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냉면 안전가옥 앤솔로지 1
김유리 외 지음 / 안전가옥 / 2019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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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냉면을 좋아한다. 코로나가 있기 전에 남편이랑 나는 여름 휴가 때 서울에 있는 유명한 냉면집들에서 냉면을 먹고는 했다. 그 중에 제일 마음에 든 곳이 '을밀대'와 '필동면옥'이었다. 유명하다는 곳들을 다 가보지는 못해도 나름 다녀 본 결과 이 두 곳은 몇 번이나 갔었다. 코로나가 창궐한 이후에는 맛집을 다니기가 쉽지 않아 슬프게도 아직까지 냉면을 먹지 못하고 있다. 자매품으로 막국수도 좋아한다. 원주에 갔을 때 그냥 들어간 곳이 '남경 막국수'였는데 부산에 돌아와서 우연히 맛있다고 찾아갔던 막국수 집이 원주에 있던 '남경 막국수'의 따님과 사위가 하던 곳이었다. 지금은 두 분이 원주로 돌아가서 맛있는 막국수 집 하나를 잃었지만. 


첫 번째 소설, <A,B,C,A,A,A>는 처음엔 화가 나는데 점점 마음이 따뜻해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다. 읽다가 부곡동에 있는 냉면 맛집이라고 나와서 급하게 검색해 보기까지 했다. 검색 결과에 안 나와서 얼마나 실망했는지. 


'나'는 77년생에 165cm의 키에 98kg의 몸무게를 가졌다. 반면에 남자친구인 'A'는 90년생에 188cm의 키에 초콜릿 복근을 가졌다. 'A'가 사귀자고 했고, '나'는 이유도 묻지 않고 그러자고 했다. 그 뒤 그녀는 왜 나와 사귀는지, 나의 어디가 좋은지 묻지 못했다. 어떤 대답을 들어도 비참해질 것 같아서라고 했다. 실패한 연애들 후에 만난 'A'는 진짜 좋은 사람이거나 사기꾼일 것이다. 앞의 연애(B,C)가 실패라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이유는 '나'와 만난 남자들이 하나같이 '나'를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감정 쓰레기통이나 힘든 일을 대신 해치워주는 사람이나 돈을 내 주는 사람으로 취급하며 '나'를 착취하던 사람들... 나쁜 놈들. 하지만 'A'는 무언가 달랐다. 옷을 사라고 돈을 주기도 하고, 어디서 옷을 살 수 있는지 가르쳐 주기도 하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던 우울한 '나'에게 계획이라는 것도 세울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서로가 발전하는 관계. 너무 멋져 보였다.


글을 쓰는 사람은 좋은 사람일까. 글을 쓰지 않는 사람에 비해 좋은 사람일 확률이 높을까? 부산에서 글쓰기 강습소를 운영하는 '나'는 수강생으로 'A'를 만났다. 대학교 4학년이었던 'A'는 자소서를 잘 쓸 필요가 있었고, 그렇게 '나'와 만났고, 취직을 했고, 짜장면을 먹으며 사귀게 되었다.


냉면을 좋아하지 않아도 내색 없이 '나'를 따라다니며 같이 냉면을 먹었던 'A'. 상대가 좋아하니까 배려해 주고, 상대를 좋아하니까 상대의 관심사에 주의를 기울여 준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던 '나'는 그런 그의 마음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왜 나를 좋아하지?란 질문조차 주저하지만, 분명 함께 한 시간들은 치유와 회복의 시간이었다. 드디어 왜 나를 좋아하냐는 질문을 하게 될 만큼 성장하게 된 '나'는 'A'의 대답에 또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 나도 치유되는 것 같아...


<혼종의 중화냉면>은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얼마 전에 읽은 <파친코>와도 어느 정도 닿아 있다고나 할까. 엄마와 아빠의 국적이 다르면 그 아이는 혼혈이지, 잡종이 아닌데 말이다. 어디에나 혐오가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 일상이 되어 어느 수준까지는 그저 감내하고 살아가는 그들이, 심지어 그들 내에서도 또 다른 혐오가 있다는 사실이 끔찍하면서도 놀라웠다. 잡종이라고 놀림받는 사람이 베트남에서 온 라라에게 콘 가이(화냥년의 딸)라고 하는 장면은 악의가 가득했다. 


다들 외로웠겠지. 어딘가 속하지 못하고, 배척당하는 삶이란 것이 힘들고 외롭고 아플테다. 그 아픔을 똑같이 혐오로 풀면 안 되지 않을까.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유의 악의 가득한 말에 상처 받으면서도 유를 좋아하는 라라도 안 됐고, 계속되는 엄마의 재혼으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얻지 못한 '나'도 안 됐다. 하지만 '나'에게는 '언니'가 있었다. 왕시안.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가족 같은 언니.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어 낸 '괴물'이 사람이 없는 북극으로 가고 싶어했던 것처럼, 언니는 남극으로 향하고 있었다. 동생과 언니는 그들 간의 거리를 좁혀갈 수 있을까? 차별과 악의가 없는 세상이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중화냉면이 중국 냉면도, 한국 냉면도, 일본 냉면도 될 수 없다고 비아냥대지만 사실 중화냉면은 그냥 그 자체로 중화냉면인 것인데.


<남극낭만담>은 러브크래프트의 <광기의 산맥>을 오마주했다고 한다. 그래서 급하게 그 책을 찾았는데, 그저 고대 존재(올드원)란 게 있다는 사실만 알기로 했다. 다른 작품부터 읽어야 하니까. 그리고 작가 후기에서 김수정의 <아기 공룡 둘리>의 오마주라는 말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둘리와 둘리를 둘러싼 고길동을 비롯한 많은 이들 사이에는 연민과 애증이 가득하며 뭔가 가족 같은 분위기가 있으니까. 외계 생명체에 의해 실험체가 되어 엄마와 떨어진 둘리와 그를 부양(?)하게 된 고길동은 우리 주변에 보이는 가족 같은 형태이지 않은가. 


