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있다. 춥다. 날이 더워지면 무안해서 어쩌려고 이리 춥나, 오늘.

 

 

 

 

 

 

 

 

 

 

 

 

 

 

 

 

이 책의 겉표지에 있는 사진을 이해하는데 만 하루가 걸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을라나. 딱 봐도 책을 세워 놓은 사진인데, 책 밑부분에 도서관 스티커가 붙어있어 더 더욱 그림이 확연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대나무공예품인가 뭔가 계속 궁금했다. 그랬으니 이 시집을 읽은들 제대로 읽었으랴만.  

'블랙리스트 시인 99명의 불온한 시 따뜻한 시'라고 쓰여 있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거 읽고 내 마음대로 고른다.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시는 많지 않다.

 

젖은 나무가 마를 때까지

                                            박 남 준

 

옛날을 젖게 하네 양철지붕 저 겨울비

방울방울 바다로 가듯이

그렇게 흐르는 것들 흘러간다 여겼는데

풍경은 꺼내고 들춰지는 것인가

돌이킬 수 없는 사람이 보내온

돌이킬 수 있는 흔적들이 비처럼 젖게 하네

젖는다는 것, 내겐 일찍이 비애의 영역이었는데

비에 젖었던 나무들은 몸의 어디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장작을 팰 나무들 앞마당에 비를 맞는다

젖은 나무가 마를 동안

나는 이미 젖었으므로

햇살이 오는 길목을 마중해야겠지 

언젠가 이 길을 달려오며 나를 들뜨게 했던 기다림들

봄날은 쨍쨍거릴 것이며 장작은 말라갈 것이다

젖은 시간이 말라간다

픽~

오래 흘러왔으므로

나무의 젖은 탄식도 몸을 건너갔다는 것을 안다

천천히 도끼질을 다시 시작한다

몸이 가벼워지는 동안 나뭇간에 발자국 쌓여갈 것이다

 

 

이런 시를 쓰는 시인들을 블랙리스트로 묶어놓다니...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이 영원하리라고 생각했을까? 머리도 참 나쁘다.

 

누군가 울면서 너를 바라볼 때,

네가 그 울음의 주인이 될 때까지 기다려라.

울음은 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함께 울어주는 자에게 건너온 덩굴손이다.

 

    - <누군가 울면서 너를 바라볼 때> (이정록) 중에서

 

 

무장투쟁

                          김 주 대

 

허무에 이르기 위해 스님들의 옷은 무채색이고

고요에 응전하기 위해 머리는 반드럽고 적막합니다

스님들은 잘 무장하였습니다

 

단순한 것만 보기 위해 맑아진 눈

넘어져도 깨지지 않기 위해 말랑한 머리

젖을 빨기 위해 볼 근육을 탱탱하게 한

아기들은 잘 무장하였습니다

 

뱀은 어깨를 말아 몸 안으로 넣고

일어선 천적들의 시선을 피해

다리를 피부에 납작하게 새겼습니다

독을 품고 가는 길 뱀은 잘 무장하였습니다

 

별은 반짝임으로 유서를 남기고

반짝임만으로 소리치고 웁니다

별의 반짝임은 어둠을 몰아내는 무기여서

별은 잘 무장하였습니다

 

문은 손잡이로 무장하였고

장미는 가시로

산새들은 부리를 갈아 뾰족한 노래를 부릅니다

도로는 중앙선으로 무장하였습니다

 

그리고

 

날카로운 세상 어울리지 않는 얘기지만

나는 무기가 시밖에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식구들에게는 참 면목 없는 무장이지만 말입니다.

 

 

'무기가 시밖에 없'는 시인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어쩌겠다고...그들은 시를 읽기나 할까? 나중에 발각되면 창피해서 어쩌려고 그런 짓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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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8-28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진짜 차가운 비바람이 불어요. 갑자기 비가 많이 오는데, 얼마나 올 지 모르겠어요.
지난주에 비오고 나서 햇볕이 뜨거웠던 것 생각하면, 다시 뜨거운 날이 돌아올 것 같기도 하고요.
nama님, 비조심하시고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nama 2017-08-28 19:49   좋아요 1 | URL
오랜만에 긴 바지와 긴 웃옷을 입었는데도 추웠어요. 다시는 더위가 찾아올 것 같지 않을 것처럼 추위가 매몰차더군요. 금방 더워지면 얼마나 무안할까요. 날씨에도 염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지요.
좋은 날 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