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와 미켈란젤로 - 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 2
신준형 지음 / 사회평론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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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와 미켈란젤로신준형 / 사회평론

              _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2)

 

 

1. 16세기 유럽 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두 가지 중요한 움직임이 있다. 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반종교개혁)이다. 종교개혁이 천 오백년 교회의 전통에 중대한 의문을 제기한 이후 두 세기 동안 가톨릭 미술은 자신이 그려내는 천상과 지상의 모습을 재확립하고 교회의 의식과 신도들의 신앙수행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기능함으로써 결국 가톨릭의 교세를 복구하는 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2.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종교 개혁의 도전 이후 가톨릭 미술이 전개되어 나간 방향과 양상, 즉 가톨릭개혁의 미술사를 이야기한다.

 

 

3. 르네상스와 바로크는 흔히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정점의 시기로 생각되고 있다. 미술사를 배우지 않았어도 라파엘로, 티치아노, 루벤스 같은 거장들의 이름은 그리 낯설지 않다. 이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에는 미술이 아니라 이름을 보려고 찾아온 관람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4.  그러나 이들을, 적어도 내가 이 책에서 다루는 그리스도교 주제의 작품들을 보안장치와 인공조명의 무대에서 떼어내 당시의 시대로, 원래의 장소로 돌려놓고 보자. 16~17세기, 종교투쟁의 시기에 만들어진 이 작품들은 미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들이 말해주는 것은 천상의 구원을 향한 열망과 투쟁으로 점철된 인간의 삶이다. 구원과 투쟁, 천상과 지상이라는 양극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공존하는 패러독스의 세계, 이것이 바로 르네상스, 바로크의 작품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당시의 세계이고 삶이다.”

 

 

5. 이 책의 제1부는 그리스도교가 미술과 관련하여 첨예하게 부딪쳤던 일련의 문제들로부터 시작한다. 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시기의 성상논쟁을 다루고 있다. 2부는 16세기와 17세기의 미술사를 논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미술의 문제를 다룬다.

 

 

6. 루터가 제기한 가톨릭교회의 전통에 대한 비판 중 성인숭배와 성상에 대한 문제제기는 성상파괴운동으로 이어진다. 이 운동은 주로 독일어권과 네덜란드에서 극렬하게 전개된다. 그러나 사실 루터 자신은 성상파괴를 무질서한 폭력적 불법행위로 간주하여 반대했다. 성상파괴운동의 이론적 정당화와 선동은 다른 설교자들이 의해 주도되었다. 이에 맞서 가톨릭 신학자들은 성상옹호론을 편다. 이들의 논리는 8세기 비잔틴제국의 전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7. 미켈란젤로와 티발디, 주카로 등은 교회가 원한 전성기 르네상스의 전형에 충실했던 이들이지만, 한편 교회의 요구와는 조금 다른 방향의 그림을 그리면서도 교회와 그의 군주들로부터 환영받은 화가가 있다. 바로 베네치아의 티치아노다. “티치아노가 내용적으로 특별히 가톨릭개혁을 표방하는 그림을 그렸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미술사학자들은 양식적인 면에서 그의 작품들이 가톨릭개혁의 기상을 드러내고 있다고 평가한다.” 또한 티치아노는 매우 정치적인 인물이었다고 한다. 교회의 강력한 후원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경력을 쌓아갔다. 작품제작과 인간관계의 균형감을 잘 유지했다고 평가된다.

 

 

 

8. 저자는 이 책의 전편을 통해 전성기 르네상스, 매너리즘, 바로크의 이백 년 세월 동안 가톨릭 서유럽의 미술가들이 어떻게 격변의 종교투쟁 시대를 살아내었는지를 돌아보고 있다. 천상의 황홀경과 지상의 투쟁과 고통은 큰 차이가 있다. 예술가들이 품고 있는 자존의식과 혼란의 사회가 부과했던 요구 사이 역시 거리감이 없을 수 없다. 아울러 이들이 짊어져야 했을 삶의 무게는 어땠을까? 이젠 그 시절의 그림들을 봐도 예사롭게 보고 지나치질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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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러와 미켈란젤로 - 주변과 중심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 1
신준형 지음 / 사회평론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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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1)

 

뒤러와 미켈란젤로신준형 / 사회평론

 

 

왜 뒤러와 미켈란젤로인가? 이 두 사람은 미술사에서 크게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서로 태어난 곳은 너무 멀리 떨어져있다. 북유럽과 이탈리아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두 화가의 그림을 소개하는 안내서에서 넘어 좀 더 인문학적인 질문을 다뤄보고 싶다고 한다.

