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병, 불치병이라고 해두자. 불가항력적인 이 병에 걸리면 나 같은 인간은 세상을 원망하고 신을 지독히도 미워하느라고 제명대로 못살 것이다. 그것도 태어나면서부터 얻게 된 병이라면.
입학식에는 이 학생의 어머니만 참석했다. 5층에 자리한 강당에 올라오는 게 힘겨웠는지 호흡이 거칠고 땀을 흘리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그리 건강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물어보진 못했지만 기저질환을 앓고 있을 것 같았다. 입학식이 끝난 후 이 학생 몫의 교과서를 챙겨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후 일년 내내 이 학생은 한번도 등교하지 않았다. 등교하지 않아도 되었다. 집에서 온라인으로 교육청이 제시한 사이트에 들어가서 출석체크와 정해진 수업분량만 채우면 되었다. 연 네 차례의 시험을 볼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까 학교에 적을 두는 형태로 소속을 정해주었을 뿐 학교 생활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어린 마음에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교복도 입어보고 싶고 친구들과도 어울리고 싶고 한창 유행중인 빨간색 립밤도 바르고 싶었을 것이다. 엄마의 휴대폰에 담긴 교복 입은 모습은 여느 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다만 교복을 입었으되 밖으로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이 형벌처럼 잔인할 뿐이었다.
엄마는 메신저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각종 서류도 그때그때 제출했고 자녀의 학업 생활에 필요한 정보교환도 놓치지 않았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학교에 와서 일처리를 했기에 엄마를 자주 만나게 되었다. 이제는 나도 나이가 들어 학부모의 나이가 내 나이를 넘는 사람이 없어서 학부모를 대하는 일도 그리 부담되지는 않았다. 나이듦의 편안함을 조금은 누릴 수 있게 되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한번도 출석하지 못하는 학생의 담임이라는 게 좀 이상하긴 했지만 시간은 잘도 흘러 여름방학에 들어갔다. 타지역에서 3일간의 연수를 받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이 학생의 엄마였다. 말을 머뭇거리고 있어서 용건을 여쭸다. 다음날 갚을테니 70만 원을 빌려줄 수 없냐고 묻는다. 간절하고 답답한 심정이 전해져왔으나 순간의 판단은, 빌려준다면 돌려받지 못할 돈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순간 당황한 나는 회피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더듬거리며 거절의 말을 했으리라. 나 자신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어 괴롭기도 했다. 그간의 이해와 공감은 돈 앞에서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들고 있었다. 나도 내가 마음에 안들었다.
개학이 되어 학교에 돌아와 이런 사건을 얘기하니 교감샘이 웃으며 그런다. "한번 빌려줘보시지 그랬어요." 그게 또 그렇다. 타인은 무심하다.
학교생활이 너무나 피곤했다. 얼마 후 학교를 영영 떠났다. 물론 이 일 때문은 아니었다. 가뜩이나 무겁고 지친 삶의 무게 때문에 쓰러질 찰나 지푸라기 하나 얻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도중하차, 자랑스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