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씨녀와 가실

 

'설씨녀와 가실'은 원제목이 '설씨녀'로 '삼국사기' 열전에 실려 있다. '삼국사기'는 사마천의 '사기'를 본떠서 편찬한 삼국 시대의 정사인바, '사기'에도 열전이 있었다.
  '설씨녀'는
가실의 인정과 설씨녀의 의미를 부각시키며, 이들 사이의 사랑에 따른 고난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는 일반 백성의 삶이 고귀한 신분의 삶 못지 않게 훌륭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이 담겨 있을 뿐더러, 빈번한 전쟁 속에서 괴로움을 당하는 백성들의 고난도 담겨 있다. 또한 위기에 몰린 설씨녀와 가실의 사랑이 극적으로 이루어지는 서사적 구조의 단단함도 있다. 특히 서사적 구조는 현대 소설에 근접하는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단순한 설화에 그치지 않고 훌륭한 한 편의 서사물을 이루고 있다. 사랑에 따르는 고난이야말로 서사 문학의 끊임없는 소재인데, 그 전통이 이미 신라 때부터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설씨녀(薛氏女)는 신라 경주의 민가 여자로 비록 가난한 가문과 불운한 집안이었으나, 안색이 단정하고 행실을 잘 닦아 보는 사람마다 곱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진평왕 때 설씨녀의 아버지는 나이가 많이 들어 정곡을 방위하는 당번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녀는 늙고 병들고 쇠약한 아버지를 차마 멀리 보낼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은 여자의 몸이므로 함께 가서 모실  수 없음을 한탄하며 수심에 쌓여 있었다. 이때 사량부에 사는 소년 가실은 비록 집이 가난하고 또한 볼 모양이 없었지만 그 뜻을 수양한 곧은 남자였다. 그는 일찍부터 설씨녀를 좋아하였으나 감히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설씨녀의 노부가 종군한다는 말을 듣고 드디어 설씨녀를 찾아가서 말하기를,
   "나는 비록 나약한 사람이지만 일찍부터 의지와 기개를 스스로 자부하고 있으니, 원컨대 불초한 몸이나 아버님의 병역을 대신하려 합니다."
   설씨녀는 매우 기뻐하며 안으로 들어가서 이를 알리니, 그 아버지는 가실을 불러 말하기를,
   "듣건대 그대는 늙은 내가 가는 것을 대신하겠다고 한다 하니 기쁘고 송구스러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는데, 그대의 소원대로 은혜를 갚을 생각이다. 만약 그대가 어리석고 누추하다고 해서 버리지 않는다면 내 어린 딸을 아내로 맞으면 어떻겠는가?"
   하니 가실은 두 번 절하며 말하기를,
   "감히 바라지 못한 일이오나 그것은 저의 소원입니다."
   하였다. 이에 가실은 물러나와 혼기를 청하니, 설씨녀는 말하였다.
   "혼인이란 인륜 대사이므로 창졸히 할 수는 없습니다. 내 이미 마음을 허락하였으므로 죽는 한이 있더라고 이를 어기지 않을 것이오니, 원컨대 그대는 방어하는 곳으로 나갔다가 교대하고 돌아온 후 날을 가려 성례하더라도 늦지 않겠습니다."
   하고 곧 거울을 꺼내 반을 갈라서 각각 한 조각씩을 나눠 가지며 말하였다.
   "이것을 신표로 하는 것이오니 뒷날에는 마땅히 이를 합치기로 합시다."
   가실에겐 한 마리의 말이 있었는데, 설씨녀에게 말하기를,
   "이는 천하에 드문 말로 뒷날에 반드시 쓸 데가 있을 것이오. 지금 내가 간 다음에는 기를 사람이 없으니, 청컨대 이 말을 맡아서 기르도록 하시오."
   하고 작별했다.
   그런데 국가에서는 연고가 있어서 사람을 뽑아 보내어 교대시키지 못하였으므로 가실은 6년이나 머물러 돌아오지 아니하였다. 이에 설씨녀의 아버지는 딸에게 말하기를 가실은 3년을 기약하였는데 이미 그 날짜가 넘은 지금도 돌아오지 않으니,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야 되겠다고 하니, 설씨녀는 말하기를,
   "먼저 부친을 편안히 하기 위하여 억지로 가실과 약혼하였습니다. 가실은 이를 믿기 때문에 오랫동안 종군하여 굶주림과 추위에 고생하고 있습니다. 항차 적경에 임박하여 있으므로 손에 무기를 놓을 사이도 없고 호랑이 입 앞에 가까이 있는 것 같아서 늘 적에게 씹힐까 근심입니다. 그러나 그 신의를 저버리고 언약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찌 인정이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감히 부친의 명령을 좇지 못하겠사오니 청컨대 두 번 다시 그런 말씀을 하지 않도록 하소서."
   하였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늙어 90세에 이르고, 또 그 딸의 나이가 차므로 배우가 없을까 염려하여 강제로라도 그를 시집보내려 하여 딸 몰래 마을 사람과 약혼을 하여 잔칫날을 정하고, 그 사람을 불러들이려 `하였다. 설씨녀는 굳게 이를 거절하여 도망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외양간에 이르러 가실이 두고 간 말을 보고 크게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때 마침 가실이 돌아왔으나, 형상은 해골처럼 마르고 옷은 남루하여 집안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딴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가실은 곧 앞으로 나아가서 몸에 지녔던 거울 조각을 던지니 설씨녀는 이를 받아들고 기쁨에 넘쳐 소리내어 우니, 그 부친과 집안 사람들도 기뻐하며 드디어 날을 가려 서로 결혼하고 백년 해로하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김현감호(金現感虎)
김현이 호랑이를 감동시키다

