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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서재 -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책 읽기
김운하 지음 / 한권의책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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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서재 : 뭐라도 해야 될 것 아닌가 !                  

 

 

 

대한민국 남자가 빽도 없이, 스빽도 없이, 더군다나 식스빽'마저 없다면 인생 꽝'이다. 쓰리 빽'이 없다는 것은 영원히 乙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마음에 드는 여자는 빽이 좋은 부잣집 남자이거나, 스빽이 훌륭한 머리 좋은 남자이거나, 이것저것도 아니라면 식스빽이라도 있는 몸매 좋은 수컷의 차지'가 된다. 그리 비극적인 일도 아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가장 힘 쎈 수컷이 모든 암컷을 차지하니깐 ! 나머지 수컷들은 성욕에 불타서 그냥 으엉 으엉 울 뿐이다. 가끔 서열 4위인 곰이 성질이 나서 서열 1위 곰과 붙지만 대부분은 처절한 응징이 따를 뿐이다. 쓰리 빽'이 없는 수컷은 찌질한 수컷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말이다.

 

 

나는 범성론자'다. 이 세상 모든 트러블은 결국 " 섹스 "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제도 결국은 섹스'다. 희한한 놈'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말이다. 진짜 희한한 놈은 바로 < 희한하다 > 는 단어다. " 히읗 " 이 연속으로 세 개인 단어'가 그리 흔한 경우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히읗이 세 개 들어간 단어를 보고 희한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도 희한하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문학으로 풀어내는 사람이 있다. 바로 미셸 우엘벡'이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은 모두 못생긴 외모의 소유자들이다. 잘난 놈들이 모두 만족스러운 섹스의 팔 할을 먹고 들어가니, 못난 놈들은 온통 불만이다. 닝기미, 섹스도 부익부 빈익빈이냐 ?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 21세기가 어떨지 뻔하다. " 작가들이 거대 담론에 목숨 걸 때, 우엘벡'은 못해서 폭발해 버린, 참고 참고 또 참다가 자위로 성욕을 해소하게 되는 신인류의 초상을 다룬다. 쪼잔하게 말이다. 우엘벡, 희한하다. 여기까지는 나의 생각이고......

 

 

김운하의 < 카프카의 서재 > 는 독서 에세이'이다. 대한민국 성인 한 사람이 1년에 1권 읽을 때, 그는 지금까지 10,000권을 읽었단다. 1년에 100권 읽는다고 해도 10년이면 고작 1000권이다. 어마어마한 애서가'이다. 그 앞에서는 책 자랑을 하면 안 된다. 그런 그가 16편의 책을 골랐다. 독서 에세이'라기보다는 낡은 사진첩'에 가깝다. 그것은 오롯이 그가 살아온 흔적이니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독서량이 형편없다고 미리 쫄 필요 없다. 이 책은 고리타분한 평론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유의 폭은 문학 평론집'보다 넓고 깊다. 그는 훌륭한 독서 안내인'이다. 그가 안내하는 첫 번째 역은 밀란 쿤데라'다. 밀란 쿤데라는 " 삑사리 " 의 가치를 아는 작가다. < 농담 > 은 말 그대로 생각 없이 던진 농담 한 마디'가 나비 효과가 되어 돌아온다.

 

 

그것은 마치 삑사리 난 당구공이 묘하게 굴러서 쓰리 쿠션이 되는 경우다. 우연은 종종 필연을 앞서서 운명이 된다. 단역 배우가 가끔은 주연 배우'를 압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의 아이러니다. 저자는 이것을 중심 서사와 에피소드의 관계로 풀어낸다. 두 번째 역'은 소포클레스의 < 오이디푸스 왕 > 이다. 첫 번째 역'이 우연'에 대한 이야기라면, 두 번째 역'은 운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세 번째 역'은 파스칼 메르시어의 < 리스본 행 야간 열차 > 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마지막 역은 몽테뉴의 < 수상록 > 이다. 그가 내린 결론은 독서는 황홀하다, 이다. 그는 독서에 대한 지독한 편애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 지금까지 살아온 생을 돌아보면 나는 책에서 인생의 깊이를 배웠다. 직접 겪고 경험한 인생으로부터 배운 것보다, 이들의 책을 통해 배우고 깨달은 것이 훨씬 더 크고 깊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사람이 평생 경험할 수 있는 경험의 폭이라 봐야 얼마나 되겠는가 ? ..... 또 한 사람이 아무리 많은 경험을 한들, 경험 그 자체로만으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경험은 몸의 여러 감각을 통해 겪는 사건에 불과하다. "

