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 마광수 교수의 죽음을 접하면서 서가 한 쪽 구석에 숨어 있는 그의 <즐거운 사라>를 떠올렸다. 드러내서는 안 되는 금서처럼 종이로 감싸놓았는데 이젠 복권시키고 싶었다. 내가 그런 책을 읽었다고 누가 뭐랄 것도 아닌데 이젠 당당히 종이를 떼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가를 살폈는데...

 

 

 

 

 

아니었다. <즐거운 사라>는 당당하게 제호를 드러내며 서가에 꽂혀 있었다. 엉? 근데 옆에 있는 다른 책이 수상했다. 종이를 두른 저 책은 뭐지? <즐거운 사라>보다 더 쎈 책인가? 분명 내가 꽂아놓은 책인데 기억이 안난다. 바로 이 책이었다.

 

 

 

 

 

 

 

 

 

 

 

 

 

 

 

그래서 등수를 매겨보았다. 어떤 게 더 쎈가를. 단연 서갑숙의 책이다. 왜? <즐거운 사라>가 픽션이라면 <나도 때론...>은 다큐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런 생각으로 서갑숙의 책을 비밀스럽게 모셔놨을 게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책이 또 한 권 있었다. 다름아닌 <까마수트라>. 1994년 인도에서 구입한 책인데 프랑어로 되어 있다. 당시 그 책을 발견했을 때 그림이 워낙 충격적이다 보니 언어 따위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워낙 쎈 책이라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이 책을 서가 깊숙한 곳에 숨겨놓았다. 내가 이런 류의 책을 읽거나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서는 안 될 일이었다.

 

다시 정리해본다.

 * 야한 정도: 까마수트라>나도 때론...>즐거운 사라

 * 작품으로서의 가치면: 즐거운 사라> 까마수트라>나도 때론...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나는 건 없지만 <즐거운 사라>를 읽는 건 또 다른 영역의 즐거움이었다. 책이란 아무리 극단적으로 흘러도 그저 책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책 한 권 읽는다고 사람이 달라지나, 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오히려 이런 류의 책을 쓴 작가가 대단하게 보였다. 어쩌려고...결국 마광수는 이 책 때문에 인생이 꼬였고 외롭게 죽었다. 이 책이 그렇게 대단한 건가? 그래봐야 까마수트라의 적나라함에는 비교도 안 되는 그저 한 인간의 상상력에 불과한 것인데. 까마수트라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는 세계적인 책이 되었건만 대한민국의 야한 작가는 감옥까지 가야하는.....안타까울 뿐이다.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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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고 있다. 춥다. 날이 더워지면 무안해서 어쩌려고 이리 춥나, 오늘.

 

 

 

 

 

 

 

 

 

 

 

 

 

 

 

 

이 책의 겉표지에 있는 사진을 이해하는데 만 하루가 걸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을라나. 딱 봐도 책을 세워 놓은 사진인데, 책 밑부분에 도서관 스티커가 붙어있어 더 더욱 그림이 확연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대나무공예품인가 뭔가 계속 궁금했다. 그랬으니 이 시집을 읽은들 제대로 읽었으랴만.  

'블랙리스트 시인 99명의 불온한 시 따뜻한 시'라고 쓰여 있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거 읽고 내 마음대로 고른다.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시는 많지 않다.

 

젖은 나무가 마를 때까지

                                            박 남 준

 

옛날을 젖게 하네 양철지붕 저 겨울비

방울방울 바다로 가듯이

그렇게 흐르는 것들 흘러간다 여겼는데

풍경은 꺼내고 들춰지는 것인가

돌이킬 수 없는 사람이 보내온

돌이킬 수 있는 흔적들이 비처럼 젖게 하네

젖는다는 것, 내겐 일찍이 비애의 영역이었는데

비에 젖었던 나무들은 몸의 어디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장작을 팰 나무들 앞마당에 비를 맞는다