이 이야기는 '수이전'에 '호원(虎願)'으로 실렸던 것이 '대동운부군옥'에 전재되어 전한다. 호원사라는 절의 연기설화 역할도 하는 이 이야기는 호랑이가 등장하는 많은 설화 중의 하나이면서 소위 '변신형 설화'에 해당한다.
   
이 설화는 호랑이와 인간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이다. 이 설화가 나오게 된 동기에 대하여는 당시 호랑이가 많이 나타나서 사람을 해치자 호랑이에 대한 피해를 막아 달라고 절을 세우고 그런 이야기를 지어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리고 호랑이는 죽음으로써 상대를 출세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호랑이답지 않은 이 행동은 불가능한 조건을 무릅쓰고라도 사랑을 옹호하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최자의 '보한집'에 '호랑이와 승려'라는 내용으로 실려 있다. 서정주는 이를 바탕으로 '암호랑이와 함께 탑돌이를 하다가'라는 시를 썼다.

   신라 풍속에 음력 2월 초파일부터 보름까지 청춘 남녀가 흥륜사의 탑을 돌면서 복을 비는 습관이 있었다. 원성왕 때 김현(金現)이란 청년이 밤늦게 탑을 돌다가 거기서 한 처녀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 김현이 그 처녀의 뒤를 따라가니, 처녀는 서산 기슭에 있는 한 오두막집으로 들어갔다. 거기에 한 노파가 있다가 처녀에게 물었다.
   "널 뒤따라온 이가 누구냐?"
   처녀는 밖에서 있었던 사정을 다 얘기했다. 처녀의 얘기를 듣고 노파가 말했다.
   "비록 좋은 일이라 하나 차라리 없었던 게 나았구나. 그러나 이미 저질러진 일, 어쩔 수 없다. 아무도 모를 곳에 잘 숨겨 주어라. 너의 형제들이 돌아오면 나쁜 짓을 할까 두렵구나."
   처녀는 김현을 깊숙한 곳에 숨겨 두었다. 조금 있노라니 세 마리의 호랑이가 포효하면서 오두막집으로 들어왔다.
   "집 안에서 비린내가 나는데, 마침 시장하던 참이라 요기하기 꼭 좋구나."
   노파와 처녀는 꾸짖으며 말했다.
   "너희들 코는 어떻게 되었느냐? 무슨 그런 미친 소리들을 해대지?"
   그때 하늘의 울림이 들려 왔다.
   "너희들이 즐겨 많은 생명을 해치고 있으니 마땅히 너희들 중 한 놈을 베어 그 악을 징계하리라."
   세 호랑이들은 이 하늘의 울림을 듣고는 풀이 죽어 걱정스러운 표정을 했다. 처녀가 그들에게 말했다.
   "세 분 오빠가 만일 멀리 피해 가서 스스로 징계하겠다면, 제가 그 벌을 대신 받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세 호랑이는 모두 기뻐하며 머리를 숙이고 느슨히 꼬리를 낮추고선 달아나 버렸다. 처녀는 김현이 숨어 있는 데로 들어와 말했다.