 

 

그가 제시하는 독서법은 다시 읽는 것이다. 읽고 나서 다시 읽고 나서 다시 읽는 것이다. 보르헤스는 그 행위를 책에 대한 존경이라고 말했다. 트뤼포'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는 것이야말로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열정이라고 말이다. 미셸 우엘벡의 < 소립자 > 역은 이 책의 중간 간이역'에 위치한다. 사실 나는 쓰리 빽'이 형편없는 수컷이다. 젊고 아름다운 처자는 온통 잘난 놈이 차지해서 뿔딱지'가 난 상태'이다. 그래서 우엘벡처럼 " 시부랄, 21세기가 어떨지 뻔하다 ! " 고 투덜댄다. 하지만 그 좋은 섹스를 포기하면 안 된다. 참고, 참고, 또 참다가 결국에 자위'를 한다는 것은 수컷으로써 부끄러운 짓이 아니던가 ! 하루키가 웬 말이냐.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다. 억지 같지만 책을 읽으면 언제가는 섹스할 기회가 온다. 전 문학 청년입니다. 어머 ? 전 문학소녀예요 ! 그렇습니까 ? 그럼 동백장 여관으로 가서 이야기합시다. 그럴까요 ? 그럽시다 ! 그곳은 무료로 콘돔 3개를 준답니다. 더군다나 딸기향이랍니다. 허허허. 어머머머. 모자라면 더 신청해요.

 

 

독서는 섹스다. 쾌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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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왕의 고뇌
에밀 아자르 지음,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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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읽은 책들.

 

 

 

10년 전이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 자기 앞의 생 > 이란 책을 발견했다. 내가 그동안 이 책을 읽지 않은 이유는 아동 청소년 책'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나는 꽤나 어려운 소설을 읽었다. 로브그리예, 사르트르, 까뮈,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읽기 어려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던 시절이었다. 마치 구하기 힘든 영화'만 찾아다니는 컬트 마니아의 자랑스러운 필생의 목록'처럼 말이다. 이런 내가 그 흔해빠진 청소년 소설 나부랭이'를...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 자기 앞의 생 > 을 읽었다. 그러다가 그만 눈물을 쏙 빼게 되었고, 그 후 며칠 동안 도서관에 비치된 로맹가리/에밀아자르의 소설'은 모두 읽게 되었다. 나의 닉네임인 " 페루애 " 도 그의 단편집 < 새들은 "페루에"서 죽다 > 에서 따온 것이다. 너무 급히 읽은 탓일까 ? 내가 읽은 로맹 가리의 소설들은 각자의 소설'이 아닌 6권'으로 된 한편의 장편 소설'로 기억되었다. 말이 좋아 " 기억 " 이지, 사실은 " 뒤죽박죽 " 이었다.

 

 

< 자기 앞의 생 > 에 나오는 에피소드는 < 유럽의 교육 > 으로 편입되고, < 유럽의 교육 > 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 가면의 생 > 에 나오는 인물로 착각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 새벽의 약속 > 에 나오는 에피소드는 엘리엇 카네티의 < 구제된 혀 > 와 혼동하기도 했다. 만약에 누군가 내게 그의 소설에 대해 물어오면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오줌을 지릴 것이다. 결국 나의 독서'는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망각 행위였다. 3초 기억력인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줄거리를 보는 것이 더 경제적인 것은 아닐까 ? 고통스럽게 4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읽느라 시간을 낭비하느니 말이다. 내 스스로 한심하고, 한심하고, 한심하고, 한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설을 읽느라 밤을 보낸다. < 솔로몬 왕의 고뇌 > 는 로맹 가리의 책 중에서 내가 읽지 않은 몇 권의 책 중 하나'였다. 고로 10년 전 도서관에는 없던 소설'이었다. 전처럼 눈물을 쏙 빼는 서사'는 없지만 여전히 낙관적이며 유머 감각이 풍부한 문장을 선보인다. 사실 그의 전 작품과 이 작품을 비교 평가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왜냐하면 내가 읽은 로맹 가리의 소설을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주제에 감히 초기작에 비해 문장의 호흡이 부드러웠다느니, 짧은 문장으로 깊이 있게 파고드는 손 기술에 탄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내 놀랐다.