 

 

우선 저자는 한국에서 서양 인문학을 한국어로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스스로 묻고 답한다. “학자들은 두 가지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한국어로 된 인문학 저술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 없다면 최선을 다해서 한국어로 양질의 연구 저술을 써나가는 것이다. 물론 서양 언어로 쓰이는 논저들에 필적하는 수준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우리보다 더 유구한 서양학의 전통을 가진 일본의 학자들이 취하고 있는 바이다. 두 번째 방식은, 서양의 문학, 역사, 철학을 일반인이나 비전공자들이 접근하기 쉽게 소개하고 가르친다는 자세로 저술에 임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연구라기보다는 교육의 측면을 중시한 저술일 것이다. 어찌 보면 첫 번째 방향보다 훨씬 더 중요한 과제일 수 있지만, 현행 제도 하에서 국내 대학의 연구자들은 이러한 고급 교양서를 쓰는 것으로는 연구업적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책의 저자인 고고미술사학자 신준형 교수는 여기에 한 가지 방식을 더 보탠다. 뒤러와 미켈란젤로의 미술에 대한 책을 기획하며 잡은 방향은 조금 다른 각도라고 한다. 그것은 서구의 학자들이 하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것, 이방인의 시각으로, 즉 유럽 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사람의 시각으로 솔직한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의 책을, 옥시덴탈리즘을 인정하는 책을 써보자는 것이었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는 책을 한번 써보자는 것이다.

 

 

@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 ;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났지만, 동일한 인식 구조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이 서양에 의해 구성되고 날조된 동양에 관한 인식이라면, 옥시덴탈리즘은 동양에 의해 구성되고 날조된 서양에 관한 인식이다.

 

 

 

 

이 책은 다면적이고 다층적인 종교, 정치, 문화, 교역의 시대에 세계의 수도에서 최고의 조각가, 화가, 건축가로 추앙받았던 미켈란젤로와, 알프스 이북에서 로마에 버금가는 르네상스의 도시를 세우고자 일군의 지식인들과 투합했던 뒤러를 테마로 잡았다. 미술은 기본적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자신을 바라보고, 이것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해내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두 도시의 예술가는 세계와 자신을 어떻게 그려냈을까? 이들이 바라보고 그려내는 방식에는 자신들이 살았던 두 도시의 다른 환경과 조건이 어떻게 작용했을까? 이것이 나의 질문이다.”

 

 

 우주의 중심 예수 

 

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반종교개혁)으로 뒤흔들린 종교적 격변의 16세기. 과연 이 시기를 대표하는 두 미술가 뒤러와 미켈란젤로는 그토록 심오한 의미를 갖는 예수의 몸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뒤러는 매우 르네상스적인 예수의 몸을 그려냈다. 중세의 도상 전통을 이어받되 르네상스 미술이 제공한 여러 시각적 기법들을 사용해 메시지의 호소력을 극대화시켰다. 반면에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를 뛰어넘는 예수의 몸을 만들어냈다.”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미술가라고 단정하기엔 너무나 개성이 강한, 독특한 이미지를 남겼다. 일탈된 행동의 에피소드도 많다. 자연히 그의 작품에도 과도한 면이 담겨있다는 해석이다.  

 

 

 

책의 전반부의 주인공이 신과 성모 마리아였다면, 후반부의 주인공은 인간이다. 시작은 역시 몸, 하지만 이번에는 신이 아닌 인간의 몸이다. 저자의 관심은 양식적, 형태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미술적인 몸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담고 있는 형상으로서의 몸, 더 정확하게는 인간상(人間像)이라고 해도 좋을 인간의 몸이다. 즉 화가들이 자신을 포함한 인간을 어떻게 인지하고 어떻게 표현했는가 하는 약간은 추상적인 이야기가 이어진다.

 

 

뒤러나 미켈란젤로가 지닌 인간에 대한 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우선 뒤러는 르네상스적인간의 육신을 표현하고자 상당히 노력했다. 인체비례에 대한 책을 네 권이나 썼고, 베네치아로 두 번의 여행을 떠난 것도 고전적인 인체비례를 터득하려는 목적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그렇게 균형 잡힌, 혹은 의외로 균형을 벗어난 몸의 표현을 통해 뒤러가 어떤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느냐 하는 것이다. 반면 미켈란젤로는 당시의 규준적인 인체상을 끝없이 벗어나는 다소 기괴한 인체 이미지를 추구했다.(....) 두 미술가가 육신의 물적 요소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표현하는 미술 기법을 완성하는데 전념했다고는 볼 수 없다. 이들이 인간의 몸을 통해 그리고자 한 것은 인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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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계획의 철학 - 미루는 본성을 부정하지 않고 필요한 일만 룰루랄라 제때 해내기 위한 조언
카트린 파시히.사샤 로보 지음, 배명자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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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계획은..계획의 또 다른 이름이다. 잔가지가 정리된 매끈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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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 이야기 - 청대의 역사를 거닐다
이리에 요코 지음, 서은숙 옮김 / 돌베개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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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 이야기청대의 역사를 거닐다

