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되 작별하지 않는다




https://youtu.be/OczdD6-qqAs?si=qfWVRN1bUgeRIs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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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작별 인사에서 가장 인상 깊은 표현은 " 다녀오다(갔다가 오다) ! " 다. GO AND COME BACK ! 발화자가 학생인 경우는 학교 갔다가 집에 오겠다는 약속이고, 직장인 경우는 직장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라면 여행을 갔다가 집으로 오겠다고 다짐을 말하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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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듣다 보면 " 다녀오다 " 는 단어는 매우 숭고한 낱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발화자는 수신자에게 " 나는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 곁으로 돌아올거야 " 라는 약속을 당신에게 하고 떠나는 것이다. 작별이기는 하나 동시에 작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다. 작별인데 작별하지 않겠다니. 이 얼마나 멜랑꼴리하며 달콤한 속삭임인가. 이 낭만적 다짐을 날마다 약속한다. 한국인은 사랑에 대한 표현이 서툴다고 말하자면 사랑한다는 표현보다 다녀오다는 표현이 더 비장하고 웅장하다. 애정의 깊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책임의 깊이다. 서사의 깊이로 따지자면 사랑한다는 형이하학이고 다녀오다는 형이상학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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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한국어는 매우 정교하며 깊이 있는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구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언어다. 내 비록 화장실에서 국어사전을 펼쳐 읽으며 한글 공부를 하지만 읽을수록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 안녕하세요 >> 로 기억한다. 학교 수업을 끝내고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오후 늦게 집에 온 아이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다녀왔습니다 _ 라고 큰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다( :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아마도 아이가 집에 왔을 때 부모는 잠시 외출을 했던 모양이다). 인사란 인사를 하는 사람과 인사를 받는 사람이 있을 때 발생하기에 아이의 다녀왔습니다_ 라는 인삿말은 하나 마나 한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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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의 효율성만 놓고 따지자면 이 장면은 쓸모없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오즈 야스지로는 왜 이 장면을 삽입했을까 ? 숭고하기 때문이다. 朝花夕拾(조화석습)이란 루쉰의 산문 제목이 있다. 아침에 떨어진 꽃을 저녁에 줍는다는 뜻이다. 오즈의 아이는 아침에 떨어진 꽃을 저녁에 줍는 마음으로 아침에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늦은 오후 집으로 돌아와 인사를 한다. 다녀왔습니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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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배우의 연기를 평가할 때 유심히 보는 것 중 하나가 " 걸음걸이 " 다. 대사 연기와 표정 연기는 어느 정도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 사람들은 배우들이 오열하는 장면을 명연기라고 칭찬하지만, 사실은 이 세상에서 제일 하기 쉬운 연기가 바로 눈물 흘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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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정치인들도 타이밍에 맞춰 눈물을 흘린다(정청래 이 새끼의 눈물 연기는 압권이다). 훌륭한 배우는 대사와 표정 연기는 물론이고 걸음걸이도 캐릭터에 맞춰 연기한다. 사람들이 걷는 장면을 유심히 살펴보면 단순히 다리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다. 몸통 움직임도 동반이 되고 팔도 움직인다. 종합하면 걸음은 전신 운동이다. 그렇기에 걸음을 연기한다는 것은 온몸 연기인 셈이다. 걸음걸이야말로 고난이도 연기다. 걸음걸이는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인장이 있다. 타고난 성격, 사회적 지위, 계급적 특징 그리고 그날의 마음이 뒤섞여서 다양한 걸음걸이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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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데리코 펠레니 감독의 영화 << 길 >> 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짐파노(안소니 퀸 분)가 어두운 밤 바닷가를 걷는 장면이었다. 성큼성큼 걷던 걸음이 휘청거리며 무너질 때 관객은 그의 비통한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본 것이나 다름없다. 휘청거리는 걸음이 무너진 마음의 환유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자전거 도둑 >> 을 만든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에게 어느 영화 담당 기자가 물었다. " 왜 전문 배우 대신 비전문 배우'를 영화 주인공으로 발탁하셨습니까 ? " 그 질문에 대하여 감독은 그 사람의 걸음걸이가 훌륭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연기를 전문으로 배운 배우가 특정 계급의 삶을 연기한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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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걸이만큼은 연기력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는 걸음이 마음의 환유라는 사실을 아는 감독이었다(마르크스였다면 계급의 환유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또한 브르디외였다면 몸짓의 아비투스 ?!).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대답에 나는 감동했다. 내가 < 자전거 도둑 > 을 보면서 정말 좋아했던 것은 그 가난한 아버지를 연기했던 배우의 걸음걸이였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울림은 그가 걸을 때 보여지는 몸의 움직임에서 파생된다. 배우 김윤석이 연출한 영화 << 미성년 >> 에서 이정은이 등장하는 짧은 장면은 이 배우가 얼마나 뛰어난 연기자인지를 보여준다. 대사 한 마디 없이 오직 걸음걸이 하나로 모든 것을 증명한 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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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장면을 보다가 너무 흥분해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기립 박수를 쳤던 이유는 이 짧은 등장 장면만으로 그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역사를 10초짜리 약사로 요약했기 때문이다. 감독은 로우 앵글로 방파제를 걸어오는 여성의 걸음을 비춘다. 이 여성의 걸음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고된 노동으로 인해 무너진 무릎 관절과 허리 디스크 그리고 술독에 빠진 걸음. 균형을 잃고 절뚝거리는 삶을 살아온 여성 캐릭터를 이정은 배우는 정교하게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보다 효율적인 연출이 또 있을까 ? 어쩌면 연기력만으로 전도연과 대결을 펼칠 수 있는 유일한 배우는 이정은이라는 생각이 든다. 탁월한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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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om/shorts/UuRGzsm3FJU?si=WdsUmpoNizqn0GS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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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6-09-29 1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곰발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인사부터 드렸어야 되는데 그간 잘 지내셨죠?

