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왕(東明王) 신화
동명왕 신화는 고구려 성업을 이룩한 주몽을 '위대한 영웅적 인물'로 형상화하고 있는 신화이다. 우리 민족은 수천 년의 긴 세월에 걸쳐 멀리 중앙아시아로부터 동쪽으로 또는 남쪽으로 이동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고난과 투쟁의 역사는 한반도에 정착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자연의 위력 앞에서, 또는 불가항력적인 재난을 당하였을 때, 그들은 초인간적이고 초현실적인 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신의 세계를 상상하고 인식하게 된다. 인간 사회를 에워싼 자연물에게 다원적인 신의 자격을 부여하고, 영웅적인 부족의 추장을 조상신으로 숭배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신이나 조상신에게 자주 제사 지내고, 그들의 위대한 능력과 위업을 찬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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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동명왕의 성은 고(高)씨요, 이름은 주몽이다. 이보다 앞서 북부여왕 해부루가 동부여로 피해가고 부루가 죽자 금와(金蛙)가 왕위를 이었다.
한나라 신작 3년 임술(壬戌)에 천제는 아들 해모수(解慕漱)를 부여의 옛 도읍터에 내려보내어 놀게 하였다. 해모수는 하늘에서 내려올 때 오룡거를 탔고, 종자 백여 명은 모두 흰 학을 탔으며, 채색한 구름이 위에 뜨고, 구름 속에서 음악이 들렸다. 웅심산에 머물러서 십여 일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내려왔는데, 머리에는 까마귀 깃으로 된 관을 쓰고, 허리에는 용광이 빛나는 칼을 찼다. 아침에 정사를 듣고 저녁이면 하늘로 올라가니, 세상에서 이를 천왕랑이라 하였다.
성 북쪽 청하에 사는 하백(河伯)(물을 주관하는 신)의 세 딸이 아름다웠는데, 장녀는 유화, 차녀는 훤화, 막내는 위화라고 하였다. 그 자매가 청하로부터 웅심연 위로 놀러 나가니, 신 같은 자태는 곱고 빛나며 몸을 장식한 패옥이 어지럽게 울려 한고와 다름없었다.
왕(해모수)이 이들을 보고 좌우에게 말하였다.
"이를 얻어서 왕비를 삼으면 아들을 두리로다."
여인들은 왕을 보자 곧 물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좌우에서 말하였다.
"대왕께서는 어찌 궁전을 지어 여인이 들어가기를 기다렸다가 문을 닫지 않으시나이까?"
왕이 옳다고 여겨 말채찍으로 땅을 그으니, 문득 구리로 만든 방이 생겨 장관이었다. 방 가운데 세 자리를 마련해 놓고 동이 술을 준비하니, 여인들이 각기 그 자리에 앉아서 서로 권하며 술을 마시고 크게 취하였다. 왕이 취하기를 기다렸다가 급히 나가 문을 막으니, 여인들이 놀라서 달아나고 장녀 유화만이 왕에게 붙들렸다. 하백이 크게 노하여 사자를 보내 말하였다.
"너는 어떤 사람인데 나의 딸을 머물게 하였는가?"
그러자 왕이 대답하였다.
"나는 천제의 아들로 이제 하백과 혼인을 이루고자 한다."
하백이 다시 사자를 보내어 말하였다.
"네가 천제의 아들로 나에게 구혼을 하려 한다면 마땅히 중매를 보내야 될 터인데, 이제 갑자기 나의 딸을 붙잡아 둔 것은 어찌 실례가 아닌가?"
왕은 부끄럽게 여겨 장차 하백을 가서 보리라 하고,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고서 여인을 놓아 주려 하였다. 그러나 여인은 이미 왕과 정이 들어서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오룡거만 있으면 하백의 나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왕이 하늘을 가리켜 고하니 문득 오룡거가 공중으로부터 내려왔다. 왕과 여자가 수레를 타자 갑자기 풍운이 일어나며 하백의 궁전에 이르렀다. 하백은 예를 갖추어 이들을 맞이하고 자리를 정한 뒤에 왕에게 말하였다.
