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월요일 방학식만 남겨놓고 한 학기가 끝났다. 끝남이 있고 그 끝남을 형식화해서 마무리를 짓는 일이 방학식, 졸업식, 송별식..뭐 이런 것이 되는데 어제가 바로 그런 날이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 잡지를 나도 샀다. 대충 읽어봐도 소설가 천명관과의 대담 기사 하나만으로도 책 값은 확실히 빠진다 싶어 8권을 더 주문했다. 그간 도서관 학부모봉사단의 어머니들의 노고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으로, !~2년 함께 근무한 기간제교사들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으로 한 권씩 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교장샘에게도 한 권. 여기서 순서를 잘 봐야 한다. 학부모-기간제교사-교장, 이런 순이다. 그러니까 교장을 위해 먼저 생각해낸 게 아니라는 얘기다.
도서관을 담당하면서 학부모봉사단 어머니들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몇년간 쌓아둔 도서 폐기부터 크고 작은 환경정리까지 지금 이 순간도 봉사단 회장 어머니는 도서관에 뭔가 도움이 될 일이 없을까 하고 고민하고 계실 것이다. 어쩌면 방학 내내 이런저런 고민을 하실지도 모른다. 그 살뜰한 마음이 내내 불편하면서도 실은 굉장히 고마웠다. 이런 고마움에 대한 작은 성의로 이 잡지를 드리긴 했는데 글쎄 잘한 짓인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재밌는 책이 아니어서.
어제는 기간제교사을 위한 송별회식이 있었다. 전별금 전달 등이 있은 후 교장샘의 짧은 말씀이 이어졌다. 그간 교장연수를 받느라 고생하고 계신 교감샘도 모처럼 회식에 참석했는데 교감샘에 대한 노고를 언급하면서 이런 표현을 썼다. "학교의 꽃인 교감선생님을 위해..." 속이 뒤집힐 뻔했다. '학교의 꽃"이 나오는 찰나 다음 말이 뭐가 나올까 기대되었는데 어이없이 교감이라니...결국 학교의 꽃은 교장/교감이라는 얘기가 아닌가. 아, 이런 분에게 이 책을 드렸다니....이 잡지를 만든 분들께 사죄하는 마음이 뭉클뭉클 솟기 시작했다.
바로 내 옆에는 한 학기 동안 도서관에서 근무한 실무원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어제도 이 아가씨는 이런저런 일로 마음의 상처를 받고 혼자 훌쩍거렸는데 나는 살갑게 달래주지 못했다. 이 아가씨는 약간의 장애를 겪고 있는데, 지난 한 학기 동안이 내게는 하루하루가 고정관념을 수정하고 더불어 사는 연습을 하는 나날들이었다. 그간 미운정 고운정이 들었는지 어제는 더욱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이 어린 학생들에게 무시당하고, 사정을 잘 모르는 교사에게 빈정거림을 당하고...사정을 모르는 동료에게 슬쩍 한마디 해주면 금방 이해하고 도와주기는 하는데, 솔직히 내가 왜 이 역할을 맡아야 하지, 하는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교장에 대한 실망, 불쾌함과 실무원아가씨에 대한 안쓰러움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 아가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 학기 동안 어리석고 부족한 자기를 위해 마음고생이 많았을 텐데 그간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너도 나 때문에 긴장하고 마음 상하는 일이 많았을 텐데, 나는 네게 용서를 구하지도 양해를 구하지도 않았는데, 네 마음이 참 살갑고 착하구나.) 마음이 먹먹해졌다. 낮은 것이 마음을 울린다.
16~17년만에 학급 담임을 맡지 않으니 한 학기가 짧게 느껴지고, 학생들이 예쁘게 보이고, 세상이 넓게 보인다. 대학교수에게는 일정기간 근무하면 안식년이라는 게 주어지는데 초중고 교사들에게도 그 안식년을 허하라. 최소한 담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딱 그 정도 의미의 안식년 정도라도. 그리고 학교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학생이며 그 학생들과 매일 싸우고 지지고 볶는 담임이다. 교장이나 교감이 되려고 온갖 치사함과 역겨움을 참는 것도 결국은 담임이라는 고된 업무에서 해방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이제 방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