 

 

건방지게 들릴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쓰는 문체가 로맹가리의 문체와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깐 나는 그의 소설을 잊은 것이 아니라 365일 그의 영향 아래 놓인 것이었다. 다만 그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까마귀'처럼 말이다. 사람이란 결국 자신이 읽은 책들로 만들어진 스타일'이다. 무엇을 채우느냐가 그 사람의 스타일을 만든다, 사상을 만든다. 당신이 여자를 꼬실려고 내뱉은 근사한 말은 누군가가 썼던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이거나 로맹 가리의 근사한 문장을 흉내냈겠지 ! 그리고 입만 열면 졸음이 쏟아지는 그 지긋지긋한 말투는 제임스 조이스의 문장을 흉내낸 탓이리라. 이처럼 한 사람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은 그동안의 독서'가 큰 몫을 차지한다. 니체를 탐독한 자'가 물개처럼 발랄하게 촐랑거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독서의 총합이 스타일을 만든다. 누군가의 문장은 당신에게 피와 살이 되어 뇌하수체로 흘러 뇌를 조종하거나 전립선을 타고 남근으로 우르르 몰려가 시도 때도 없이 발기시키는 주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또한 그렇다. 잊혀진 것이 아니다. 어쩌면 365일 작동하고 있으나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일지도. 하늘에 떠 있는 인공위성'처럼 말이다. 365일 반짝 반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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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홀 문화인류학 4부작 2 : 숨겨진 차원 - 공간의 인류학 이상의 도서관 47
에드워드 홀 지음, 최효선 옮김 / 한길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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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에드워드 홀'이다 !

거리 분류가 복잡해서 간략하게 분류했다. 에드워드 홀의 분류와는 차이가 있다.

 

출판사 < 한길사 > 에 전화를 걸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조심해 ! 불 질러 버릴 테니깐........ 그동안 절판되어서 구할 수 없었던 에드워드 홀의 문화인류학 4부작'이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출간'되었다. 이로써 내가 보유한 < 숨겨진 차원 > 과 < 침묵의 언어 > 는 중고 똥값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긋 ! 왜냐하면 이 시리즈'는 탁월하기 때문이다. 두고 두고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사람과 사람 간의 간격'을 < 거리 > 라고 한다. < 거리 > 라는 단어 대신 < 사이 > 라고 해도 문맥은 통한다. 둘 다 간격이나 공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홀'은 이 거리'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으니, 첫 번째는 " 볼 거 안 볼 거 다 본 " 거리'로 신체적 접촉이 가능한 간격'이다. 만약 당신이라면 누구에게 이 친밀한 거리를 허용하겠는가 ? 가족과 애인'이다. 이 단계의 클라이막스는 섹스'다. 섹스란 결국 나와 타자의 간격이 제로'가 되는 단계'다. 두 번째는 " 악수할 수 있는 " 거리'이다. 애인이나 가족처럼 매우 친밀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친구나 동료'가 이에 해당된다. 여기까지'는 개인적 거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악수하는 사이'인 타자가 볼 거 안 볼 거 다 본 거리 안으로 진입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 동료가 업무를 가르쳐준다고 뒤에서 당신의 귓구멍에 입김을 불어넣는다면 말이다.

 

성범죄'는 바로 악수나 하는 사이'인 타자가 볼 거 안 볼 거 다 본 거리 안으로 허락 없이 잠입할 때 발생하게 된다. 박시후 사건에서 A양이 화가 난 이유는 박시후를 악수나 하는 사이'로만 인식했기 때문이다. 반면 박시후는 A양과는 달리 볼 거 안 볼 거 다 본 사이'라고 주장하는 것. 누구의 주장이 거짓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원나잇스탠드'라는 것은 악수하는 기간 없이 바로 볼 거 안 볼 거 다 본 관계로 발전할 때 발생하는 파열음'이다. 인간은 이처럼 개인적 거리 침범'에 대해 극도로 예민하다. 바로 그 점이 인간은 동물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모든 동물에게는 도주 거리'라는 것이 있다. 들소는 사자를 보자마자 도망가지는 않는다. 다만 일정한 간격 안으로 사자가 들어오면 그때 도망친다. 사자가 더 접근하면 자신의 목덜미에 사자의 이빨이 박힐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바로 그 간격이 도주 거리'이다. 이처럼 간격이 가깝다는 것은 결국 목숨을 내놓는 행위와 같다.

