한 말을 했다. "나는 내가 겪은 일만 쓴다." 용감한 여인들이다.

 

9. 나는 이 책에서 에리카 종의 두 열정을 본다. 사랑에 대한 열정과 문학 즉, 글쓰기의 열정이다.   대학시절부터 시를 발표하여 이 소설이 발표되기 전 1971년 첫 시집 [과물과 식물] 등 다수의 시집을 펴냈다. "시인이나 소설가를 한 명씩 연구하면서 그들의 작품을 반복해서 읽고 그들이 어떻게 한 작품에서 또 다른 작품으로 변화해갔는지 연구했다. 여러 작가의 스타일을 몇 달 동안 모방해보기도 했다." 그녀의 문학에 대한 열정이 묻어 있는 부분이다.

 

10. 소설에는 국내 웹서점 어느 곳에서 틀림없이 걸어 놨을지 모를 금기어가 자주 튀어나온다. 그래서 못 옮겼다. 옮긴이는 이런 말을 했다. "고백하건대, 이사도라가 언급하는 작품들, 작가들, 사건들을 조사하고 각주를 다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건 거칠고 대범한 그의 언어를 적절한 수위의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말미에 작품 해설겸 추천사를 쓴 스티븐 캐프너 교수는 이 책이 에리카 종의 [비행공포]를 제대로 옮긴 최고의 번역본이고 유일하게 읽을 만한 번역본이라는 말을 했다. 이에 적극 공감한다. 80년대 중반 읽었던 조악한 번역본(일본책을 중역한 듯한)을 접했던 기억에 비하면 이 책은 진짜 제대로 된 책이다.  참, 그리고 그녀가 이 책에서 겪은 현재 상황은 20대 후반의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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