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면 이미 하루를 마감하고 잠들어 있을 시간이다. 원래 올빼미형이었는데 어쩌다 충실한ㅋㅋ 직장인이 되다보니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아침형 인간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오늘 모처럼 밤12시를 넘겼다. 저녁에 마신 캔커피 때문일 것이다. 저녁에 맘놓고 커피를 마시는 행위를 저지를 수 있는 금요일도 한 몫 했겠으나 낮에 무리한 야외활동을 해서 갈증이 심했다.

 

에페리손염산염: 근골격계, 신경계질환용제로 식후 복용합니다.

록소프로펜나트륨: 진통소염제로 식후복용합니다.

가스탄정: 기능성소화불량으로인한 증상에 복용합니다.

미피드정

 

어제 동네병원에서 처방 받은 약이다. 발이 오므라드는 것 같고, 무릎도 좀 시원찮고, 고관절에도 기분 나쁜 통증이 있는데 아픈 것도 같고 안 아픈 것도 같은데 하여튼 불편하다. 몇 년 전에도 이런 증상으로 큰 병원까지 가서 근전도검사도 받았는데 별 이상이 없었다. 그때 의사가 그랬었다.

"아프다는 생각조차 하지 말아라."

어디를 꼭 찍어서 어떻게 아프다고 명쾌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안 아픈 건 아니다. 나열하자면 구구절절한 온갖 증상이 내 머리와 입에서 술술 나온다. 구질구질해진다.

 

결국 마지못해 동네병원에 가게 된 것은 아픔보다는 동아리활동 때문이다. 하이킹반이라고 애들 모아놓고 이 동네 저 동네 싸돌아다니는데, 게다가 출장비 1만원을 받아내려고 관리자들과 불쾌한 싸움까지 했는데, 대강 흉내만 낼 수는 없다. 한창 팔팔한 10대 아이들에게 체력이 떨어지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여줄 수도 없다. 잘 가르치는 선생은 못 될지언정 성실한 선생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부지런하고, 건강하고, 정직하려고 애를 쓰는데...모래알처럼 소리없이 하나씩 빠져나가는 것 같다. 사소한 실수도 많아지고.

 

주사와 물리치료와 약기운으로 잠시 통증을 잊고 씩씩하게 걷는다. 지천에 핀 해당화, 이팝나무꽃, 아카시아꽃, 찔레꽃 사열을 받으며 걷고 있자니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행복해진다. 그런데 녀석들, 불만이 늘어난다. 하이킹반에 들어온 것을 처음으로 후회한다는 둥, 지네들 가지고 온 물은 선생한테 한 모금 마셔보라는 말도 안 하는 녀석들이 가져온 물 다 마시더니 대뜸 '물 사달라'고 하질 않나, 분 간격으로 '얼마나 남았나'고 따지듯이 묻질 않나...한두번 들어본 말이 아니다. 하이킹반만 16년차다, 녀석들아.

 

물은 꼭 준비하라고 당부했는데 준비가 미흡하다면....어쩌다 사주기도 하지만 매번 사주지는 않는다. 가방은 가볍게, 복장은 사복도 좋으니 간편복으로, 신신 당부했는데 무거운 가방을 매거나 교복차림이라면....그래, 신발주머니 정도야 들어주지만 네 짐은 네가 감당해라. 의존하지 마라. 나는 비록 약에 의존할지언정, 안 아픈 척 할지언정, 너희보다 강한 척 할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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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6-05-14 0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이대 아이들이 하이킹의 맛, 멋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이 세상 더 재미있는게 많아보일 나이라서 그런지 제 아이도 왜 걷냐, 언제까지 걷냐, 이러면서 잘 안 따라가려고 해요 ㅠㅠ
몇 년 전 다리 아프셔서 병원 다니셨던게 기억나는데 또 아프시군요. 그래도 일찍 병원에 가보셨으니 고생 안하시고 빨리 나으셨으면 좋겠어요.

nama 2016-05-14 09:26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어떻게 변할 지는 모르지만 이렇게라도 걸어본 경험이 나중에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해요. 제가 그랬거든요.
발과 다리 아픈 건...세월에 장사가 없다고 하나요? 노화는 성장일까요, 역성장일까요? 잘 늙어가야 하는데 걱정이 앞섭니다.
 