"혼인하는 법은 천하에 통용하는 법인데 어찌하여 예를 잃고 나의 기분을 욕되게 하는가? 왕이 천제의 아들이면 무슨 신기함이 있는가?"
그러자 왕이 말하였다.
"문득 시험해 볼 일이다."
이에 하백이 뜰 앞의 물에서 잉어가 되어 노니 왕은 수달로 변하여 이를 잡았다. 하백이 다시 사슴이 되어 달아나자 왕은 늑대가 되어 이를 쫓고, 하백이 꿩으로 변화하자 왕은 매가 되어 이를 쳤다. 하백은 '이 사람은 참으로 천제의 아들이로다.' 하고 생각하여 예로써 혼인을 이루었다.
하백은 왕이 딸을 데려갈 마음이 없을까 겁내어 잔치를 베풀고 왕에게 술을 권해서 크게 취하게 한 뒤, 말과 함께 작은 가죽 가마에 넣은 다음 오룡거에 실어 하늘로 돌아가도록 하였다. 그 수레가 물을 채 빠져 나오기 전에 왕은 바로 술이 깨어서, 여자의 황금 비녀를 뽑아 가마를 찌르고, 그 구멍으로 빠져 나와 홀로 하늘로 올라갔다. 하백은 크게 노하여 그 딸에게 말하였다.
"너는 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나의 가문을 욕되게 했다."
그리고는 좌우에 명령하여 딸의 입을 잡아 늘여 그 입술의 길이가 세 자나 되게 한 다음, 노비 두 사람만을 주어 우발수 가운데로 귀양 보냈다.
어부 강력부추가 (금와왕에게) 고하였다.
"요즘 밤중에 제가 잡은 고기를 가져가는 자가 있는데 어떤 짐승인지 알지 못하겠나이다."
왕은 어부를 시켜서 그자를 그물로 끌어 내게 하였는데, 그물이 찢어졌다. 다시 쇠그물을 만들어 끌어 내니, 비로소 한 여인이 돌 위에 앉아서 나왔다. 그 여인은 입술이 길어서 말을 할 수가 없었으며, 입술을 세 번 자른 뒤에야 비로소 말을 하였다.
"나는 하백(河伯)의 딸로 이름은 유화(柳花)다. 동생들과 놀러 나왔다가 하느님의 아들인 해모수를 만나 웅신산(熊神山) 밑 압록강에서 같이 살았는데, 그는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부모가 중매 없이 남을 따라간 것을 책망하며 여기에 귀양 보냈다. "
고 하였다. 왕은 그 여인이 천제의 아내임을 알고 별실에 가두었다.
하루는 유화가 집에 있으니 햇빛이 비쳐 몸을 피해도 쫓아가며 비추었다. 이로 해서 잉태하여 신작 4년 계해(癸亥) 4월에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다섯 되들이나 되었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말하기를,
"사람이 새알을 낳았으니 상서롭지 못하다." 하고, 사람을 시켜 마구간에 두었더니, 여러 말들이 밟지 않았고, 깊은 산에 버렸더니, 모든 짐승이 호위하였다. 구름이 끼고 음침한 날에도 알 위에 항상 햇빛이 있었다. 왕이 깨뜨리려 해도 깨어지지 않으니 도로 어머니에게 주었다. 어머니가 알을 싸서 따뜻한 곳에 두니, 한 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는데, 울음소리가 매우 크고 골표(骨表)가 영웅답고 기이하여 7세에 벌써 보통 사람과 다르게 뛰어났다.
햇빛이 유화의 몸을 쫓아가며 비춘 것은 하늘과의 연관이 지속되었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알을 낳는데, 알은 세계를 상징한다. 알이 깨뜨려지는 것은 세계가 깨뜨려져서 하나의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몽이 알을 깨뜨리고 세상에 나온 것은 그가 새로운 나라를 세우게 됨을 의미한다. 또, 와나 짐승이 알을 보호하는 것은 주몽이 매우 신성한 존재임을 보여주고 있다. |
주몽이 그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파리들이 눈을 빨아서 잘 수가 없으니 어머니는 나를 위하여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오."
