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국 대적 퇴치 설화(地下國大敵退治說話)
지하국의 큰 적을 물리치는 이야기
옛날 아귀 귀신이라는 큰 도둑이 있었다. 그는 종종 이 세상에 나와서 세상을 요란하게 하고 예쁜 여자를 도적질해 가기도 하였다. 어떤 때 아귀 귀신은 나라의 세 공주를 한꺼번에 도적질하여 갔다. 그래서 왕은 모든 신하를 모아 놓고 귀신 잡을 계획을 물어보았으나 신기한 법을 말하는 자가 없었다. 그 중에 한 사람의 무신(무신)이 나와 말하기를,
"임금님, 신의 집은 대대로 국록을 먹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신의 목숨을 다하여 국은의 만에 일이라도 갚고자 합니다. 모쪼록 신으로 하여금 그 귀신을 퇴치케 하여 주십시오. 반드시 세 공주님을 구하여 오겠습니다."
하였다. 임금은 그것을 허락하였다. 그리고 말하기를,
"누구든지 공주를 구하여 오는 사람에게는 나의 가장 사랑하는 막내딸을 줄 것이다."
고 하였다. 무신은 몇 명의 부하를 데리고 아귀 귀신의 소굴을 찾아 출발하였다. 그는 수년 동안 천하의 방방곡곡을 찾아 돌아다녔으나 귀신의 소굴이 어느 곳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루는 어떤 산모퉁이에서 피곤한 몸을 잠시 쉬고 있는 동안에 꿈을 꾸었다. 한 사람의 백발 노인이 나타나서,
"나는 이 산의 산신령이다. 네가 찾아다니는 아귀 귀신의 소굴은 이 산의 저쪽에 있는 산의 또 저쪽에 있는 산 중에 잇다. 그 산으로 가면 너는 이상한 바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바위를 들고 보면, 겨우 한 사람의 몸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을 것이다. 그 구멍으로 내려가면 구멍은 점점 커지고 구멍 밑에서는 별세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가 즉 아귀 귀신의 나라다."
하고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무신은 노인이 가르쳐 준 대로 산을 넘고 골을 지나 아귀 귀신 있는 산까지 왔다. 정말 이상한 바위를 발견하여 그것을 들고 보니 조그만 구멍이 있었다. 무신은 부하들에게 명하여 튼튼한 새끼를 꼬고 한 개의 광주리를 얽었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누가 먼저 광주리를 타고 내려가서 아귀 귀신의 동정을 살피고 오겠느냐?"
고 하엿으나 한 사람도 응답하는 자가 없었다. 그는 부하 한 사람에게 내려가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만일 중도에서 위험이 있거든 줄을 흔들어라. 그러면 줄을 끌어올려 주마."
하였다. 그 자는 지상에서 조금 내려간 곳에서 줄을 흔들었다. 두려운 까닭이었다. 다음 자는 절반이나 간 곳에서 흔들었다. 또 그 다음 자는 거의 다 내려간 곳에서 줄을 흔들었다. 이번에는 할 수 없이 무신 자신이 내려가기로 했다. 그는 무사히 밑바닥까지 이르렀다.
그는 눈앞에 펼쳐진 넓고 훌륭한 세계를 보았다. 그 중에 제일 훌륭한 집이 귀신의 집 같았다. 그는 곧 귀신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깨닫고 귀신의 집 옆에 있는 우물가의 큰 나무 위에 올라가서 모양을 보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한 예쁜 색시가 머리에 울동이를 이고 우물에 물을 길러 귀신의 집에서 나왔다. 가까이 왔을 때에 그 여자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분명 공주 중의 한 사람이었다. 공주가 물을 한 동이 길어서 그것을 이고자 동이의 두 귀를 잡았을 때 무신은 나뭇잎을 한줌 훑어서 공주의 물동이 위에 떨어뜨렸다. 공주는,
'바람도 몹시 분다."
하면서 길었던 물을 버리고 다시 길었다. 다시 길었을 때 그는 다시 나뭇잎을 떨어뜨렸다. 세 번 만에 공주는,
"이상도 하다. 오늘은 바람도 없는데."
하면서 나무 위를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한 사람의 세상 사람이 있었다.
"당신은 보아하니 세상 사람인 듯한데 어째서 이런 도적의 굴에 들어왔씁니까?"
하고 공주는 물었다. 무신은 나무에서 내려와 그간 사정을 말하였다.
"그러나 귀신의 집 문전에는 사나운 문지기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집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하고 공주는 걱정하였다. 무신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제가 젊었을 때에 어떤 도사에게 배운 약간의 술법이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수박이 될 터이니 이렇게 이렇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무신은 약 십 보쯤 공중으로 뛰었다. 그러자 그는 한 개의 수박이 되었다. 공주는 그것을 치맛자락에 싸서 무난히 귀신 집 안에 들어가 선반 위에 올려 두었다. 문지기는 공주의 치맛자락을 조사하여 보았으나 수박이므로 별로 의심치 않고 통과시킨 것이었다.