젖은 나무가 마를 동안

나는 이미 젖었으므로

햇살이 오는 길목을 마중해야겠지 

언젠가 이 길을 달려오며 나를 들뜨게 했던 기다림들

봄날은 쨍쨍거릴 것이며 장작은 말라갈 것이다

젖은 시간이 말라간다

픽~

오래 흘러왔으므로

나무의 젖은 탄식도 몸을 건너갔다는 것을 안다

천천히 도끼질을 다시 시작한다

몸이 가벼워지는 동안 나뭇간에 발자국 쌓여갈 것이다

 

 

이런 시를 쓰는 시인들을 블랙리스트로 묶어놓다니...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이 영원하리라고 생각했을까? 머리도 참 나쁘다.

 

누군가 울면서 너를 바라볼 때,

네가 그 울음의 주인이 될 때까지 기다려라.

울음은 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함께 울어주는 자에게 건너온 덩굴손이다.

 

    - <누군가 울면서 너를 바라볼 때> (이정록) 중에서

 

 

무장투쟁

                          김 주 대

 

허무에 이르기 위해 스님들의 옷은 무채색이고

고요에 응전하기 위해 머리는 반드럽고 적막합니다

스님들은 잘 무장하였습니다

 

단순한 것만 보기 위해 맑아진 눈

넘어져도 깨지지 않기 위해 말랑한 머리

젖을 빨기 위해 볼 근육을 탱탱하게 한

아기들은 잘 무장하였습니다

 

뱀은 어깨를 말아 몸 안으로 넣고

일어선 천적들의 시선을 피해

다리를 피부에 납작하게 새겼습니다

독을 품고 가는 길 뱀은 잘 무장하였습니다

 

별은 반짝임으로 유서를 남기고

반짝임만으로 소리치고 웁니다

별의 반짝임은 어둠을 몰아내는 무기여서

별은 잘 무장하였습니다

 

문은 손잡이로 무장하였고

장미는 가시로

산새들은 부리를 갈아 뾰족한 노래를 부릅니다

도로는 중앙선으로 무장하였습니다

 

그리고

 

날카로운 세상 어울리지 않는 얘기지만

나는 무기가 시밖에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식구들에게는 참 면목 없는 무장이지만 말입니다.

 

 

'무기가 시밖에 없'는 시인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어쩌겠다고...그들은 시를 읽기나 할까? 나중에 발각되면 창피해서 어쩌려고 그런 짓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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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8-28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진짜 차가운 비바람이 불어요. 갑자기 비가 많이 오는데, 얼마나 올 지 모르겠어요.
지난주에 비오고 나서 햇볕이 뜨거웠던 것 생각하면, 다시 뜨거운 날이 돌아올 것 같기도 하고요.
nama님, 비조심하시고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nama 2017-08-28 19:49   좋아요 1 | URL
오랜만에 긴 바지와 긴 웃옷을 입었는데도 추웠어요. 다시는 더위가 찾아올 것 같지 않을 것처럼 추위가 매몰차더군요. 금방 더워지면 얼마나 무안할까요. 날씨에도 염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지요.
좋은 날 되시구요.^^
 

어렸을 때 머리에 이가 살림을 차린 적이 있었다. 집안 구조상 자주 씻지도 못하고 목욕탕에 가는 것도 싫어해서 이래저래 위생과는 거리가 먼 시절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우유같은 뽀얀 피부를 자랑하던 어린 시절, 머리에 이가 살림을 차릴 정도로 우리 부모님은 딸내미를 방치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 시절에는 그같은 일은 얘깃거리도 못되는 아주 흔하고 흔한 일에 불과했다. 그 때는 상비약도 아주 단순했다. 배 아플 땐 노루모, 상처에는 옥도정기나 안티프라민, 체했을 땐 활명수. 몸살엔 쌍화탕. 이 서너 가지 약은 말 그대로 만병통치약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일상적인 통증은 이 약으로도 충분했다.

