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내 손으로 심은 파를 밭에서 뽑아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줄기보다 더 실한 뿌리를 차마 버릴 수 없어 깨끗이 씻어 말리기로 한다. 채반에 담아 햇볕에 널다보니 마음이 울컥거린다. 나는 파뿌리가 될 때까지도 살아남았는데...


2000년대 중반부터 원어민교사와 함께 수업을 진행했었다. 2~3주에 한 시간씩 배당된 원어민교사 수업이 처음엔 학생이나 교사에게 호기심과 기대를 자아냈으나 머지않아 영어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게 되었다. 한국인교사에게는, 원어민교사가 수업을 대신해주니 교실 뒤에 서서 맘 편히 몸 편히 참관하면 그만이었고, 학생들에게는 그저 집중하는 척하면서 적당히 앉아 있으면 되는 부담없는 수업이었다. 게다가 수업은 흥미위주로 각종 게임이나 동영상 등 시험과도 전혀 관계없는 내용이었다. 할로윈이 다가오면 할로윈에 대한 유래 설명보다 할로윈 관련 단어를 찾는 word puzzle 따위를 하면서 적당히 시간을 때우곤 했다. 새로운 지식을 탐하지 않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할로윈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어쨌거나 학교 수업시간에 배우는 건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10대 아이들이었다. 간혹 긍정적인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어도 나 같은 고루한 선생은, 남의 나라의 축제에 불과할 뿐 우리와는 거리가 먼 문화라고 설명하면서 배움의 싹을 잘라버렸다. 시니컬과 시크를 넘나드는 건 선생도 학생도 매한가지. 그래서였던가. 인기라고는 없는 교사 생활은 고되기만 했다는.....


그러나 이런 과정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이루어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내가 어렸을 때 접했던 크리스마스는 어린 우리에게는 기대를 잔뜩 안고 기다려지는 축제였으나 우리 부모세대에게는 별 관심도 없는 다른 나라 문화에 불과했다. 마찬가지로 어려서부터 할로윈을 접한 세대는 기념해야할 축제가 되겠으나 그 부모세대는 아이들이 좋아하니 따라가줘야하는 행사가 되었다. 이 낯선 이방의 문화를 전파한 사람들이 원어민교사들이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게 있다. 중고등학교 영어교과서는 일정한 틀이 있어서 학년별로 정해진 난이도에 따라 단어의 수와 문법요소를 고려해서 편찬하고 그 범위내에서 가르치게 되어 있는데 그 일정한 범위를 벗어나 새로운 것을 맛보게 해주는 것이 바로 원어민교사들이 투입된 수업이었고 그것이 알게모르게 허용되었다. 어느새 이 낯선 문화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게다가 노는 것에 굶주린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해방구가 필요했다.


어쨌거나 그게 하나의 흐름이라면 막기는 어렵다. 막기 어렵다면 따라가주면서 잘 안착되도록 보살펴줘야 한다. 그래서 행정안전부라는 것도 만들었는데... 행안부 장관이 누군지도 관심이 없었는데 장관님의 다음 말씀에 급관심이 생겼다.


"저희가 파악하기로는 예년의 경우와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고, 통상과 달리 경찰이나 소방 인력이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지금 파악을 하고 있다."


아침밥을 먹다가 이상민 장관님의 저 말씀을 듣고 토할 뻔했다. 저 자리에서 고개를 깊이 숙이면서 '모든 책임을 통감하고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해도 시원찮을 판에 빠져나갈 구멍만 찾는 비루한 모습이라니.... 자리가 목숨보다 귀한 거군요, 당신에게는. 당신들에게는. 나나 당신들이나 까만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도 살아남았는데 젊은 목숨들 사라지는 게 안타깝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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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조사가 민폐일까?


  A는 언니의 장례식을 가족끼리 치뤘다. 부모는 모두 작고했고 언니는 결혼을 하지 않아 형제자매와 배우자, 조카, 조카며느리 다 합해서 10명이 전부였다. 언니는, 오랫동안 이어진 입원 생활로 친구 하나 남지 않았다. 쓸쓸한 일생을 보낸 언니는 마지막 길마저 쓸쓸했다. 언니 뿐일까. 가족 또한 오랫동안 쓸쓸했으니 그 쓸쓸함은 누구랑 나눌 수도 없는 슬픔이었기에 더욱 더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은 묵직하고도 끈적거리는 핏덩이같은 외로움이었다. 피로 이루어진 가족의 끈끈함은 벗어날 수 없는 족쇄이기도 했다. A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심연 속으로 가라앉곤 했다.