하였다. 그 어머니가 대가지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니, 스스로 물레 위의 파리를 쏘는데 화살을 쏘는 족족 맞혔다. 부여에서 활 잘 쏘는 사람을 주몽(朱蒙)이라고 했다.
주몽은 나이가 많아지자 재능을 다 갖추었다. 금와왕은 아들 일곱이 있었는데, 항상 주몽과 놀며 사냥하였다. 왕의 아들과 따르는 사람 40여 인이 겨우 사슴 한 마리를 잡았는데, 주몽은 사슴을 꽤 많이 쏘아 잡았다. 왕자가 시기하여 주몽을 붙잡아 나무에 묶고 사슴을 빼앗았는데, 주몽은 나무를 뽑아 버리고 갔다.
태자 대소가 왕에게,
"주몽이란 자는 신통하고 용맹한 장사여서 눈초리가 비상하니, 만일 일찍 도모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주몽에게 말을 기르게 하여 그 뜻을 시험하였다. 주몽이 마음으로 한을 품고 어머니에게 탄식하여,
"나는 천제의 손자인데, 남을 위하여 말을 기르니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합니다. 남쪽 땅에 가서 나라를 세우려 하나, 어머니가 계셔서 마음대로 못합니다."
하였다.
"이것은 내가 밤낮으로 고심하던 일이다. 장사가 먼 길을 가려면 반드시 준마가 있어야 한다고 들었다. 내가 말을 고를 수 있다."
하고, 드디어 목마장으로 가서 긴 채찍으로 어지럽게 때리니 여러 말이 모두 놀라 달아나는데, 한 마리 붉은 말이 두 길이나 되는 난간을 뛰어 넘었다. 주몽은 이 말이 준마임을 알고 가만히 바늘을 혀 밑에 꽂아 놓았다. 그 말은 혀가 아파서 물과 풀을 먹지 못하여 몹시 야위었다.
왕이 목마장을 순시하며 여러 말이 모두 살찐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고, 야윈 말을 주몽에게 주었다. 주몽이 이 말을 얻고 나서 그 바늘을 뽑고 다시 먹였다.
주몽은 오이, 마리, 협부 등 세 어진 벗과 함께 남쪽으로 행하여 엄체수에 이르렀다. 그러나 배는 없고 쫓는 군사가 곧 이를 것이 두려워, 채찍으로 하늘을 가르고 우러러 탄식하기를,
"나는 천제의 손자요 하백의 외손인데, 지금 난을 피하여 여기에 이르렀으니, 황천과 후토는 나를 불쌍히 여기시어 속히 배와 다리를 주소서."
하고, 말을 마치고 활로 물을 치니, 고기와 자라가 나와 다리를 이루어 주몽이 건넜다. 한참 뒤에 쫓는 군사가 하수에 이르니, 고기와 자라가 이룬 다리가 곧 허물어져 이미 다리에 오른 자는 모두 빠져 죽었다.
주몽이 떠날 때, 차마 어머니를 이별하지 못하니, 어머니가 이르시기를,
"너는 어미 때문에 걱정하지 말아라."
하고 오곡 종자를 싸 주었다. 주몽이 살아서 이별하는 마음이 애절하여, 보리 종자를 잊어버리고 왔다. 주몽이 큰 나무 밑에서 쉬는데, 비둘기 한 쌍이 날아왔다. 주몽이,
"아마도 신모께서 보리 종자를 보내신 것이리라."
하고, 활을 쏘아 한 화살에 모두 떨어뜨려, 목구멍을 벌려 보리 종자를 얻고 나서 물을 뿜으니 비둘기가 다시 소생하여 날아갔다.
주몽은 졸본주에 이르러 도읍을 정했다. 미처 궁실을 짓지 못하여 비류수 위에 초막을 짓고 살며, 국호를 고구려라 하고 고씨로 성을 삼았다. 그때 주몽의 나이 열 두 살이었다.
<동국이상국집>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