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의 계절 암실문고
페르난다 멜초르 지음, 엄지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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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북중미 월드컵이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멕시코에서 1차전을 치렀고 이겼다. 방송에 나오는 과달라하라는 떠들썩하면서 흥겨워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비바 멕시코' 문구가 쓰인 멕시코 전통 모자를 쓴 사람들도 bts 문구가 적힌 옷을 입은 사람들도 연신 웃으면서 각자의 응원을 했다.


저렇게 화려하고 환한 모습도 멕시코의 한 부분일테다. 그리고 이 책이 그리고 있는 세상 역시 멕시코의 일부분이다. 어쩌면 많은 부분일지도 모르겠지만.


이야기는 강에서 부패한 시체가 떠오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이들은 강에서 시체를 발견하는데, 그 시체는 눈알도 파 먹혔으면서 '웃는 얼굴'이었다고. 작가의 고향 베라크루즈는 빈곤과 폭력이 만연한 곳이었나보다. 극도의 가난은 사람들에게서 '인간다움'을 빼앗았다. 폭력과 강간이 난무하고 방치된 아이들은 그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해낸다. 


베라크루즈 해안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마을 라 마토사에는 엄청난 땅을 가진 마놀로 콘데가 있었고, 마녀라 불린 존재가 있었다. 외로웠던 마놀로 씨가 데려 온 매춘부였던 그녀는 멕시코 사람들이 잊어가던 옛것들을 잘 알았다. 잊혀진 약초들을 재배하고 채취하여 약물을 만들어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기도 했고, 주술 행위 같은 것들도 했더랬다. 사람이란 존재는 이상한 심리를 가졌기에 기이하게도 도움을 준 이를 마녀라고 불렀다. 그들은 전통과 유일신 사이에서 헤맸고 두려움과 죄책감 사이에서 희생양을 찾았다. 마놀로 씨가 심근경색으로 죽자 마을 사람들은 마녀가 저주로 죽였다고 속닥거렸고, 마녀를 내쫓으려던 마놀로 씨의 아들들은 트럭 사고로 죽었다. 그리고 마녀는 은둔했다.


마녀에게는 새끼 마녀라고 불리는 아이가 있었는데, 이름조차 없었다. 책을 읽는 내내 이 아이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했다. 이름으로 불렸다면 아마 정체성이 드러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아이는 이름이 없었다. 그저 마녀 혹은 새끼 마녀일 뿐이었고, 마녀를 추모하는 존재이자 라 모마토사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곳의 민중이었다.


8개의 장은 여러 인물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었다. 한 인물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이 사람의 이야기가 맞는 것 같고 저 사람이 잘못한 것 같았지만 결국은 모두가 빈곤과 결핍 속에서 치열하게 살고자 했던 피해자인 것만 같았다. 거대한 허리케인으로 인해 산사태가 일어나고 마녀는 죽었다. 마녀가 죽고 새끼 마녀는 까만 베일, 까만 스타킹, 까만 블라우스, 까만 치마를 쓰고 신고 입고 마을에 등장한다. 그리고 마녀의 죽음은 온갖 추측과 말도 안 되는 소문들을 '사실'로 만들었다. 주술로 사람을 죽이고 저주로 누군가의 이성을 날리고 악마를 보내 뱃속의 아이를 해친다는 미신은 모두 사실인 양 새끼 마녀가 떠안았다. 그리고 마녀의 집에는 엄청난 돈 혹은 보석이 있다고.


이 곳에는 여자고 남자고 할 것 없이 성(性)과 폭력이 없으면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는 듯 했다. 정유회사에는 인맥이 있는 사람만이 갈 수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사는지 암담했다. 아이들은 계속 태어나고 일하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고 그들은 모두 교육이라고는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아들 혹은 손자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할머니가 있어 재산을 탕진하고, 의붓딸을 성적으로 사랑한 남편이 있고, 편애에 질려 엄마를 떠난 딸들이 있고, 오입질하는 아내와 남편들이 있었다. 그리고 무슨 일만 있으면 마녀를 찾았다. 그렇다고 마녀가 모든 걸 해결해주거나 주술을 부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런 마녀가 아니니까. 애초에 그런 마녀는 없으니까.


노르마의 이야기가 무척 애잔했는데, 그 아이가 말하는 <일요일 일곱>이라는 개념이 특이했다. <두 명의 곱사등이 이야기>라는 책이 나오는데, 그 이야기는 마치 우리나라 전래동화 <혹부리 영감>이랑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 혹부리 영감은 욕심 부리다가 혹 하나를 더 붙이는데, 이 곱사등이는 잘못된 말을 해서 혹이 더 붙었다는 점이었다. 마녀들의 연회에서 '목요일과 금요일과 토요일, 여섯!'을 외친 곱사등이는 혹을 떼고 부자가 되었지만 샘이 많던 곱사등이는 '일요일, 일곱!'을 외쳐 혹도 붙이고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일요일 일곱은 그 문화권이 아닌 내게는 무척이나 생소했는데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불편한 장면들도 많고 이야기 자체도 힘들지만 놓을 수가 없었다. 뒤로 갈수록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고 누구에게도 이입할 수가 없었다. 다만, 노르마 그 아이만은 애달펐다. 비열하게 웃던 금발 청년과 죽은 이의 영혼이 빛을 찾아가도록 인도하는 노인의 대비가 아팠다. 공권력이 지켜주기는 커녕 같이 짓밟았던 저 사람들은 죽어서는 빛을 찾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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