  A의 친구 B는 최근 딸과 아들의 결혼식을 치뤘다. 30대인 아들과 딸은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을 반듯하게 하고 있고, 결혼식도 본인들의 뜻대로 했다고 한다. 결혼식은 가족끼리 했는데 부모와 형제자매와 배우자, 조카, 조카며느리 포함, 양가 합해서 80여 명이었으니 다복한 집안임에 틀림없다. 친족이 아닌 가족 구성원들의 친구와 지인까지 초대했다면 결혼식이 성황을 이루었으리라.


A와 B는 이런 경조사를 치르면서 친구 한 명 부르지 않았다. A는 그나마 친구 C를 통해서 단체 카톡방에 부고 사실을 알리며 양해를 구했는데, B는 대사를 모두 치른 후에 결혼식 사진을 올려 친구들을 경악하게 했다. 50년 된 죽마고우들을 깜쪽같이 속인 깜쪽같은 친구 B. 카톡방에 미리 한마디쯤 흘리는 게 그렇게 어려웠을까. 아니 쉬웠을까. 단톡방을 알맹이 없는 깡통으로 만들어버린 B. 민폐 끼치기 꺼린 친구 대신 제 역할 못한 카톡만 씁쓸하게 원망한다.


* 위의 글을 딸에게 보여주니, A는 모르는 사람이 봐도 엄마이고, 친구 B한테 단단히 서운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며, 그럴 수 있겠다며 키득거린다. 친구가 가족이 될 수야 없지만 어찌보면 가족보다 가까울 수도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도 잠시. 섭섭한 감정을 어떻게 풀까나....카톡에서 내 패를 모두 보여주면 안되는 거구나...하는 씁쓸함.



2. 그깟 영어 하나 가지고








코***에서 구입한 영업용 청소기. 상자 위에 쓰여있는 각국의 언어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이중에서 대 여섯 나라의 단어를 넘겨짚어가며 읽는다고 해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다.

도저히 발음할 수 없는 외계어같은 말들. 영어 하나 배우느냐고 고생도 참 많이 했는데 그래봐야 

조족지혈. 급 겸손해짐.



3. '어쨌건 페미니스트인 Y에게'















여기저기에서 인용되는 고 장춘익 교수의 글을 드디어 접했다. 


감히 조언자 역할을 해도 된다면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하나는 네가 세상에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흡수하는 것이 더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뿌리에서 흡수하는 것보다 많은 수분을 방출하는 식물은 고사한다. 대기의 온도가 높을수록 더 많은 수분을 빨아들여야 하지. 항의할 줄 알아야 하지만, 나중에 자신이 줄 것도 있어야 한다. 세상에 애정과 호기심을 가지고, 네 지식과 정서의 저장고를 듬뿍 채워두어라. 페미니즘이 네 주장의 설득력을 보증해주는 것이 아니라, 너의 지식이 너의 페미니즘에 설득력을 가져다주는 것이야. 페미니즘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지적으로 신뢰받을 수 있어야 사람들이 네 페미니즘도 신뢰한단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기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네가 너의 기쁨을 찾는다고 해서 항의의 진실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란다. 오히려 너의 기쁨과 생동성만큼 너의 주장에 전반적인 설득력을 가져다주는 것도 없단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내놓거나 혹은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보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것에 다른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도록 해라. 그렇게 하려면 너에게 어떤 즐거움이 있어야 한단다. 종교수행자가 괴로운 표정만 짓고 있으면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질 수 있겠니? 다 버리고도 잔잔한 미소를 짓는 그런 '다름'에 비로소 사람들이 압도디는 것이다.    -p.20



처음엔 장춘익 교수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매우 헷갈리고 궁금했다. 그분과 함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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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병, 불치병이라고 해두자. 불가항력적인 이 병에 걸리면 나 같은 인간은 세상을 원망하고 신을 지독히도 미워하느라고 제명대로 못살 것이다. 그것도 태어나면서부터 얻게 된 병이라면.