                _이리에 요코 / 돌베개

 

 

쉽게 따라가는 자금성 가이드

 

198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자금성(紫禁城)은 지상의 천궁(天宮)이라는 호칭이 붙어있다. 중국 북경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자금성을 찾는다고 한다. 엄청난 규모와 화려함이 장점이다. 이 책의 저자 이리에 요코는 장대한 역사의 드라마를 품고 있는 자금성이 단순히 그 규모와 외모로만 표현된다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이 책은 자금성에 대한 단순한 소개를 나열하는 대신 그 안을 차근차근 누비며 이야기를 들려주는인문적 가이드서다. 이제는 고궁의 자리에 앉아 있는 자금성에서 관람객 한 사람 한 사람의 걸음을 따라가며 곁에서 조곤조곤 이야기 해주고 있다. 각각의 공간들이 어떤 의미를 담고 조성되었으며 실제로 그 안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 황제를 비롯해 주요한 역사적 인물들은 곳곳에서 어떤 생각을 했고 사건 전개의 동선은 어떠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세계의 중심위에 장대한 권력 장치를 형상화 낸 자금성의 설계, 황제의 집무 겸 생활공간이었던 건청궁과 양심전의 간소한 듯 특이한 구조, 황후와 비빈들이 생활한 동서 12에 감돌던 평화와 긴장감을 들여다본다.

 

 

자금성청 제국’. 시공간의 교차로에서 읽어낸 중국 역사

 

자금성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살펴본다. 고대 중국에서는 천제가 거주하는 곳을 하늘의 중앙이자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 북극성으로 여겨 그 거성(居城)을 자미원(紫微垣)이라고 칭했다. 자금성이라는 이름은 지상의 자미원임을 가리키는 자궁(紫宮)’과 일반인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구역 금지(禁地)’가 합쳐진 자궁금지자금이라 줄여 부른데서 연유했다. 이미 송대의 문헌에도 자금이 궁중이라는 의미로 쓰인 예가 보인다.

 

예로부터 중국에는 왕조 교체에 관한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는 사상이 있다. 천자가 되는 건 하늘의 명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천자에게 덕이 없으면 그 명은 다른 사람에게 주어진다. 즉 천명이 바뀌어 천자의 성()이 달라진다. 명청 교체로 말하자면 하늘의 명이 ()’에서 애신각라(愛新覺羅)로 이동한 것을 가리킨다. 그 때문에 역대 황제는 하늘과의 관계를 항상 백성에게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명조는 주원장(朱元璋)이 세웠으므로 천자의 성은 였다. 청조의 성인 애신각라(愛新覺羅)는 만주어 성 아이신기오로를 음차 표기한 것이다.

 

그 하늘과의 관계 역할을 담당한 것이 천안문이다. 명대에는 승천문(承天門)이라 불렀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장소였다. 이 천안문에서 출발해 청대 역사의 흐름을 더듬어 가면서 자금성의 주요 건물군을 찾아가 본다. 일종의 시간 여행이다. 현재 중국의 권력구조에도 이 지상 천궁DNA가 포함되어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나의 개인적인 소견일까?

 

 

 

중축선의 서쪽, 무영전(武英殿)

 

성내를 돌다보면 중축선의 서쪽, 동쪽의 문화전과 대칭적인 위치에 무영전(武英殿)이 있다. 서적과 관련된 공간이라서 더욱 관심이 간다. 1644년 중원의 통치자가 된 섭정자 도르곤이 지배를 선언한 청조의 출발점이자 집무장소다. 그러나 서서히 주요 건물의 수복이 진행된 강희 19(1680) 이후로 이곳은 서적 편찬 장소가 되었다. 이곳에서 편찬된 도서 목록을 잠시 들여다본다.