걸음걸이는 생각 못 해봤었는데 앞으로 연기를 볼 때 걸음걸이를 유심히 보게될 거 같습니다.

그리고 예시로 올려주신 영상 너무 감사합니다. 이정은 배우 연기가 진짜 너무너무 좋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26-09-29 20:36   좋아요 1 | URL
요즘 슬슬 알리딘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ㅎㅎㅎ
사람들이 연기 하면 대본 연기와 얼굴 표정 연기가 다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연기는 몸 연기예요. 걸음걸이는 온몸 연기 중 하나거든요. 연기 잘하는 사람들은 캐릭터에 맞는 걸음 연기를 합니다. 대표적인 배우가 송강호..
 





내가 처음 배운 주종(酒種)은 맥주였다. 도수가 높지 않은 데다가 목넘김이 부드러워 마시기에 좋았다. 크아, 그래 이 맛이야. 그 당시에 옛 애인은 맥주만 마셨던지라 그 시절 내 몸에 흐르는 피의 팔 할은 맥아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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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이를 먹고 인생의 쓴맛을 경험하고 나서부터는 소주를 마시게 되었다. 싸구려 공업용 알콜 냄새와 기분 나쁜 쓴 맛이 개 같은 내 인생을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쓴 맛을 모르면 그게 인간이냐 인삼이지, 끄어억. 무엇보다도 소줏집의 풍경을 사랑했다(맥주를 마실 때는 맥줏집 풍경을 사랑했다). 내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소맥을 마시기 시작하면서였다. 소맥 맛에 눈이 돌아가 소맥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쇼잉, 그래 쇼잉. 소맥 잔에 젓가락 넣고 흔들면 맥주 거품이 마술처럼 생성되는 그 쇼잉. 처음에는 재미로 소맥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소맥 이외의 술은 마시지 못하고 있다. 어즈버.... 소맥 10년 외길 인생이시다.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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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맥줏집에 가면 혼자 소주 한 병 시켜 혼자서 소맥을 말고, 소줏집에 가면 혼자서 맥주 한 병 시켜 혼자서 소맥을 만다. 친구들이 늘 하는 말. 너 참 유별나다. 이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다. 이제는 소주를 마시면 소주가 너무 쓰고, 맥주만 마시면 맥주가 너무 싱겁다. 소맥이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맛이다. 섞어 마시면 인생 꼬인다. 한식의 세계화 전략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랍시고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현지인 입맛에 맞는 레시피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멍청한 소리다. 한식은 한식일 때 성공할 수 있다. 카레는 인도의 음식이지만 그 어느 누구도 카레를 먹으면서 인도 문화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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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카레는 영국인의 입맛에 맞게 개조된 영국 커리일 뿐이고, 일본 카레는 일본인 입맛에 맞게 개조된 카레라이스일 뿐이다(또한 아프리카 카레는 아프리카 사람 입맛에 맞는 카레일 뿐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카레는 이것과 저것이 섞인 소맥인 셈이다. 엉터리 같지만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진, A급 실력을 갖췄지만 B급 감성으로 노래하는 노라조의 << 카레 >> 에서 지적했듯이 "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이 맛은.... 순한 맛 매콤한 맛 인도에도 없는 맛 " 이다. 인도 요리가 인도에는 없는 맛이니 무국적 요리인 셈이다. 인도인 입장에서 보면 음식의 현지화 전략은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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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한국인 미슐렝 셰프들이 한식이랍시고 현지인 입맛에 맞는 한식을 선보이고는 하는데 그들이 내놓은 것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맛에 불과하다. 내 경험을 통해 그들에게 충고 한 마디 하자면 : 섞어 만들면 인생 꼬입니다요. 셰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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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손님




