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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천 프로젝트 - 4할 타자 미스터리에 집단 지성이 도전하다
정재승 외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3년 7월
평점 :
【 백인천 프로젝트 】 - 4할 타자 미스터리에 집단 지성이 도전하다
_ 정재승 외 백인천 프로젝트 팀 (지은이) | 사이언스북스
요즘 ‘알쓸신잡’으로 뜨고 있는 뇌 과학자 정재승. 그는 복잡한 시스템을 모델링하는 이론을 공부해 뇌의 의사 결정을 모델링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과학의 대중화와 생활 속 과학을 소개하는 일에 열심인 그가 이번엔 야구 배트를 들고 나왔다. 그는 인간 사회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현상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연구에도 관심이 많다. '집단 지성'으로 과학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가능한지 알아보는 시도가 전 세계적으로 여럿 생겨났었다. 그 중 외계 지적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사용했을 성간 신호를 분석해 태양계 밖 우주에 지적 생명체가 존재하는지를 확인하는 천문 연구가 있다. 처음엔 미국 국가 예산을 활용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대용량 데이터를 분석하기 힘들어지자 웹에 공개된 스크린세이버 프로그램을 통해 개인 컴퓨터가 쉬는 동안 신호자료를 준 것을 버클리의 연구소로 보내는 프로젝트이다.
정재승은 SNS시대에 어떤 형태로 집단 지성을 활용해 과학 연구를 수행 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중 트위터를 활용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2011년 12월 '백인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프로젝트의 타이틀은 '프로 야구에서 4할 타자는 왜 사라졌는가?"이다. 각계각층에서 100여 명의 자원자가 동참했다(실제 참여 인원은 58명). 수시로 오프라인 모임도 가졌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백인천 선수의 타율인 0.412를 기념해서 2012년 4월 12일 4개월간의 집단 연구 결과를 내놓게 된다. 이 책은 바로 그 100일간의 뜨거운 열정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야구에서 4할 타자의 멸종을 과학의 연구 주제로 끌어올린 사람은 세계적인 진화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이다. 야구광이었던 굴드는 "4할 타자가 사라진 것은 타자의 수준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야구의 수준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라는 전혀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미국 프로 야구의 통계를 분석해, 리그의 평균 타율은 장기적으로 2할 6푼(0.260)에서 안정되며, 최상위 타자와 최저 사이의 폭이 줄어들며 안정화된다고 했다. 거의 모든 생태계가 그렇다는 그의 주장이다. 진화 생물학자다운 언급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백인천 프로젝트'의 연구결과로 볼 때, ‘한국 프로야구에서 4할 타자는 다시 나오기 힘들다’이다. 이것은 굴드 가설을 한국 프로 야구 데이터를 가지고 확인한 것이다. 모이기전에 서로 교류가 있었던 사람들이 아닌지라, 처음 시작부터 적잖은 갈등이 있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논문이 완성된다. 그리곤 내친 김에 야구학회 결성 문제가 거론된다. 동호회 수준이 아니라, 진짜배기 학회. 정재승은 미국의 SABR(Society for American Baseball Research)를 모델로 한 SKBR(Society for Korean Baseball Research)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한다. 그렇게 야구학회가 만들어진다. 이 책이 야구로 시작해서 야구 이야기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던 필진이 남긴 글을 읽다보면 과학 서적을 읽는 느낌도 든다. 세계적으로 기록에 남을 만한 '시민 과학 프로젝트'가 여럿 소개되면서, '백인천 프로젝트'가 지니고 있는 그들과의 공통점, 다른 점도 설명해주고 있다. 다른 점은 '백인천 프로젝트'팀은 스스로 데이터를 모으고 연구 방향을 정했다는 것에 있다.
그렇다면 굳이 야구에 통계가 그리도 중요하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필진 중 한명이 이런 글을 남겼다. "우리는 야구 통계를 마스터해 그걸로 야구의 승부를 예측하고 선수들의 몸값을 결정하며 구단을 운영할 예산을 책정하지 않는다. 그저 야구를 더 재미있게 보는 데 도움이 되면 그걸로 족하다." "그렇다고 아무도 다시는 4할 타율을 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이 야구 초기에 그렇게 흔하던 최고 기록이 아니라 이제는 100년 만의 홍수처럼 한 세기에 한 번 성취될까 말까 할 정도의 극도로 희귀한 사건이 되었다는 말이다. 매 시즌 그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매 시즌마다 초월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_스티븐 제이 굴드, [풀하우스]에서
야구팬들이라면 이름을 모를 리 없는 선수들의 인터뷰 기사도 실려 있다. 김태균, 양준혁, 김현수, 정근우, 홍성흔 그리고 선수 생활 후 코치, 해설위원이 현 주소인 김정준 그리고 선수 장성호, 박병호, 코치 김용달 그 외에도 야구가 곧 삶인 사람들이 여럿 등장한다. 역시 공통 주제는 4할 타율, 4할 타자이다. 책의 말미는 이 프로젝트에 이름을 빌려줬던 백인천 감독의 강연과 질문, 답변 후기가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질문 : '홈런'과 '타율'중에 하나만 고르면? 백감독의 답 : "홈런이다. 홈런은 줄지 않는다. 타율은 줄어든다." 우리 삶에도 홈런이 많았으면 좋겠다. 날려 보내고 싶은 것 한 방에 날려 보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타율은 잊자. 그렇다고 로또나 꿈꾸고 살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한다면 언젠간 홈런을 날릴 것이라 믿는다. 또 설령 홈런을 못 치면 또 어떠리. 백감독의 말을 하나 더 붙이고 싶다. 감독님은 어떻게 4할 타자가 되었는가? "4할은 아무나 치나" ('사랑은 아무나 하나' 멜로디에 맞춰 운을 떼셨다.) 자기가 하는 일에서 일류가 되려면 첫째, 좋아해야 하고, 둘째, 미쳐야 하고, 셋째, 중독이 되어야 한다." 야구에만 국한 될 언급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