   "당초 저는 도련님이 저희 집으로 오시는 것을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오시지 말도록 말렸던 거예요.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이미 드러나 버렸으니 저의 내심을 말씀드리겠어요.이 몸이 도련님과 비록 유는 다르나 하루 저녁을 모셔 즐거움을 얻었던 것은 부부로서의 결합만큼이나 소중한 것입니다. 저의 세 오빠의 죄악을 하느님이 미워하여 이미 벌하려 하시니 집안의 재앙을 제 한 몸으로 감당하려 합니다. 이왕 죽을 몸일 바엔 도련님의 칼 아래 죽음으로써 소중한 은원에 보답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제가 내일 거리에 들어가 한바탕 소동을 부리며 돌아다니겠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저를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임금님은 필경 많은 상금과 벼슬을 내걸고 저를 잡을 사람을 구할 것입니다. 그럴 때 도련님은 조금도 겁내지 마시고 도성 북쪽의 숲속으로 저를 추격해 오십시오. 거기서 제가 기다리겠습니다."
   김현이 말했다.
   "사람이 사람과 교합하는 것은 인륜의 평범한 도리이지만 사람이 아닌 다른 유인데도 교합하게 되는 것은 보통이 일이 아니다. 이미 그대와 교합을 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하늘이 정한 분복이라. 어찌 차마 배필의 죽음을 팔아 요행으로 한 세상의 벼슬을 구할 수 있겠느냐?"
   처녀가 또 말했다.
   "도련님께서는 그런 말씀일랑 마십시오. 지금 제가 젊은 나이에 죽는 것은 하늘의 명이요, 또한 저의 소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도련임의 경사요, 저희 일족의 복이며 나라 사람들의 기쁨입니다. 한번 죽으매 이렇게 다섯 가지 이로운 점이 갖추어지는 데야 피할 이유가 있습니까? 다만 저를 위해 절을 세우고 불경을 강하여 좋은 업보를 빌어주시면 도련님의 은혜는 그보다 더 클 수가 없습니다."
   드디어 둘은 울면서 헤어졌다.
   다음날 과연 한 마리 맹호가 서울 성 안에 들어왔는데 그 사나움이 어찌나 심했던지 아무도 감당할 자가 없었다. 원성왕은 그 보고를 받고 포고령을 발표했다.
   "호랑이를 잡아 죽이는 자는 관직 2급을 주리라."
   이 포고령을 듣고 김현은 대궐로 나아가 자신이 그 맹호를 잡아 오겠노라고 아뢰었다. 그리고 단도를 들고 처녀가 알려준 도성 북쪽의 숲으로 들어갔다. 호랑이는 처녀로 변해 있었다.
   "어젯밤 도련님게 드렸던 저의 간곡한 사연을 도련님은 잊지 않으셨군요. 오늘 저의 발톱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흥륜사의 간장을 찍어 바르게 하고 그 절의 나발 소리를 들려주면 상처가 나을 것입니다."
말을 마치고 처녀는 김현이 차고 있는 단도를 뽑아 스스로 목을 찔러 넘어졌다. 넘어진 것은 한 마리의 호랑이었다. 김현은 숲에서 나와 지금 그 호랑이를 잡았다고 외쳤다. 그리고 처녀가 가르쳐준 처방대로 하니 다친 사람들이 다 나았다.
   김현은 등용된 뒤에 서천 가에다 절을 세우고 호원사라 불렀다. 그리고 항상 '법망경'을 강하여 그 호랑이의 명복을 빌고, 동시에 호랑이가 제 몸을 죽여 김현 자기를 출세시킨 그 은혜에 보답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욱면설화(郁面說話)

             '욱면비념불서승(郁面婢念佛西昇-계집종인 욱면이 염불을 하다가 서쪽으로 하늘에 올라감)'

