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창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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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두 사람이 말하는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이다. 


말 그대로 피가 나는 상처를 통해 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아가씨와 이름에도 드러나듯 '오기'와 '오독'이 본질인 것만 같은 오언, 그리고 그런 그들을 읽어내야만 하는 독서 교사는 책이 끝날 때까지 서로의 사연을 풀어낸다.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아가씨는 수녀원이 운영하는 복지관에서 자랐고 어떻게든 무난하게 살고자 했으나 빈한한 자에게 시혜를 베푸는 행사에서 추행 사건으로 오언을 만났다. 불의한 일이 있었지만 처지가 그러하니 응당 받아야 할 사과가 해야 할 사과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가씨가 믿기 어려울 능력에 대해 말하자 오언은 믿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아가씨가 그 불한당을 직접 만나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아가씨는 극한의 상황에 처했을 때 오언이 줬던 명함을 꺼내들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서로를 마음에 담은 것은.


<파과>에서 조각은 자신의 온 생을 걸고 사랑했다.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보지 못한 사랑은 그저 칼이 되고 피가 되었을 뿐. 조각의 사랑은 어떤 말로 표현해도 그에게 사랑으로 닿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감정은 표현하는 순간 '오독'이 되어버리기도 하니까.


오언에게 감정은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끊임없이 읽어달라고, 온전히 자신을 내어줄테니 부디 읽어달라고 호소했을지도. 하지만 감정에 서투르고 폭력적인 일을 스스럼없이 저지르는 사람을 사랑하는 건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아가씨는 그래도 자신에게 더없이 잘해주는 오언에게 마음을 열고 싶었더랬다. 자신을 구속하고 자신의 능력을 끔찍한 일에 이용한다 해도,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토록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던 적도 없었고 존중받는다 느꼈던 적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사건은 둘을 갈라놓았다. 오언의 뜻대로 하게 되면 아가씨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로설 <메두사>가 떠올랐다. 유채는 류에게 말한다. '당신을 용서하는 게 아냐. 내가 나를 용서했어. 당신을 사랑하는 나를 용서했어.'라고. 아가씨는 끝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했다.


끝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 오언이 즐겨 인용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세익스피어였다. 오언은 어느 상황에서나 세익스피어의 대사를 즐겨 말했다. 하지만 정작 세익스피어가 그토록 아름답고 화려하게 풀어놓았던 사랑의 언어는 단 한 줄도 읊지 않았다. 오히려 독서 교사가 <자에는 자로>의 이사벨라가 빈센시오 공작이 애원하는 말에 무응답한 이야기를 하며 더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칼로 벨 수 있었던 방법에 대해 알려준다. 하지만 아가씨는 이미 온 힘을 다해 오언을 읽지 않겠다, 그 마음에 부응해주지 않겠다 외친 것만으로도 이미 크나큰 상처가 아니었을까.


독서 교사와 아가씨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나는 어디까지 읽어낸 것일까. 독서 교사는 '본질적인 오독을 전제하지 않고는 생각하기 어렵다'(15쪽)고 했다. 나는 내 마음대로 그들을 '로맨스'로 읽었다. 누군가는 범죄 스릴러로 읽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판타지로 읽을 것이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가진 사고 범위 내에서 자신이 읽고 싶은 방향으로 이야기를 읽어낸다. 내가 아가씨처럼 그 사람의 상처에 손을 비집고 넣어 읽을 수 있더라도 그건 그 상황에서만 유효한 진실일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찰나에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자기합리화는 언제든 발동될 수 있으니까. 그러니 어쩌면 오언은 자신의 이름처럼 잘못 알았던 건지도 모른다. 사람은 서로의 눈을 보고 말을 해야 한다. 그 말이 상대에게 닿지 못한다 하더라도. 설사 무응답으로 돌아온다 하더라도. 


문득 오언은 두려웠던 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말을 뱉음으로 약점이 노출되어 소중한 이를 잃을지도 모르니까. 자라면서 겪었을 일들이 삶을 휘감는 건 아가씨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니까. 이것도 나의 오독일까.


이렇게 오독할 거라면 왜 책을 읽는 것일까? 책을 읽으면 사람이 더 선해진다거나 고상해진다는 건 환상이다. 다만 우리는 독서 교사가 한 말처럼 '원인 따위 결국 알아내지 못하더라도 자기 자신만큼은 이상해지지 않겠다는 마음에 이르는 것이 읽는 사람의 일이야'(302쪽) 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내가 다시 이 책을 펼치면 그 때 나는 그들의 무엇을 읽게 될까. 그 때는 사랑이 아닌 다른 것을 보게 될까. 설사 여전히 사랑을 보게 된다하더라도 다른 것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은 내가 책을 읽는 훌륭한 이유가 될 것 같다.


덧붙여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이지만 세 번째 사람의 사랑을 말 할 수 없어 몹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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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6-03-31 0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도 읽는 시간에 따라 조금씩 느낌이 다를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좋아하는 부분도요.
꼬마요정님 편안한 하루 되세요.^^

꼬마요정 2026-03-31 00:34   좋아요 1 | URL
어릴 때 정말 감명 깊게 읽은 책도 어른이 되어 보면 다르고, 그냥 읽고 넘긴 책이 어느 날 너무 좋게 느껴질 때가 있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합니다. 그 또한 독서의 묘미인 듯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