남극이란 곳이 주는 장엄함과 고독이 올드원의 고기를 탐하는 미각(?)이랑 제법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처음에 남극의 크레바스로 떨어졌을 땐, 인간의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걸 상징하는 건가 싶었다. 음, 어쩌면 먹고 싶은 음식이란 무의식과 깊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네. 아무튼 그런 큰 일들을 겪고 우 감독과 세연 씨는 보다 서로를 잘 알게 되었고 어떤 끈으로 연결된 듯 한결 가까워졌다. 미지의 그 곳에서 보는 오로라는 얼마나 인간을 작아보이게 만들까.


위의 세 편이 수상작이고 나머지 두 편은 초대작이라고 한다.


초대작 중 한 편인 <목련면옥>은 한 편의 스릴러 공포물을 보는 느낌이었다. 검은 어둠보다 짙고, 습지보다 축축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라고나 할까. 처음부터 끝까지 끈끈이에 발이 붙은 것처럼, 떨어진 목련이 짓이겨져 갈색의 더러운 물질이 된 것처럼 기괴한데 궁금했다. 


사채업자를 피해 일자리를 구하던 준민은 우연히 보게 된 목련면옥의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온다. 숙식까지 제공하기에 숨어지내기 좋다고 생각했지만 첫날부터 무언가 기괴한 느낌과 이상한 소리에 시달린다. 그리고 가게 자체도 이상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손님이 너무 많은거다. 어째서 사람들이 겨울에도 냉면을 먹으러 오는 건지, 사장이나 수희 아줌마는 '업'이란 이야기를 하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옛날 이야기에 무당들이 무구나 제물을 만드는 것들이 많은데 마치 현대에도 그것이 재현된 느낌이다. '돈'이라는 엄청난 신을 모시는 무당들 말이다.


<하와이안 파인애플 냉면은 이렇게 우리 입맛을 사로잡았다>는 곽재식 작가의 단편으로 현실을 잘 꼬집어 준다. 나라에서 하는 사업과 도전을 하라면서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를 잘 보여준다고나 할까. 그리고 어김없이 등장하는 냉면과 MSG. 기회를 잘 엿보고 말 잘하고 실행력 있는 사람 옆에 있으면 뭐라도 하게 되니 좋은 것 같기는 하다. 어찌보면 사기꾼 같기도 하지만, 자신감 넘쳐 보이고 있어 보이는 모습도 재능은 재능이다. 사업할 때 꼭 필요한 능력이기도 하고. 영란 선배 부럽소. 


조만간 냉면 먹으러 어디든 가야겠다.


*앤솔러지란 말 대신 작품집이나 작품선, 혹은 이야기들이라고 하면 더 좋을텐데.


어른이 되어 가며 알았다. 사람들과의 관계란 당연하다 여겨 온 것을 부정당하는 과정이었다.(43/236) - P43

"내 관점에서 빙저호 탐색에서의 오염 문제는 제국의 식민 지배 같은 건데 말이야. 바다 건너에서 찾아온 방문자가 온갖 오염 물질을 뿌리고는 실험을 하겠다며 동료들을 납치해 가니까."

"어쩜 김 박사님은 사람이 그리도 꼬이셔서."

"달리 말하면 외계에서의 방문이라고 할까? 화성 침공 같은 거 말이야. 이게 나쁜 일만은 아니야. 우 감독 듣기에는 내 성격이 꼬여서 나온 말로 느껴지겠지만 어떤 학자들은 생명의 기원에는 우주 너머에서 지구로 떨어진 운석이 연관되어 있다고 보기도 한다고. 외부에서의 침략 그건 내부의 변화를 강제하고 진화로 이어지는 큰 동력이야."(113/236) - P113

"좀 답답하네요. 그렇게 도전적인 살업에 도전해 보라고 열심히 홍보를 해 놓고, 막상 정말 도전적인 사업을 하려고 하면 ‘그건 너무 비현실적이다. 실패하면 큰일 나니까.‘라고 못 하게 한다는 게."(204/236) - P204

내 자신이 그 영화 속에서 금붕어를 담고 있는 봉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209/236)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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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5-16 06: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회냉면 가장 좋아해요. 근데 얼마전 갔더니 ₩13,000 ...게다가 회의 양도 현저히 줄어서 ㅠㅠ
요정님은 평양냉면을 좋아하시나보네요.
냉면을 소재로 한 이 책 재밌을거 같아요 ㅎ

꼬마요정 2022-05-16 12:36   좋아요 2 | URL
저는 평양냉면 좋아해요^^ 그런데 13,000원이라구요? ㅜㅜ 냉면 넘나 비싸요ㅠㅠ
물가가 올라서 아무래도 예전 같은 느낌은 아니겠네요. 슬픕니다.
이 책 은근 재미있습니다. 냉면으로 이렇게 삶을 그려내다니, 정말 대단해요!!

새파랑 2022-06-10 11: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꼬마요정 2022-06-10 11:19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햇살이 참 좋습니다. 맛있는 점심 드시구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singri 2022-06-10 13: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꼬마요정 2022-06-10 21:1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이하라 2022-06-10 1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기쁘고 여유로운 주말되세요~~

꼬마요정 2022-06-10 21:1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맛있는 저녁 드시구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2-06-10 2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꼬마요정 2022-06-10 22:36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행복한 꿈 꾸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