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헤르만 헤세를 좋아한다.
10대 시절 가장 좋아한 작가가 헤세였기에.
한창 감정 변화가 두드러지던 시기...
새똥 보고도 웃고, 낙엽만 봐도 울던 그런 때였다.
그리고 다들 유행처럼 읽던 <데미안>이나 <수레바퀴 아래서> 보다 더 나를 사로잡은 책이 있었으니.
나는 그 책을 읽고 처음으로 머리끝이 쭈뼛 서는 걸 느꼈다. 전율..이라고 하나?
<지와 사랑>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이야기가...
내 기억이 맞다면, 골드문트가 나르치스의 품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 장면을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이 아직도 심장에 박혀서 떠올리자마자 뭔가 벅차오르는 느낌이다.
이제는 내용도 가물가물하고 생각나는 구절도 없건만
감동 받은 기억만 남아 책을 펼치기 망설여진다.
마치, 만나지 않는 게 좋았을 첫사랑을 대면하면 어쩌나.. 하는 기분이랄까.
요즘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꺼내보고 있는데, 이 책 앞에 서자 손 끝이 떨렸다.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곱게 싸서 아무도 모르게 숨겨 놓은,
그리하여, 나 조차 잊고 있던 기억을 발견하고
섣불리 다가가지 못해
닿을 것 같지만 닿지 않는 딱 그만큼의 거리를 두고
겁쟁이가 된 느낌이다.
덕분에 옆에 있던 아주 오래된 책을 집어 들었다.
1991년 초판본, 가격이 3,000원, 헤르만 헤세/이수진 옮김
<사랑하는 이여-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여라!>
사랑의 인간관계가 지니는 본질적인 가치와 가능성, 그리고 그것의 경이로움과 진리 때문에, 이 관계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기대감이 존재할 수 없으며 오로지 깊은 이해만이 있을 뿐이다. (책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