 

 

 

50대 후반에 접어든 나는 명퇴와 정퇴를 저울질하고

 

대학에 갓 들어간 딸은 나이든 부모의 은퇴를 부러워하고

 

딸아이가 멘토링하는 8살 초등생은 빨리 할머니가 되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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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 한구석에 넓게 자리잡은 녹지 지대. 소위 그린벨트라 불리는 곳에 고만고만한 배밭이 조각보처럼, 또는 한창 물오른 여드름마냥 쏙쏙 박혀 있고, 배밭에는 지금 배꽃이 한창이다. 나 혼자 보기 아까워 동아리활동 빙자해서 아이들 데리고 동네구경에 나섰다. 걸어서 30분도 안 되는 거리인데도 아이들은 걸어보는 게 처음이란다. 근처에는 유명한 시립도서관이 있지만 도서관에 가본 아이들도 많지 않다. 착한 아이들은 걸으면서도 동아리활동 끝내고 가야 할 학원에 혹시 늦지 않을까 걱정들이 태산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몸소 걸어보는 일....이게 공부의 시작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공부는 왜 하나? 질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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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 벚꽃처럼 흐드러지게 울려퍼지는 봄날, 지금 밖은 온통 벚꽃 천지다. 화사한 벚꽃나무 한켠에 다소곳이 서 있는 꽃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연두빛이 감도는 꽃은 벗꽃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조용하고 차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무슨 나무일까?

 

책을 뒤져보니 아그배나무인 것 같기는 한데....아그배나무는 5월에 꽃이 핀다고 하니 아닌 것 같고...

 

 

 

 

 

 

 

 

 

 

 

 

 

 

 

 

 

 

 

아그배나무: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내한성의 나무이며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잘 자란다. 1992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지구환경회의에서 지구를 살리는 생명의 나무를 각 나라마다 정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그배나무가 지정되었다.

 

 

지금보다 지구환경이 더 험악해진다면 벚꽃 대신 아그배나무를 심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지구를 살리는 생명의 나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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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4-10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다 보았으면 벚꽃인줄 알았을 거예요.^^; 하얀 꽃인데 연두빛이 있어서 예뻐요.^^
nama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nama 2016-04-10 17:33   좋아요 1 | URL
자주 보면 차이점이 보여요. 사람도 그렇겠지요?
서니데이님도 좋은 봄날을 만끽하세요.^^
 

일 년에 잘해야 4~5번 시행되는 동아리활동(예전에는 계발활동이라고 불렸다.). 신문반, 독서반, 영어회화반 등은 옛날식 명칭이고 요즘은 바리스타반, 토탈공예반, 요가반 등의 시대를 반영한 동아리반들을 많이 운영한다. 지난 15년간 나는 '하이킹반'이라는 이름을 달고 줄곧 아이들과 함께 학교 근처의 공원이나 걷기 좋은 마을길들을 걸어다녔다. 나 혼자서 걷는다면 한 시간이면 족할 거리를 아이들과 다니면 거의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모처럼 산책나온 강아지마냥 아이들은 얌전하게 길을 걷지 않기 때문이다. 조잘대며 까불며, 때로 풀이나 나무이름 맞추기 퀴즈에 열중하면서 길을 걷는 것이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하는 동아리활동이다.

 

이렇게 학교밖으로 나가서 활동을 하게 되면 출장비 1만원이 지급되는데 15년 전이나 현재나 금액은 변하지 않았다. 이 출장비는 현실적인 가치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뿐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어쨋든 학교를 벗어난 활동이니 출장비가 지급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학교라는 조직체가 돈을 따지는 이익집단이 아닌만큼 명목상의 출장비를 그저 받아들일 따름이다.

 

그런데 새 학교로 전근되어 와보니 이 1만 원의 출장비를 아예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교내에서 동아리활동하는 교사와 형평성이 맞지 않아서, 출장비를 지급하면 다수의 교사들이 출장비를 타기 위해 학교밖으로 나가는 활동을 하게 되리라는 우려에서라고 한다. 출장비 1만 원이 주는 형평성도 논리가 빈약하기 이를 데 없지만, 교사들이 단 1만 원의 출장비를 타내기 위해 야외활동이나 외부기관을 이용한 동아리활동을 하려고 기를 쓰는 집단이란 말인가. 이게 평교사에서 관리자가 된 사람이 할 수 있는 발언인가.

