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조사가 민폐일까?


  A는 언니의 장례식을 가족끼리 치뤘다. 부모는 모두 작고했고 언니는 결혼을 하지 않아 형제자매와 배우자, 조카, 조카며느리 다 합해서 10명이 전부였다. 언니는, 오랫동안 이어진 입원 생활로 친구 하나 남지 않았다. 쓸쓸한 일생을 보낸 언니는 마지막 길마저 쓸쓸했다. 언니 뿐일까. 가족 또한 오랫동안 쓸쓸했으니 그 쓸쓸함은 누구랑 나눌 수도 없는 슬픔이었기에 더욱 더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은 묵직하고도 끈적거리는 핏덩이같은 외로움이었다. 피로 이루어진 가족의 끈끈함은 벗어날 수 없는 족쇄이기도 했다. A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심연 속으로 가라앉곤 했다.


  A의 친구 B는 최근 딸과 아들의 결혼식을 치뤘다. 30대인 아들과 딸은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을 반듯하게 하고 있고, 결혼식도 본인들의 뜻대로 했다고 한다. 결혼식은 가족끼리 했는데 부모와 형제자매와 배우자, 조카, 조카며느리 포함, 양가 합해서 80여 명이었으니 다복한 집안임에 틀림없다. 친족이 아닌 가족 구성원들의 친구와 지인까지 초대했다면 결혼식이 성황을 이루었으리라.


A와 B는 이런 경조사를 치르면서 친구 한 명 부르지 않았다. A는 그나마 친구 C를 통해서 단체 카톡방에 부고 사실을 알리며 양해를 구했는데, B는 대사를 모두 치른 후에 결혼식 사진을 올려 친구들을 경악하게 했다. 50년 된 죽마고우들을 깜쪽같이 속인 깜쪽같은 친구 B. 카톡방에 미리 한마디쯤 흘리는 게 그렇게 어려웠을까. 아니 쉬웠을까. 단톡방을 알맹이 없는 깡통으로 만들어버린 B. 민폐 끼치기 꺼린 친구 대신 제 역할 못한 카톡만 씁쓸하게 원망한다.


* 위의 글을 딸에게 보여주니, A는 모르는 사람이 봐도 엄마이고, 친구 B한테 단단히 서운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며, 그럴 수 있겠다며 키득거린다. 친구가 가족이 될 수야 없지만 어찌보면 가족보다 가까울 수도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도 잠시. 섭섭한 감정을 어떻게 풀까나....카톡에서 내 패를 모두 보여주면 안되는 거구나...하는 씁쓸함.



2. 그깟 영어 하나 가지고








코***에서 구입한 영업용 청소기. 상자 위에 쓰여있는 각국의 언어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이중에서 대 여섯 나라의 단어를 넘겨짚어가며 읽는다고 해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다.

도저히 발음할 수 없는 외계어같은 말들. 영어 하나 배우느냐고 고생도 참 많이 했는데 그래봐야 

조족지혈. 급 겸손해짐.



3. '어쨌건 페미니스트인 Y에게'















여기저기에서 인용되는 고 장춘익 교수의 글을 드디어 접했다. 


감히 조언자 역할을 해도 된다면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하나는 네가 세상에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흡수하는 것이 더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뿌리에서 흡수하는 것보다 많은 수분을 방출하는 식물은 고사한다. 대기의 온도가 높을수록 더 많은 수분을 빨아들여야 하지. 항의할 줄 알아야 하지만, 나중에 자신이 줄 것도 있어야 한다. 세상에 애정과 호기심을 가지고, 네 지식과 정서의 저장고를 듬뿍 채워두어라. 페미니즘이 네 주장의 설득력을 보증해주는 것이 아니라, 너의 지식이 너의 페미니즘에 설득력을 가져다주는 것이야. 페미니즘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지적으로 신뢰받을 수 있어야 사람들이 네 페미니즘도 신뢰한단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기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네가 너의 기쁨을 찾는다고 해서 항의의 진실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란다. 오히려 너의 기쁨과 생동성만큼 너의 주장에 전반적인 설득력을 가져다주는 것도 없단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내놓거나 혹은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보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것에 다른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도록 해라. 그렇게 하려면 너에게 어떤 즐거움이 있어야 한단다. 종교수행자가 괴로운 표정만 짓고 있으면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질 수 있겠니? 다 버리고도 잔잔한 미소를 짓는 그런 '다름'에 비로소 사람들이 압도디는 것이다.    -p.20



처음엔 장춘익 교수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매우 헷갈리고 궁금했다. 그분과 함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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