설화는 우리에게 오래된 속담 하나의 기원을 설명해 준다. 우리 속담에 '내 일 바빠 한데 방아(이기문, 속담사전)'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자기 일이 바쁘므로 그 일을 하기 위하여 부득이 남의 일을 먼저 해준다는 뜻으로 쓰인 말이다. 절에 가기 위해 한댁(큰집)의 일을 열심히 한 불교적 신앙이 깊은 한 계집종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귀중한 속담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경덕왕 때 강주의 남자 신도 몇 10명이 뜻을 극락세계에 두고 고을 경계에 미타사를 세우고 1만일을 기한하여 계(契)를 만들었다.
   이때 아간(阿干) 귀진(貴珍)의 집에 욱면이라는 한 계집종이 그 주인을 따라 절에 가 뜰에 서서 중을 따라 염불했다. 주인은 그 종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을 항상 미워해서 곡식 두 섬을 내주면서 이것을 하루 저녁에 다 찧으라고 했다. 그러나 그 종은 그 곡식을 초저녁에 다 찧어놓고 절에 와서 염불하기(속담에 '내일 바빠 주인집 방아 바삐 찧는다'는 여기서 나온 말인 듯)를 밤낮으로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계집종은 뜰 좌우에 긴 말뚝을 세우고 두 손바닥을 뚫어 노끈으로 꿰어 말뚝에 매서 합장하고 좌우로 흔들면서 자기 자신을 격려했다. 그 때 공중에서 소리가 나기를, "욱면은 법당에 들어가서 염불하라."하니, 절 안의 중들이 이 소리를 듣고 그를 권하여 함께 법당에 들어가 염불했다. 얼마 안 되어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가 서쪽에서 들려오더니, 종은 몸을 솟구쳐 대들보를 뚫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서쪽으로 가다가 교외에 이르러 육신을 버리고 부처로 변하여 연의대(蓮衣臺)에 앉아서 큰 빛을 내뿜으면서 천천히 사라져가니, 이때 음악소리는 공중에서 그치지 않았다. 당시 그 법당에 구멍이 뚫어진 곳이 지금도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미완성 2004-07-16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요정님이 내게 여행을 부추기실려고 일부러 이 페이퍼를 만드신게야..
이건 모종의 음모가 있는게야.......!

꼬마요정 2004-07-16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역시 미모로운 사람은 다른가 보군요..^^
모종의 음모를 한 번 파헤쳐 보시죠~~~!!
 

귀촉도 설화

 

촉(蜀-지금의 사천성) 나라에 이름이 두우(杜宇)요, 제호(帝號)를 망제(望帝)라고 하는 왕이 있었다.
어느날 망제가 문산이라는 산 밑을 흐르는 강가에 와 보니, 물에 빠져 죽은 시체 하나가 떠내려 오더니 망제 앞에서 눈을 뜨고 살아났다. 망제는 이상히 생각하고 그를 데리고 돌아와 물으니 "저는 형주 땅에 사는 별령(鱉靈)이라고 하는 사람인데, 강에 나왔다가 잘못해서 물에 빠져 죽었는데, 어떻게 해서 흐르는 물을 거슬러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라는 것이다.
망제는, 이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다. 하늘이 내게 어진 사람을 보내주신 것이라고 생각하여 별령에게 집을 주고 장가를 들게 하고, 그로 하여금 정승을 삼아 나라일을 맡기었다. 망제는 나이도 어리고 마음도 약한 사람이었다.

이것을 본 별령은 은연중 불측한 마음을 품고 망제의 좌우에 있는 대신이며 하인까지 모두 매수하여 자기의 심복으로 만들고 정권을 휘둘렀다. 그때에 별령에게는 얼굴이 천하의 절색인 딸 하나가 있었는데, 별령은 이 딸을 망제에게 바쳤다.
망제는 크게 기뻐하여 나라일을 모두 장인인 별령에게 맡겨 버리고 밤낮 미인을 끼고 앉아 바깥일은 전연 모르고 있었다. 이러는 중에 별령은 마음놓고 모든 공작을 다하여 여러 대신과 협력하여 망제를 국외로 몰아내고 자신이 왕이 되었다.
망제는 하루 아침에 나라를 빼았기고 쫓겨나와 그 원통함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죽어서 두견이라는 새가 되어 밤마다
불여귀(不如歸)를 부르짖어 목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울었다.
뒷사람들은 그를
원조(怨鳥)라고도 하고 두우(杜宇)라고도 하며, 귀촉도(歸蜀途) 혹은 망제혼(望帝魂)이라 하여 망제의 죽은 넋이 화해서 된 것이라고 하였다.
두견새의 다른 이름들 :
귀촉도, 망제혼, 소쩍새, 불여귀, 자규