그러나 아귀 귀신은,
"사람 냄새가 나니 웬일이냐?"
고 야단을 치며 공주들을 추궁하였다. 공주들은 태연하게,
"그럴 리가 있습니까? 아마 병중에 계시므로 마음으로 그렇게 느끼시는 것이지요."
하고 속였다. 아귀 귀신은 그때 마침 몸이 조금 편치 못하여 누워있던 중이었다. 공주들은 독한 술을 몇 독 만들어 두고 귀신의 병이 낫기를 기다렸다. 수일 후에 공주들은 독한 술과 세 마리 돼지를 잡아 큰 잔치를 벌이고, 아귀 귀신을 청하여,
"대감의 병환이 나았으므로 우리들은 쾌차를 축하하기 위하여 이렇게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오늘은 우리들과 함께 재미있게 놉시다."
하면서 전에 없던 갖은 아양을 피우므로, 귀신은 속으로,
'이제는 내 말을 들을 모양인가보다.'
하고 좋아서 세 독의 독한 술을 남기지 않고 마셨다. 또 공주들은 아귀의 머리의 이까지 잡아 주었으므로 아귀는 더욱 마음을 놓고,
오늘은 그대들이 나를 위해 잔치를 벌렸으니 그 대신 나는 그대들의 소원은 무엇이든지 들어주기로 하겠다."
고 했다. 공주들은 매우 기뻐서,
"저희들에게는 별로 소망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알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대감은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분인데 그래도 죽는 수가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귀신은 방심했던 터이라 의심없이 이렇게 답하였다.
"내가 아무리 강할지라도 죽는 수가 있고말고. 내 옆구리 양쪽에는 두 개씩의 비늘이 있는데 그것을 떼어 버리면 나는 죽어 버린다. 하지만 그것을 뗄 놈이 세상에는 없단 말이야, 하."
아귀 귀신은 대취하여 코를 골며 깊이 잠들었을 때, 한 공주는 귀신이 평생에 사랑하던 허리에 찬 칼을 빼려고 손을 칼자루에 댔다. 별안간 칼은 쟁쟁 울기 시작하였다. 공주는 왼발을 구르며 호령하였다. 그러자, 칼은 울기를 멈추었다. 공주는 귀신의 좌우 옆구리에 붙은 비늘 네 개를 칼로 떼었다. 그랬더니 귀신의 머리가 떨어져 천장에 뛰어 붙었다가 다시 목에 붙으려고 하였다. 그때에 다른 공주가 예비하였던 매운 재를 급히 목에 뿌렸으므로 목은 다시 붙지 못하고, 아귀 귀신의 머리는 눈물을 흘리며 땅바닥에 떨어졌다. 귀신은 죽었다.
공주들과 무신은 수일 만에 구멍 있는 곳까지 왔다. 광주리는 약속대로 있었다. '공주님들부터 구해 올려야 하겠다'고 생각한 무신은 공주를 한 사람 한 사람씩 광주리에 태워서 줄을 흔들었다. 위에서 기다리던 부하들은 좋아라고 줄을 당겨 올렸다. 세 사람의 공주들을 구해 올린 부하들은 최후의 광주리를 내려보내 주지를 않았다. 뿐만 아니라 광주리 대신 큰 바위를 굴려 떨어뜨렸다.
악한 부하들은 공주들을 데리고 고국으로 돌아가서 왕 앞에 나아갔다. 왕은 크게 기뻐하며 잔치를 벌렸다. 왕은 그들이 공주들을 구하여 왔다고만 믿은 까닭이었다.
무신은 벼락치듯 떨어지는 바위에 놀라 몸을 피하였으므로 겨우 죽기는 면하였으나 구멍으로 나갈 방법이 무신에게는 없었다. 오직 탄식만 하고 있을 때, 전에 현몽하였던 노인이 다시 나타나 말 한 필을 주며,
'이 말을 타면 땅 위에 올라갈 수가 있을 것이다.'
하였다. 무신은 그 말을 타고 한번 채찍질하였다. 말은 한번 울음과 함께 비조같이 날아 수십 길이나 되는 구멍을 단번에 뛰어올랐다. 말은 눈물을 흘리면서 무신과 작별하고 다시 구멍 속으로 뛰어들어가다가 불쌍하게도 목이 부러져 죽었다.
공주들은 수년 만에 처음으로 부모와 만났으므로 너무 기쁜 중에 모든 것을 잊어 버렸다. 임금은 간악한 자들 중의 괴수에게 약속한 바와 같이 딸을 주고자 하였다. 그래서 성대한 잔치를 베풀고 간악한 자는 왕의 총애를 한몸에 받게 되었다.
그때에 한 사람의 무신이 왕 앞으로 나왔다. 그는 정말로 공주들을 구한 무신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임금은 간악한 자들을 목 베고 막내딸을 무신과 혼인시켰다. 그뒤로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들은 평안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