 

그런데 머리에 들끓고 있는 이는 이런 상비약으로 어찌해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 때 이를 박멸할 수 있는 강력한 처방이 있었다. 바로 요즘 살충제 계란으로 거론되고 있는 DDT였다. 밀가루 같은 하얀 가루를 머릿속 이를 향해 집중 투하하면 효과는 확실했다. 나도 이때 하얀 DDT가루 세례를 받았는데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이 때문에 고생한 적이 없었다. DDT의 효능을 알아차린 계기가 되어서인지 나는 지금도 DDT에 대한 강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아무튼 그 시절은 부모님의 절대적인 보살핌과 사랑을 받던 어린 시절이었다.

 

 

고기류와 생선류의 음식을 먹지 않은 지 반 년이 되어간다. 그래도 일주일에 두어 번은 생협에서 사온 계란을 먹곤 했었다. 그러나 그 계란도 믿을 수 없다며 정 그렇게 계란을 먹으려면 직접 닭을 길러서 계란을 먹으라는 말을 들었다.(통합의학 전문가로부터) 그래도 그것마저 안 먹으면 단백질은 어떻게 섭취하나 싶어서 생협의 계란을 아주 끊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럴즈음 살충제 계란 사건이 터졌다. '직접 닭을 길러서' 계란을 섭취하라는 말이 맞는 말이었구나 싶었다.

 

 

추억 속의 DDT가 다시 부활한 모양이다. 세상 참 나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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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라 2017-08-21 2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DDT를 인체에 바로 뿌리던 시절도 있었군요. 구충제 대신에 락스를 희석해서 마셨다는 이야기는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었는데요. 세상이 변한듯 안변한듯한 과도기들을 거치며 변해가는 것 같네요

nama 2017-08-22 07:57   좋아요 0 | URL
락스 얘기는 처음 들어요. 락스보다는 DDT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아니 무슨 생각을...) 세상은 분명 변하긴 해요.

2017-08-22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2 0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요즘 내가 TV를 보는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손석희가 진행하는 뉴스를 보기 위해서다. 특히 앵커브리핑을 빼놓지 않고 보려고 하는데( 저녁9시쯤 되면 슬슬 눈이 감겨오기 시작한다.), 어제는 뭔가 가슴을 묵직하게 내려앉게 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명문이었다. 종이에 적는 손필사보다는 정성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성의껏 옮겨본다. 두고두고 회자될 발언이다.

 

 

광고료로 지탱하면서도 그 광고주를 비판한다든가, 동시에 언론 자신의 존립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정치권력을 비판한다는 것은 그 정도에 따라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일 수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대기업의 문제들, 그중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희 JTBC와 특별한 관계에 있다고 믿고 있는 특정 기업의 문제를 보도한다든가, 매우 굳건해 보였던 정치권력에 대해 앞장서 비판의 목소리를 냈을 때 저희들의 고민이 없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예외없이 커다란 반작용을 초래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말부터 JTBC는 본의 아니게 여러 사람의 입길에 오르내렸습니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저희가 그동안 견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던 저희의 진심이 오해 또는 폄훼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명확합니다. 저희는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모두가 동의하는 교과서 그대로의 저널리즘은 옳은 것이며 그런 저널리즘은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을 위해 존재하거나 복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나 기자들이나 또 다른 JTBC의 구성원 누구든, 저희들 나름의 자긍심이 있다면 그 어떤 반작용도 감수하며 저희가 추구하는 저널리즘을 지키려 애써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비록 능력은 충분치 않을지라도, 그 실천의 최종 책임자 중의 하나이며, 책임을 질 수 없게 된다면 저로서는 책임자로서의 존재 이유를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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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헌법재판소 앞까지 행진했다.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 위에서 플라스틱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이건 2g폰으로.

 

 

걷기는 행동이다.

읽기는 앉아서 하는 일

걷는 것은 몸을 움직이는 일

나는  늘 발 먼저 떼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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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8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18 1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