● 소쩍새와 접동새 전설
두견새는 귀촉도라고 하기도 하고 소쩍새라고도 하는데, 거기에는
'솥이 적다'에서 유래된 가난과 관련된 설화가 전한다.
장만영의 <소쩍새>는 이를 시화(詩化)했고, 오영수의 <소쩍새>는 이를 소설화한 것이다. 망제혼 전설을 소재로 하여 서정주는 <귀촉도>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또 다른 것에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소위 <접동새 전설>인데, 이를 바탕으로 김소월은 <접동새>라는 시를 썼다.
옛날 어느 곳에 10남매가 부모를 모시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의붓어미가 들어왔는데, 의붓어미는 아이들을 심하게 구박하였다. 큰누이가 나이가 들자 이웃 부잣집 도령과 혼인하여 많은 예물을 받게 되었다. 이를 시기한 의붓어미가 그녀를 친모가 쓰던 장롱에 가두었다가 불에 태워 죽였다. 동생들이 슬퍼하며 남은 재를 헤치자 거기서 접동새 한 마리가 날아올라 갔다. 죽은 누이의 화신인 것이다.
관가에서 이를 알고 의붓어미를 잡아다 불에 태워 죽였는데, 재 속에서 까마귀가 나왔다. 접동새는 동생들이 보고 싶었지만 까마귀가 무서워 밤에만 와서 울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금와 신화(金蛙 神話)

   옛날, 송화강 유역에 부여라고 하는 나라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은 땅이 기름지고 따뜻한 곳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그들은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늘 태평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이처럼 살기 좋은 나라를 거느린 부여왕 해부루에게는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그것은 슬하에 자식이 없는 것이었다. 그는 나이를 먹어 갈수록 걱정이 더해 갔다. 그는 아들을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래서 왕과 왕비는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아들을 하나 얻게 해달라고 천지 신명에게 빌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해부루는 여느 때처럼 기도를 하고 대궐로 돌아오는 길에 곤연이라는 연못에 이르렀다. 이 때 왕이 타고 가던 말이 연못 옆에 있는 바위 앞에서 꼼짝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게다가 말은 눈물까지 흘리며 슬피 우는 것이었다. 해부루는 퍽 기이한 생각이 들어서 신하들에게 그 바위를 치우도록 했다. 그랬더니 바위 밑에서 누런 황금빛이 찬연하게 빛났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그 빛이 너무 눈이 부셔서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바위 밑을 바라볼 수 있었다. 바위 밑에는 온 몸이 금빛으로 빛나는 개구리 형상의 아기가 빙그레 웃고 있었다.
   해부루는 몹시 기뻤다.
   "이제야말로 하늘이 나에게 귀한 아들을 주었구나."
   이렇게 생각한 해부루왕은 그 아이를 안고 대궐로 돌아왔다. 그는
아이가 개구리 모양으로 생긴데다 금빛을 발하므로 이름을 금와(金蛙)라고 지었다. 금와는 해부루왕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무럭무럭 자랐다. 해부루왕은 금와를 태자로 삼았다.
   해부루에게는  아란불(阿蘭弗)이라는 어진 재상이 있었다. 어느 날 밤에 그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것은 천제가 꿈 속에 나타났던 것이다.
   "지금 이 땅은 장차 나의 자손이 나라를 세울 땅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이 곳을 떠나 동해의 가섭원이란 곳으로 가거라. 그곳은 땅이 매우 기름지며 오곡이 풍성한 곳이니라. 너희들은 그 곳에 가서 나라를 세우도록 하여라."
   천제는 아란불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꿈에서 깨어난 아란불은 이튿날 아침 대궐에 들어가 임금에게 아뢰었다. 해부루왕은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다. 그는 곧 아란불의 말대로 도읍을 가섭원으로 옮기고 그곳에 새 나라를 세우고 나라 이름을 동부여라고 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늙은 해부루왕이 죽고 태자로 있던 금와가 왕위에 올랐다. 금와는 해부루가 낳지 않았지만 하늘이 내린 인물이기 때문에 나라를 잘 다스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