입학식에는 이 학생의 어머니만 참석했다. 5층에 자리한 강당에 올라오는 게 힘겨웠는지 호흡이 거칠고 땀을 흘리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그리 건강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물어보진 못했지만 기저질환을 앓고 있을 것 같았다. 입학식이 끝난 후 이 학생 몫의 교과서를 챙겨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후 일년 내내 이 학생은 한번도 등교하지 않았다. 등교하지 않아도 되었다. 집에서 온라인으로 교육청이 제시한 사이트에 들어가서 출석체크와 정해진 수업분량만 채우면 되었다. 연 네 차례의 시험을 볼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까 학교에 적을 두는 형태로 소속을 정해주었을 뿐 학교 생활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어린 마음에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교복도 입어보고 싶고 친구들과도 어울리고 싶고 한창 유행중인 빨간색 립밤도 바르고 싶었을 것이다. 엄마의 휴대폰에 담긴 교복 입은 모습은 여느 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다만 교복을 입었으되 밖으로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이 형벌처럼 잔인할 뿐이었다.


엄마는 메신저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각종 서류도 그때그때 제출했고 자녀의 학업 생활에 필요한 정보교환도 놓치지 않았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학교에 와서 일처리를 했기에 엄마를 자주 만나게 되었다. 이제는 나도 나이가 들어 학부모의 나이가 내 나이를 넘는 사람이 없어서 학부모를 대하는 일도 그리 부담되지는 않았다. 나이듦의 편안함을 조금은 누릴 수 있게 되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한번도 출석하지 못하는 학생의 담임이라는 게 좀 이상하긴 했지만 시간은 잘도 흘러 여름방학에 들어갔다. 타지역에서 3일간의 연수를 받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이 학생의 엄마였다. 말을 머뭇거리고 있어서 용건을 여쭸다. 다음날 갚을테니 70만 원을 빌려줄 수 없냐고 묻는다. 간절하고 답답한 심정이 전해져왔으나 순간의 판단은, 빌려준다면 돌려받지 못할 돈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순간 당황한 나는 회피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더듬거리며 거절의 말을 했으리라. 나 자신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어 괴롭기도 했다. 그간의 이해와 공감은 돈 앞에서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들고 있었다. 나도 내가 마음에 안들었다.


개학이 되어 학교에 돌아와 이런 사건을 얘기하니 교감샘이 웃으며 그런다. "한번 빌려줘보시지 그랬어요." 그게 또 그렇다. 타인은 무심하다.



학교생활이 너무나 피곤했다. 얼마 후 학교를 영영 떠났다. 물론 이 일 때문은 아니었다. 가뜩이나 무겁고 지친 삶의 무게 때문에 쓰러질 찰나 지푸라기 하나 얻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도중하차, 자랑스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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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쯤 될까? 가물가물한 기억을 헤집어본다. 학급당 학생수가 50여 명쯤 하는 시절이었고 지금은 잊혀진 아이들 얼굴을 애써 떠올릴 수도 없지만 한 학생만큼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말이 없고 조용히 앉아있던 그 학생 때문이 아니라 그 학생의 어머니 때문이다. 아마도 학년 초에 열리는 학부모 총회에서 만났을 것이다. 아닌가? 잘 모르겠다. 하여튼 그 학생의 어머니와 얘기를 나누었고 자녀 중에 자폐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폐아가 주는 어감 때문에, 나 역시 장애가 있는 언니를 두었기에, 그 학생을 유심히 보게 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따로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자폐아를 동생으로 둔 아이의 마음은 어떨까 상상하며 일상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을 뿐이다.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 학년 말이 되었을 무렵, 정확히는 김장철 무렵, 이 어머니가 갓담근 김장김치 세 통(아마도)을 손수 들고 내가 사는 아파트를 찾아오셨다. 고소공포증(밀실공포증?)으로 엘리베이터를 타면 심장이 두근거린다며 식은땀을 흘리고 계셨다. 예전에 어떤 선생님에게 드렸는데 제 때에 냉장고에 넣지 않아서 결국 못먹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시며 이마에 흘린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숨을 돌리셨다. 고마움과 죄송한 마음으로 염치없이 김치통을 받았다. 묵직했다. 배추김치, 알타리김치, 파김치였던가. 종류를 달리한 김치 세 통을 이삼일 실온에서 익힌 후 냉장고에 넣으니 냉장고가 꽉 찼다. 그해 겨울 그 김치를 먹을 때마다 이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후로도 그 김치가 떠오를 때마다 생각해보았다. 자녀의 담임선생님이 뭐가 그리 이쁘다고, 뭐가 고맙다고 이런 수고를 하셨을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아픈 자녀가 있으면 엄마의 마음도 늘 아프다. 아픈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서 내 아픔을 보아달라고, 알아달라고 할 수는 없다. 차라리 내가 남을 보듬어주는 게 내 아픈 마음을 들키지 않고 나를 위로하는 방법이 된다는 것을. 그러니 누군가 조건없이 내게 무엇인가를 베풀 때는 잠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 사람의 마음의 밑자락을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위의 책. 김치통과 함께 주신 건지, 나중에 주신 건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저 책을 직접 쓰셨는지도 정확하지 않다. 직접 쓰신 걸로 기억하는데 내용을 읽다보니 아닌 것도 같고.....그게 또 그렇다. 타인은 무심하다.