 

삼번의 난에 대한 군공을 찬미한 평정삼역방략명사강희자전을 필두로, 한어. 만주어. 몽고어. 티베트어에 걸쳐 흔히 전본(殿本)이라 칭해지는 도서의 편집, 인쇄, 간행 등 다민족국가로서의 문화적 통일에 획기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권력의 이면

 

어느 나라, 어느 시대나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자연스런 권력 승계보다 암투와 보복이 거듭된다. 중국의 역사에도 그 그늘이 많다. 강희 61(1722) 1113, 이궁 창춘원에서 사망한 강희제의 유해는 그날 밤 늦게 극비리에 건청궁으로 옮겨졌다. 청사고는 죽기 직전 머리맡에 모인 황자들에게 강희제가 넷째 아들 옹친왕을 후계자로 지명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세 황후에게서 나온 스물다섯명의 황자들 사이에서 제위 계승을 둘러싼 갈등은 격렬했고 갖가지 소문이 흘러나왔다.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리라. 강희제의 고뇌와 황태자 제도의 위험을 곁에서 보고 들었으며, 자신의 즉위 후에도 여전히 제위를 향한 야망을 버리지 않는 배다른 형제들의 추악한 고집과 갈등 한가운데에 위치했던 옹정제는 비밀건조제라는 새로운 계승법을 창안했다.

 

이 제도는 황자들 상호간의 절차탁마를 촉진하는 동시에 황제도 그들의 자질을 관찰할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또 상황에 따라 변경도 할 수 있는, 극히 현실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었다.

 

 

시황제 이래의 언론 탄압

 

지배, 피지배의 역사에서 서적을 소각한 사례는 무척 많다. 잿더미로 사라진 책들이 많다. 책을 정신으로 본 것이다. 책 쓴 사람만 죽여선 답이 안 나오다 보니 책을 없앤다. 정복자는 피정복 민족들이 책을 읽고 생각이 키워지며 행동으로 바뀌는 것이 겁이 나는 것이다.

 

한족, 특히 한족 지식인은 원래 문자 유희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위정자가 금기시한 문자를 사용해 그들을 비판함으로써 필화(筆禍)를 초래하기도 했다. 이미 고인이 된 저자의 저술은 금서(禁書)’라는 형태의 처분을 받았다.

 

강희제의 경우, 명조 지배기의 관점에서 입관 이전의 청조를 주변 이민족으로 간주하는 서적이나 명조 멸망 이후 세워진 남명(南明)’을 정통으로 여기는 주장 등을 탄압의 대상으로 삼았다. 건륭제의 경우는 조금 양상이 달랐다. 고대 시황제의 분서갱유(焚書坑儒)이래 최대 규모라는 건륭의 금서는 사고전서의 편찬이 한창일 때 우발적으로 일어났다.

 

건륭 37년 정월, 예순두 살의 건륭제는 고금의 책들을 전국적으로 수집했는데 가장 기대했던 문화 중심지 강남의 응모가 적었다. 중국의 전통으로는 당대의 왕조가 전 왕조의 역사를 정사(正史)’로 편찬할 의무가 있다. 청조의 경우에는 그 사료가 되는 것이 명대의 문헌이었고, 거기에는 당연히 현 왕조를 이적시하는 금지된 문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소장에 대한 죄목을 두려워하거나 명조의 부활을 기대하며 은밀히 책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사로잡힌 건륭제는 강남으로 범위를 좁혀 열다섯 차례에 걸쳐 조서를 발표하고, 그 결과 2,578종 수만 권의 책을 징발한다. 그리고는 전훼서(全燬書)’라며 전부 소각했다.

 

 

장춘궁의 홍루몽벽화

 

홍루몽이야기가 시선을 끈다. 홍루몽은 시대에 따라 잠수했다 나타났다 했던 책이다. 건륭 시절엔 제왕의 봉건성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금서로 정해지기도 했다. 만청에 이르러선 서태후의 애독서가 되고 폭발적으로 유행했다. 홍루몽에 대한 서태후의 이러한 애착을 아는 진비 자매는 그녀의 60세 축하 선물로 궁전을 꾸미기 위해 여러 모로 궁리한다. 그려진 그림 중 가씨 가문의 젊은 주인 가보옥에게 이끌려 가모(賈母)’가 산책을 즐기는 모습을 그린 한 장이 의미심장하다. 두말할 필요 없이 그림 속의 주인공은 자신들 일족을 통치하는 가모로 분한 서태후다.

 

홍루몽벽화는 투시법에 의한 참신한 구도와 교묘한 원근법, 잎과 풀 하나하나까지 세밀한 회화 기법은 마치 장춘궁이 홍루몽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그러나 홍루몽 벽화가 완성되고 난 후 진비 자매는 이 벽화의 제작에 소요된 비용을 어떻게 마련했을까를 의문점으로 남겼다고 한다.

