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오늘 날짜 신문을 마지막으로 신문구독을 해지했다. 강원도 오지를 오가며 생활하자니 챙길 것과 챙기지 못할 것이 생기기 마련이다. 삼십 년 넘게 구독해온 한겨레신문을 더 이상 챙길 수 없게 되었다. 강원도 오지까지 신문배달이 가능할 것 같지 않고, 그렇잖아도 요즈음 윤 당선자의 얼굴을 신문에서 보는 날이 많아지면서 정나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책 소개가 실린 토요판은 일주일 중 제일 기대를 품고 기다리곤 했는데 이젠 무슨 낙으로 토요일을 맞이할까나.

 

어렸을 때 아버지가 구독한 신문은 서울신문이었는데 나중에는 조선일보로 바꾸었다. 한자병용의 세로 신문으로 아버지는 늘 사설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는데 착실하게 사설을 읽은 적은 거의 없지만.... 신문은 쌀과 같은 존재였다. 집구석에 쌀 떨어지는 일 없이 살아왔듯 역시 신문 떨어지는 일 없이 평생(직장생활을 시작한 1~2년을 제외하고)을 집구석에 신문을 흘려가며 살아왔다. 손톱을 깎을 때, 댕댕이 밥 그릇과 물 그릇을 받쳐줄 때, 만주 빚을 때, 김치 담글 때....요긴하게 사용했는데 이젠 무엇으로 대체하나....

 

일주일 전에 신문구독을 해지하겠다고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는데 꼭 이별통보하는 기분이었다. 오늘 마지막으로 배달된 신문을 보고있자니 하루종일 쓸쓸하고 울적해져서 이런 글이나마 쓰고 있다는.....

 

 

Ⅱ.

 

 

왼쪽은 1986년에 출간된 책으로 20대 백수 시절에 책상에 반듯하게 앉아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비록 백수였지만 평생 책만 읽는 형벌이라면 달게 받으리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무슨 수험서 읽듯 한글자한글자 꼭꼭 눌러가며 읽었던 책이다. 그리고 네루의 <세계사편력>을 읽은 사람이라고 내심 자부해왔다. 그런데....얼마전 강병관의 <책벌레의 여행법>을 읽다가 네루의 이 책이 인도에 관한 역사를 다룬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왼쪽의 책에선 인도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강병관의 <책벌레의 여행법>에서 인용한 인도 역사 부분도 놀라웠다. 그간 인도에 관한 책을 좀 읽었다고 자부해왔는데 정작 중요한 네루의 이 책을 놓쳤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가뜩이나 새로 나오는 좋은 책들로 넘쳐나는데 오른쪽 책은 언제 다 읽나...3권까지 있는데.

 

 

 

Ⅲ.

 

 

올리비아 랭의 <이상한 날씨>에서 데릭 저먼에 관한 글을 읽고 저지른 책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There is no book I love more than Modern Nature.

 

 

 

 

 

 

 

 

 

 

 

 

 

 

 

영화감독 데릭 저먼이 AIDS로 사망한 후 영화배우 틸다 스윈턴이 3년 동안 활동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여러 사실이 아찔하면서도 즐거웠다. 이 책은 그러니까 데릭 저먼이 HIV에 걸린 후 황무지 해변에 정원을 가꾸며 하루하루를 기록한 일기이자 자신의 인생에 대한 명상록이라고 한다.(겉표지를 자세히 보면 저 멀리 원자력발전소가 보인다.) 예술가, 작가, 영화제작자, 그리고 동성애자였던 사람의 말년의 일기. 내가 이 책을 읽을 수 있으려나...부지런한 누군가가 번역해주길 기다리는 게 낫지 싶다.

 

대강 펼친 페이지에서 눈에 들어온 문장.(빽빽한 문장이 아니어서 눈에 띄었을 게 확실한)

 

Spent the morning reading Matthew, and Wisdom.

 

Our name will be forgotten in time

And no-one will remember our works

Our life will pass away like the traces of a cloud

And be scattered like mist

That is chased by the rays of the sun

And overcome by its heat

For our allotted time is the passing of a shadow

And will run like sparks through the stubble

 

                                         -p.108 

 

 

Ⅳ.

 

 

강원도 오지는 거대한 숲이자 정원이다. 눈을 비비고 자세히 살펴보면 아름다운 꽃들도 많고 생전 처음보는 곤충(벌레)도 많고 식용 가능한 나물도 많다. 요건 우산나물로 맛은 좋지만 요렇게 이쁜 걸 어떻게 먹나.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신문과의 이별을 달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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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22-04-30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깡촌에 살다가 그나마 소도시로 진출했을 때 가장 기뻤던게 조간신문을 구독할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ㅎㅎㅎ 종이신문에 대한 로망은 언제나 있는데 그 썩렬이 면상 볼 생각을 하니 도저히 용기가 안나네요

얄라알라 2022-04-30 21:21   좋아요 1 | URL
박균호 선생님 반갑습니다. nama님 한겨레 구독해지 이유에 아주 공감하던 차, 선생님께서도 공감을 보내주셨네요^^

nama 2022-04-30 21:38   좋아요 1 | URL
저는 깡촌으로 가는 덕분에 신문에서 해방되었어요. 정권 바뀌면...그때도 종이 신문이 남아있을까요?

얄라알라 2022-04-30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산 나물? 처음 들어보는데, 이름을 먼저 알게 되어 그런가, 정말 우산처럼 보이네요. 노끈으로 일부러 묶어놓으신 건지, 아니면 원래 저렇게 묶여서 자라는지 어리석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너무 뭘 모릅니다...

nama 2022-04-30 21:34   좋아요 1 | URL
노끈으로 일부러 묶은 건 아니구요. 그저 자연의 장난(?)으로 저런 모습이 되었어요. 우연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