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잘해야 4~5번 시행되는 동아리활동(예전에는 계발활동이라고 불렸다.). 신문반, 독서반, 영어회화반 등은 옛날식 명칭이고 요즘은 바리스타반, 토탈공예반, 요가반 등의 시대를 반영한 동아리반들을 많이 운영한다. 지난 15년간 나는 '하이킹반'이라는 이름을 달고 줄곧 아이들과 함께 학교 근처의 공원이나 걷기 좋은 마을길들을 걸어다녔다. 나 혼자서 걷는다면 한 시간이면 족할 거리를 아이들과 다니면 거의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모처럼 산책나온 강아지마냥 아이들은 얌전하게 길을 걷지 않기 때문이다. 조잘대며 까불며, 때로 풀이나 나무이름 맞추기 퀴즈에 열중하면서 길을 걷는 것이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하는 동아리활동이다.

 

이렇게 학교밖으로 나가서 활동을 하게 되면 출장비 1만원이 지급되는데 15년 전이나 현재나 금액은 변하지 않았다. 이 출장비는 현실적인 가치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뿐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어쨋든 학교를 벗어난 활동이니 출장비가 지급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학교라는 조직체가 돈을 따지는 이익집단이 아닌만큼 명목상의 출장비를 그저 받아들일 따름이다.

 

그런데 새 학교로 전근되어 와보니 이 1만 원의 출장비를 아예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교내에서 동아리활동하는 교사와 형평성이 맞지 않아서, 출장비를 지급하면 다수의 교사들이 출장비를 타기 위해 학교밖으로 나가는 활동을 하게 되리라는 우려에서라고 한다. 출장비 1만 원이 주는 형평성도 논리가 빈약하기 이를 데 없지만, 교사들이 단 1만 원의 출장비를 타내기 위해 야외활동이나 외부기관을 이용한 동아리활동을 하려고 기를 쓰는 집단이란 말인가. 이게 평교사에서 관리자가 된 사람이 할 수 있는 발언인가.

 

수십 개의 동아리부서 중 외부로 나가는 부서는 단 5개 부서. 일만 원씩 5회 지급한다해도 연간 25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관리자(주로 교장)들은 꼭 필요한 일이 아닌 경우에도 다반사로 출장을 다닌다. 심하게는 국내 이곳저곳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에 출전하는 학생들을 응원하러 간다는 명분하에 출장비를 이용하여 다녀오기도 한다. 그게 어디 1~2만 원만 들겠는가. 교장 한 사람이 쓰는 출장비가 수십 명의 전교사가 쓰는 출장비와 맞먹는다는 말들을 한다. 정확한 내역은 사실 아무도 모른다. 관리자만 알 뿐이다.

 

귀찮아서 대부분의 교사들은 '그깟 만 원' 안 주면 안 주는가보다 하고 쉽게 잊어버리는데, 나는 그게 안 되었다. 지난 15년간 단 한번도 의심없이 받아온 건데 이걸 못 받다니,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면서 차차 분노로 변해갔다. 처음에는 교무부장한테 부당함을 얘기했더니 교무부장이 교감에게 전달했고 그에 나온 대답이 '형평성에 어긋남'이라는 무성의한 단 한 줄의 초라한 답변이었다. 영혼없는 답변 한 줄을 들으려고 밤새 고민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의 권익을 다루는 사이트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을 찾아내서 프린트했다. 학교 상황에 따라 출장비를 줄이거나 지급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학기초부터 출장비를 예산에 넣지 않는 것은 학교장의 재량권 남용이라는 내용이었다. 학교장에게 이를 시정하도록 요구하라고 하는데 그게 용이치 않을 경우 시교육청의 고충처리위원회에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인쇄물을 점심을 먹고 있는 교감(나보다 두어 살 위)에게 불손하게 들이밀고, 며칠 후 급기야 교장실에 들어가 출장비 미지급의 부당함을 하소연했는데...내 행동이 오만불손했던가. 돌아오는 대답은 이랬다. '절차를 밟고 오십시오.' 절차라 함은, 교무부장→교감→교장이라는 위계 질서대로 문제를 제기하라는 것이다. 교장인 자신한테 오기 전에 교감을 먼저 만나야지 직접 교장한테 오면 중간관리자인 교감의 위치가 난처해진다는 설명이다. 어? 내가 실수했나? 이미 교무부장, 교감한테 할 말은 다 했는데...권위가 밴 교장 앞에서 나는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나이로 치면 기껏 5~6살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데 저 표정에 담긴 단호한 표정은 뭐지? 내가 당신의 심기를 건드렸소? 출장비를 마음대로 남용할 수 있는 당신의 권력에 감히 태클을 거는 내가 무례하게 보였소? 교장실을 쫓겨 나오면서 속으로 분노의 눈물을 흘렀다. 교장이란 존재에게 감히 말을 걸면 안되는구나.

 

그러고 이틀 후. 금요일마다 열리는 기획회의에 이 안건이 올랐다고 한다. 이미 관리자들은 해답을 내놓았을 텐데 그래도 명분이라는 게 있는 거니까 '절차'가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해서 드디어 출장비 1만 원을 받게 되었다.

 

전교조선배교사들이 그런다. '그것도 권력이라고 웃긴다'고. '그렇게 혼자 덤비지 말고 여럿이 함께 해결하자'고. 이런 선배들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걸 진작 알았다면 그렇게 혼자 씩씩대지는 않았을 텐데. 싸움에도 전략이 필요한데 나는 생초보에 불과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이 붉어졌다. 좀 겸연쩍어하는 나를 보고 선배교사들은 '큰 일을 해냈다' 며 엄지를 치켜세워준다.

 

내 나이에 나보다 나이 많은 선배교사들 여럿과 함께 근무하게 된 게 기쁘다. 나도 후배교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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