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만든 책들 - 16가지 텍스트로 읽는 중국 문명과 역사 이야기
공상철 지음 / 돌베개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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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을 만든 책들은 또한 중국이 만든 책이기도 하다. 16가지 텍스트로 읽는 중국 문명과 역사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중국 문학을 전공한 저자 공상철은 중국의 문화적 자산을 문명 차원에서 재해석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옮긴 책으로는 루쉰의 『외침』이 있고, 중국 현대문학에 관한 몇 편의 논문을 썼다.

 

2. 중국을 연구하는 것은 인내가 필요하다. 그 이유는 시간의 두께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3천 몇 백 년의 시간 속에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 역시 중요하다. 그 시간의 지층들이 균질하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기에 더욱 힘들다. 울퉁불퉁한 역사의 단층대를 살펴보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다층의 ‘역사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얼굴의 ‘중국들’이 존재한다는 표현도 한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이란 존재는 오랜 기간에 걸쳐 역사적으로 형성된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3. 문학(文學)으로 중국을 설명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굵직한 문제의식들에 관심을 갖는다면, ‘중국’을 형성하는 존재론적 원리 같은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동양고전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중국이 우선 연상된다. 학문적 자료 역시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과연 중국의 문명적 자산이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끌어 낼 수 있을까? 중국의 초등학생들이 매일 아침 논어를 외운다고 하는 요즈음, 그 아이들이 이끌어갈 중국은 어떤 모습일까?

 

4. 기록이 없다면 구전으로 내려오는 설화정도 밖에 없다. 기록이 남아 있어야 문명의 옷을 걸친다. 따라서 문명의 역사는 곧 '책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책에서 저자는 책을 통해 중국의 역사 단층을 더듬고 있다. 저자의 이런 표현에 공감한다.“우리 앞에 버티고 있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공룡, 그것도 심각한 변비로 신경질 그득한 이 공룡의 행보와 동선이 향후 한반도의 삶과 직간접으로 연관된다. 이는 정세 분석이나 동향 연구, 담론적 접근만으로는 어렵다.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이를 가능케 하는 문화생리학적 맥락을 짚어보는 일, 여기에 이 책의 일차적인 목표가 있다.” 

 

5. 『세계의 무늬 갑골문』에서 양수명의 『동서 문화와 그 철학』까지 이어지는 열여섯 이야기를 통해 중국이라는 나라의 이력을 개괄적으로나마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고대 중국의 하늘은 ‘거룩한 말씀’대신 신비한 무늬의 형태로 강림했던 것 같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 날 황하(黃河)에 용 한 마리가 나타났는데, 그 등 비늘에 신비로운 무늬가 어른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이 무늬에 ‘황하의 도상’, 즉 ‘하도(河圖)’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무늬에 근거해서 팔괘(八卦)가 만들어졌다.

 

6. 우리가 통상적으로 쓰는 ‘도서(圖書)’라는 단어가 이 하도낙서(河圖洛書)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거북딱지나 물소 뼈에 새겨진 책들은 갑골문(甲骨文)으로 명명되어 중국사의 연대기를 훌쩍 앞당겨 놓았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상(商)나라-혹은 은(殷)나라로 불리는 기원전 1700년경에서 기원전 1100년경까지 존재한 왕조-의 실체가 이로부터 빛을 보게 된다.


7. 그 발견은 정말 우연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백여 년 전인 1899년, 북경에 왕이영(王懿榮)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그런데 그가 학질에 걸리자 몸에 좋다는 거북의 골편을 대거 사들였는데, 마침 그 집에 식객으로 있던 유철운이라는 자가 거기서 이상한 글자들을 발견하고는 급히 그에게 보인다. 평소 고대 문자 해석에 일가견이 있던 왕의영은 그 글자들을 보는 순간 입을 못 다문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상나라 문자가 거기에 빼곡히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골편의 출처는 안양 소둔촌이었다. 이런 식으로 출토된 골편의 수가 무려 16만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8. 책에 소개되는 도서들은 다음과 같다. 『시경(詩經)』,『주역(周易)』,『논어(論語)』,
『산해경』(山海經), 『춘추번로』 (春秋繁露) , 『사기』(史記) ,  『설문해자』(設文解字),『노자주』(老子注),  『전당시』 (全唐詩),  『벽암록』(碧巖錄),  『사서집주』(四書集注),『천주실의』 (天主實義),  『명이대방록』 (明夷待訪錄).  [외침] (吶喊),  『동서 문화와 그 철학』등이다.

 

9. 책 한 권에 열 여섯 이야기를 풀어놓으려니 저자도 숨이 가쁜듯하다. 읽는 나도 한참을 달려왔다. 책 제목은 본듯하나 내용은 낯선 친구들이 몇 보인다. 세계를 표상하기 『산해경』(山海經). 저자는 『산해경』이라 불리는 책은 신화라고 하기엔 좀 덜 체계적이고 판타지라 하기엔 덜 조직적이며 그냥 상상력의 집적물이라 하기엔 왠지 미진한, 그런 느낌의 세계로 설명하고 있다.

 

10. '어느 선교사와 유학자의 대화' 『천주실의』 (天主實義). 두 문명이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눈다. 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마두라 불리는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 또 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원양을 건너온 복음에 귀 기울이는 익명의 중국 유학자이다. 이 둘이 주고받은 교리 문답이 이 책의 내용을 구성하는데, 일방적인 교리의 설파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도타운 이해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교문명사적 가치를 갖게 된 텍스트이다.

 

11. 이 책은 저자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개설한 교양 강좌의 강의록이다. 한 편 한 편의 이야기가 그리 가볍다고 볼 수도 없고, 반대로 무겁다고 볼 수도 없다. 열 여섯 꼭지의 이야기가 스토리 텔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읽기에 지루한 감이 별로 없다. 싫든 좋든 중국 문학을 통하지 않고 동양고전의 숲을 들어갈 방법이 없다. 하도(河圖)라는 단어에서‘도서(圖書)’가 탄생했다니 멀리 하기엔 너무 가까운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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