 

수십 개의 동아리부서 중 외부로 나가는 부서는 단 5개 부서. 일만 원씩 5회 지급한다해도 연간 25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관리자(주로 교장)들은 꼭 필요한 일이 아닌 경우에도 다반사로 출장을 다닌다. 심하게는 국내 이곳저곳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에 출전하는 학생들을 응원하러 간다는 명분하에 출장비를 이용하여 다녀오기도 한다. 그게 어디 1~2만 원만 들겠는가. 교장 한 사람이 쓰는 출장비가 수십 명의 전교사가 쓰는 출장비와 맞먹는다는 말들을 한다. 정확한 내역은 사실 아무도 모른다. 관리자만 알 뿐이다.

 

귀찮아서 대부분의 교사들은 '그깟 만 원' 안 주면 안 주는가보다 하고 쉽게 잊어버리는데, 나는 그게 안 되었다. 지난 15년간 단 한번도 의심없이 받아온 건데 이걸 못 받다니,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면서 차차 분노로 변해갔다. 처음에는 교무부장한테 부당함을 얘기했더니 교무부장이 교감에게 전달했고 그에 나온 대답이 '형평성에 어긋남'이라는 무성의한 단 한 줄의 초라한 답변이었다. 영혼없는 답변 한 줄을 들으려고 밤새 고민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의 권익을 다루는 사이트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을 찾아내서 프린트했다. 학교 상황에 따라 출장비를 줄이거나 지급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학기초부터 출장비를 예산에 넣지 않는 것은 학교장의 재량권 남용이라는 내용이었다. 학교장에게 이를 시정하도록 요구하라고 하는데 그게 용이치 않을 경우 시교육청의 고충처리위원회에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인쇄물을 점심을 먹고 있는 교감(나보다 두어 살 위)에게 불손하게 들이밀고, 며칠 후 급기야 교장실에 들어가 출장비 미지급의 부당함을 하소연했는데...내 행동이 오만불손했던가. 돌아오는 대답은 이랬다. '절차를 밟고 오십시오.' 절차라 함은, 교무부장→교감→교장이라는 위계 질서대로 문제를 제기하라는 것이다. 교장인 자신한테 오기 전에 교감을 먼저 만나야지 직접 교장한테 오면 중간관리자인 교감의 위치가 난처해진다는 설명이다. 어? 내가 실수했나? 이미 교무부장, 교감한테 할 말은 다 했는데...권위가 밴 교장 앞에서 나는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나이로 치면 기껏 5~6살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데 저 표정에 담긴 단호한 표정은 뭐지? 내가 당신의 심기를 건드렸소? 출장비를 마음대로 남용할 수 있는 당신의 권력에 감히 태클을 거는 내가 무례하게 보였소? 교장실을 쫓겨 나오면서 속으로 분노의 눈물을 흘렀다. 교장이란 존재에게 감히 말을 걸면 안되는구나.

 

그러고 이틀 후. 금요일마다 열리는 기획회의에 이 안건이 올랐다고 한다. 이미 관리자들은 해답을 내놓았을 텐데 그래도 명분이라는 게 있는 거니까 '절차'가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해서 드디어 출장비 1만 원을 받게 되었다.

 

전교조선배교사들이 그런다. '그것도 권력이라고 웃긴다'고. '그렇게 혼자 덤비지 말고 여럿이 함께 해결하자'고. 이런 선배들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걸 진작 알았다면 그렇게 혼자 씩씩대지는 않았을 텐데. 싸움에도 전략이 필요한데 나는 생초보에 불과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이 붉어졌다. 좀 겸연쩍어하는 나를 보고 선배교사들은 '큰 일을 해냈다' 며 엄지를 치켜세워준다.

 

내 나이에 나보다 나이 많은 선배교사들 여럿과 함께 근무하게 된 게 기쁘다. 나도 후배교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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