 

1월 12일

  '버스 금강 추락 38명 사망'

  신문에 대문짝만한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사람이 떼죽음을 당하는 세상이다.

  외로운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 고장난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내는 아이. 현실적으로 보아도 가엾기 그지없고 절망감난 안겨 주지만 종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맑고 깨끗한 영혼의 소유아이리라. 이럴 때는 겨울 열차를 타고 조용한 간이역에서 혼자 내리고 싶다.      -55쪽

 

1월 13일

  내가 당면하고 있는 이 시련은 아무것도 아닐 수가 있다. 죽음을 생각해 보자. 죽음은 모든 것을 앗아가버린다. 이 시련조차도.

  그래서 이 시련은 생명이 숨쉬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 생명을 열렬히 사랑하라는 신의 가르침이 있다.     -55쪽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낫지, 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내는 장애아 엄마. 지금은 어떻게 살고 계신가요? 잘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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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8 1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29 1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22-08-28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조건없이 베풀 때는 잠시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말씀 너무 와 닿습니다!!! 잘 지내시죠??

2022-08-29 1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30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31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Ⅰ.

 

       

 

 

오늘 날짜 신문을 마지막으로 신문구독을 해지했다. 강원도 오지를 오가며 생활하자니 챙길 것과 챙기지 못할 것이 생기기 마련이다. 삼십 년 넘게 구독해온 한겨레신문을 더 이상 챙길 수 없게 되었다. 강원도 오지까지 신문배달이 가능할 것 같지 않고, 그렇잖아도 요즈음 윤 당선자의 얼굴을 신문에서 보는 날이 많아지면서 정나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책 소개가 실린 토요판은 일주일 중 제일 기대를 품고 기다리곤 했는데 이젠 무슨 낙으로 토요일을 맞이할까나.

 

어렸을 때 아버지가 구독한 신문은 서울신문이었는데 나중에는 조선일보로 바꾸었다. 한자병용의 세로 신문으로 아버지는 늘 사설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는데 착실하게 사설을 읽은 적은 거의 없지만.... 신문은 쌀과 같은 존재였다. 집구석에 쌀 떨어지는 일 없이 살아왔듯 역시 신문 떨어지는 일 없이 평생(직장생활을 시작한 1~2년을 제외하고)을 집구석에 신문을 흘려가며 살아왔다. 손톱을 깎을 때, 댕댕이 밥 그릇과 물 그릇을 받쳐줄 때, 만주 빚을 때, 김치 담글 때....요긴하게 사용했는데 이젠 무엇으로 대체하나....

 

일주일 전에 신문구독을 해지하겠다고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는데 꼭 이별통보하는 기분이었다. 오늘 마지막으로 배달된 신문을 보고있자니 하루종일 쓸쓸하고 울적해져서 이런 글이나마 쓰고 있다는.....