내 친구 별명은 " 귀한 손님 " 이다. 고1 때 캐나다 이민을 떠난 친구인데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만나게 된다. 이 친구에게는 독특한 말버릇이 있는데 툭 하면 너희들 ooo 귀한 줄 알아 ! _ 라며 충고를 한다. 예를 들면 너희들, 금수강산 귀한 줄 알아라. 세계 어디를 가도 금수강산 만한 데 없다. 뭐, 이런 식이다. 내가 누구인가. 작명의 달인 아닌가. 친구의 말버릇을 감지한 나는 그에게 귀한 손님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친구도 꽤 만족해 하는 모양이다. 향수병을 모르고 살던 친구가 나이가 들어 신토불이자가 된 것을 보면 해외에 살다 보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가 보다. 친구의 귀한 시리즈 중에서 내가 잊지 못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어쩌면 황당한 내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친구의 에피소드를 듣다가 눈물이 났다. 이제부터 친구의 어쩌구니없고, 다소 황당하며 당혹스럽지만 묘하게 감동적인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들려주고자 한다. 한가위 추석 선물이라 생각하시라. 몇 년 전, 친구가 무더운 여름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한국 방문은 주로 여행 목적이라 날씨 좋은 봄 가을에 집중되었는데 그때는 경조사 문제로 한국을 방문한 계절이 8월 땡볕이었다고 한다. 귀한 손님 녀석은 한여름에 거리를 걷고 있었다. 너무 더워서 더위를 식힐 목적으로 놀이터 공원을 향해 가다가 귀청이 떨어질 듯한 소리를 듣게 된다. 매미 우는 소리다. 맴맴맴맴맴 ~ 친구는 이 소리를 듣자 갑자기 그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증폭되면서 그 자리에 멈춰 섰다고 한다. 기억상실증 환자가 느닷없이 기억이 되돌아오는 경험을 한 것이다. 친구는 캐나다 이민 후 단 한번도 여름 매미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캐나다에도 여름은 있고 매미도 있는데 매미 우는 소리는 없었다고. 그래서 매미 우는 소리를 잊고 있다가 한국의 여름 땡볕 거리를 걷고 있다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매미 소리를 듣고 잃어버린 기억들이 되살아났다고. 그러자 갑자기 눈물이 났다고 했다. 이 황당한 친구의 경험담에 몇몇 친구들은 당황했지만 나는 그 친구가 경험했던 슬픔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친구는 그때 일을 회상하며 물 먹은 습자지처럼 앵앵거리며 말했다. " 너희들, 매미 귀한 줄 알아라, 쨔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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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8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종길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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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혹은 독자 입장에서 보면 " 완전한 사랑 " 만큼 따분한 사랑도 없다. 최부잣집 셋째 딸과 부잣집 둘째 훈남의 러브 스토리. 양가의 축복 속에서 이루어지는 웨딩 스토리. 워뗘 ? 궁금하신가. 관객은 결핍이 없는 사람끼리 만나서 만드는 완전한 사랑 혹은 안전한 사랑에 대해 관심이 1도 없다. 가수 김현식의 노래 가사처럼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을 해본 우리들은 사랑의 승질머리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사랑은 치열하지만 치졸하고, 더럽고, 짜증 나고, 죽이고 싶고, 가끔 미친다는 사실. " 이 세상 모든 사랑, 다 족구하라 그래, C ~ " 관객은 열정적인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 우리가 열광하는 것은 드러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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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풍의 언덕 >> 의 히스클리프는 결핍의 아이콘'이다. 흑인 고아 소년(인도계로 추정 ㅡ )이 백인 남성의 딸을 좋아한다. 눈부시게 흰 캐서린은 검은 히스클리프의 결핍을 채울 수 있는 대상이다. 요구와 욕구와 욕망이 서로 어긋날수록.... 보다 강렬하다. 캐서린 또한 완전한(성숙한) 인격체는 아니다. 그녀는 진정한 사랑과 물질적 욕망 사이에서 주체 없이 흔들리는 갈대다. 그녀의 허영과 사회의 허용 사이에서 그녀는 갈피를 잡지 못한다. 이 남자냐, 저 남자냐의 문제는 캐서린이 결혼을 한 후에도 계속된다. 이 남자냐, 저 남자냐.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소설은 파국을 맞는다. 내가 보기에 이 소설의 진짜 악당은 캐서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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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결핍과 결핍이 만나면 떨어질 줄 모른다. 부침개의 설익은 면과 설익은 면이 붙으면 떨어질 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의 뜨거운 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녹여서 붙어버린, 뒤집기에 실패한 반달 모양의 부침개'다. 이 얼마나 징그럽고 징글징글하며 치열한 사랑인가. 자신의 온몸을 녹여서 붙어버린 육체성이야말로 사랑의 본질이 아닐까. 나의 결핍을 상대에게 투사하여 그것을 욕망하는 것은 건강한 사랑은 아닌 듯하다. 그래서 생각한다. 뜨거운 사랑보다는 미적지근한 사랑이 오래간다는 사실. 시들시들한 사랑이 건강한 사랑이다. 가끔 백년해로하는 부부를 보면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켜켜이 쌓인 부침개 같다. 양쪽 모두 노릇노릇 익어서 서로 붙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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