 

 

역사는 흐른다. 사람은 갔지만 흔적은 남는다. 자금성 곳곳에 지금도 서있는 담벼락들과 구조물들은 그 지나감을 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담벼락 밑에서 나누던 밀담들, 자객들...어깨를 들먹이며 울던 사람들 모두를 바라보며 함께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울먹이던 그들의 손이 담장을 짚을 때 포근히 안아주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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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마일 클로저
제임스 후퍼 지음, 이정민.박세훈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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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마일 클로저제임스 후퍼 / 다산책방

 

 

1. “첫 번째는 단계별로 차근차근 노력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내일 당장 에베레스트를 오르겠다고 다짐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실내 등반과 같은 작은 실천을 통해 조금씩 오르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고 나면 어느 새 여러분의 꿈이 이루어진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 제임스 후퍼의 말이다. 사실 이 말은 너무 당연한 말인데, 우리는 자주 잊고 산다. 어느 전문 등반가도 이렇게 답했다. “한발 한발 걷다보니, 정상이더군요.” 꾸준함을 이길 장사는 없다.

 

 

2. 저자 제임스 후퍼는 낯이 익다. TV에서 가끔 본다. 모험가이자 동기부여 전문가로 소개된다. 열다섯 살 때부터 모험가의 꿈을 키웠다. 3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06년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최연소 영국인이 되었다. 2007, 세계 최초로 북극에서 남극까지 무동력으로 종단할 계획을 세우고 42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를 장장 13개월 동안 이동, ‘폴투폴(Pole to Pole)’에 성공한다. 한국 내 활동으로는 Jtbc비정상회담에 영국 대표로 출연했으며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도 출연하고 있다.

 

 

3. “나는 8,500미터 고도의 절벽에서 가는 로프에 의존한 채 매달려 있었다. 두꺼운 장갑을 낀 손가락 사이로 로프를 꽉 잡고 있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한 손으로 버티면서 다른 손으로는 재빨리 고글을 고쳐 쓰려고 했지만, 그 시도 때문에 오히려 고글의 테두리가 눈가를 짓눌러 아예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에베레스트 등반 중의 한 장면을 회상하며 써 놓은 글이다. 산소 부족과 빙하로 둘러싸여 있는 척박한 환경, 이전까지는 경험해보지 못한 혹독한 추위, 거기에다 끊임없는 수면 부족, 아무런 맛이 없는 음식들까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더욱 힘들어졌다. 그렇지만 제임스는 빙하 곳곳을 걸어 다니며 휴식을 취하는 틈틈이 고산 적응 훈련을 해야 했다.

 

 

4. 우리는 살아가면서 위험을 피하려면 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서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결코 안전하진 않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안전지대란 찾기 힘든 장소일 것이다. 저자는 위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담히 적어 놓았다. “높은 산을 오를 때 마주치는 위험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위험한 순간을 경험한다. 위험은 인생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위험이 아니면 우리의 삶은 아마 훨씬 더 빈곤했을 것이다. 위험, 그것을 경감하고자 하는 바람 그리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더욱 발전시키고 배우려고 노력하게 된다.”

 

 

 

5. 어떤 꿈이든 처음은 내 안에서 일어날 것이다. 물론 선한 꿈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저자는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과 그 꿈을 공유했던 순간과 시간들을 전해주고 있다. 그의 삶의 두 번째 큰 미션이었던 폴투폴(Pole to Pole)’ 에 대한 이야기다. “여러분이 원하는 꿈을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혼자 힘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의 꿈을 알수록 더 많은 이들이 여러분을 도울 수 있겠죠. 성공이 무엇인지는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맞는 성공을 직접 찾아가서 도전해야 합니다.”

 

 

 

6. 저자는 전체적으로 이 책의 내용을 한국의 청년에게전하는 메시지로 채웠다. 그가 도전했던 여러 미션들을 소개하며 그 일을 통해 느낀 자신의 생각을 전해준다. 피상적인 언어로 메운 것이 아니라, 그가 실제로 부딪히며 터득한 삶의 지혜이기에 더욱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7. 원 마일 클로저캠페인 : 200919, 몽블랑에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제임스 후퍼의 친구 롭 건틀렛과 제임스 앳킨슨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시작된 기금 모금 운동. 고인의 가족, 친구들, 그리고 전 세계에서 모인 청년들이 참여하는 이 운동은 자전거로 약 1,000km를 달리며 모금 활동을 한다. 마련된 기금은 우간다의 나랑고 중, 고등학교의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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