 

 

Ⅱ.

 

 

왼쪽은 1986년에 출간된 책으로 20대 백수 시절에 책상에 반듯하게 앉아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비록 백수였지만 평생 책만 읽는 형벌이라면 달게 받으리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무슨 수험서 읽듯 한글자한글자 꼭꼭 눌러가며 읽었던 책이다. 그리고 네루의 <세계사편력>을 읽은 사람이라고 내심 자부해왔다. 그런데....얼마전 강병관의 <책벌레의 여행법>을 읽다가 네루의 이 책이 인도에 관한 역사를 다룬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왼쪽의 책에선 인도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강병관의 <책벌레의 여행법>에서 인용한 인도 역사 부분도 놀라웠다. 그간 인도에 관한 책을 좀 읽었다고 자부해왔는데 정작 중요한 네루의 이 책을 놓쳤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가뜩이나 새로 나오는 좋은 책들로 넘쳐나는데 오른쪽 책은 언제 다 읽나...3권까지 있는데.

 

 

 

Ⅲ.

 

 

올리비아 랭의 <이상한 날씨>에서 데릭 저먼에 관한 글을 읽고 저지른 책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There is no book I love more than Modern Nature.

 

 

 

 

 

 

 

 

 

 

 

 

 

 

 

영화감독 데릭 저먼이 AIDS로 사망한 후 영화배우 틸다 스윈턴이 3년 동안 활동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여러 사실이 아찔하면서도 즐거웠다. 이 책은 그러니까 데릭 저먼이 HIV에 걸린 후 황무지 해변에 정원을 가꾸며 하루하루를 기록한 일기이자 자신의 인생에 대한 명상록이라고 한다.(겉표지를 자세히 보면 저 멀리 원자력발전소가 보인다.) 예술가, 작가, 영화제작자, 그리고 동성애자였던 사람의 말년의 일기. 내가 이 책을 읽을 수 있으려나...부지런한 누군가가 번역해주길 기다리는 게 낫지 싶다.

 

대강 펼친 페이지에서 눈에 들어온 문장.(빽빽한 문장이 아니어서 눈에 띄었을 게 확실한)

 

Spent the morning reading Matthew, and Wisdom.

 

Our name will be forgotten in time

And no-one will remember our works

Our life will pass away like the traces of a cloud

And be scattered like mist

That is chased by the rays of the sun

And overcome by its heat

For our allotted time is the passing of a shadow

And will run like sparks through the stubble

 

                                         -p.108 

 

 

Ⅳ.

 

 

강원도 오지는 거대한 숲이자 정원이다. 눈을 비비고 자세히 살펴보면 아름다운 꽃들도 많고 생전 처음보는 곤충(벌레)도 많고 식용 가능한 나물도 많다. 요건 우산나물로 맛은 좋지만 요렇게 이쁜 걸 어떻게 먹나.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신문과의 이별을 달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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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22-04-30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깡촌에 살다가 그나마 소도시로 진출했을 때 가장 기뻤던게 조간신문을 구독할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ㅎㅎㅎ 종이신문에 대한 로망은 언제나 있는데 그 썩렬이 면상 볼 생각을 하니 도저히 용기가 안나네요

얄라알라 2022-04-30 21:21   좋아요 1 | URL
박균호 선생님 반갑습니다. nama님 한겨레 구독해지 이유에 아주 공감하던 차, 선생님께서도 공감을 보내주셨네요^^

nama 2022-04-30 21:38   좋아요 1 | URL
저는 깡촌으로 가는 덕분에 신문에서 해방되었어요. 정권 바뀌면...그때도 종이 신문이 남아있을까요?

얄라알라 2022-04-30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산 나물? 처음 들어보는데, 이름을 먼저 알게 되어 그런가, 정말 우산처럼 보이네요. 노끈으로 일부러 묶어놓으신 건지, 아니면 원래 저렇게 묶여서 자라는지 어리석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너무 뭘 모릅니다...

nama 2022-04-30 21:34   좋아요 1 | URL
노끈으로 일부러 묶은 건 아니구요. 그저 자연의 장난(?)으로 저런 모습이 되었어요. 우연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