 

들소의 < 도주 거리 > 를 인간 사회'로 적용하면 오디션 볼 때의 거리'이다. 악수할 수 있는 거리에서 조금 더 벗어난 간격이다. 그러니간 악수는 할 수 없는 거리이다. 오디션 볼 때 이 거리를 유지하는 이유는 머리에서 발끝까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체크를 위해서이다. 이 거리'를 에드워드 홀은 사회적 거리'라고 말한다. 사회적 관계는 주로 이 간격에서 이루어진다. 이 거리'가 최소한의 도주 거리'인 이유는 타자의 이상 증후를 간파할 수 있는 최소 거리이기 때문이다. ( 볼 거 안 볼 거 다 본 거리'나 악수할 수 있는 거리'는 주로 얼굴이라는 부분만을 볼 수 있다. )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먼 거리'다.

 

 

 

그런데 에드워드 홀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았다면 분명히 하나를 더 추가했을 것이다. 바로 < E : 투명인간의 거리 > 이다. 이 거리는 타자를 투명인간 취급을 하는 단계'이다. 우리가 청소노동자나 장애인을 바라보는 바로 그 시선이다. 봐도 못 본 척한다. 관심 자체가 없다. 천민 자본주의가 낳은 우아한 풍경이다.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다.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간섭을 하기도 한다. 나이를 묻거나 심지어는 혈액형을 묻는 것도 지나친 사적 거리의 침범이지만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리니깐 한국 사회는 매우 이중적 잣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는 청소 노동자나 게이, 장애인을 가시영역 밖의 투명한 존재'로 생각하는 반면, 또한 집요하게 개인의 사적 거리를 침범해서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한 마디로 턱없이 부족한 소양 탓이다. 김치는 물에 씻어 먹자.

 

6인용 탁자

 

위의 그림은 가로 72인치, 세로 36인치의 6인용 식탁'이다. 심리학자 로버트 소머'는 실험 대상자 6명을 이 식탁에 배치한 후 50여 차례 모임을 갖은 후 대화의 빈도를 체크했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F-A 대화가 C-B 대화보다 두 배나 빈번했으며, C-B유형은 C-D 유형보다 세 배나 빈번했다. 그리고 다른 위치에서는 아무런 대화도 관찰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직각으로 대하는 모서리상의 대화가 36인치의 탁자 넓이 건너 마주 대하는 대화의 여섯 배에 달했고, 옆으로 나란히 앉은 유형보다 두 배나 많았다.

- 숨겨진 차원 中.

 

이 결과는 거리 간격의 차이가 대화를 끌어내는 주요 원인'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지만 < 소리의 거리 >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정면에 있는 타자'를 공격적인 주체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서로 정면을 응시한다는 것은 곧 싸울 자세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짐승은 싸울 때 너 몇 살이냐고 나이를 묻지 않는다. 꼬라보면 덤빈다 ! 그게 짐승의 룰이다. 짐승은 그런 존재다. 위의 실험에서도 드러났듯이 대화의 빈도수가 가장 높은 짝패는 서로 옆'에 있을 때이다. 서로의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C-B가 C-D보다 대화의 빈도가 세 배나 빈번한 이유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걸어둔다. ( http://myperu.blog.me/20148051329 ) 에드워드 홀의 문화인류학 시리즈'는 충분히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이다. 내가 무슨 책장사'라고 설레발을 치겠는가. 그저 좋은 책이어서 소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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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다는 행위는 오롯이 혼자의 힘'이다.


2003, end.

 

 

 

남들이 참고서를 살 때, 나는 그 돈을 모아서 월간 키노'를 샀다. 수학의 정석 대신 영화의 정석'을 공부한 것이다. 형편이 되는 대로 샀다. 돈 있으면 사고, 돈 없으면 뛰어넘었다. 주로 스페셜 에디션으로 편집되는 알짜배기 특집이 몰리는 12,1,7,8호'를 사는 통에 봄 가을'은 통째로 안 산 경우가 많았다. 내가 키노 구입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이유는 정성일 때문이었다. 재수없게 잘난 척을 어찌나 그리 하던지, 당시 편집장이었던 정성일이 하도 까불 때'라서 반항심이 컸던 모양이다. 꼰대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노 자체만 놓고 보면 매우 중요한 참고 자료'다. 지금도 이만한 영화 자료는 드물 것이다. 전무후무한 영화잡지'다.

 

며칠 간, 책을 정리하다가 그만 키노'를 건드리고야 말았다. 낡은 사진첩처럼, 추억의 책장처럼 < 키노 > 잡지를 들춰본 것은 아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궁금하지 않다. 이미 읽었던 내용이고, 이미 10년, 20년 전의 영화 이야기'이니 무엇이 궁금한가. 내가 궁금한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키노의 내용이 아니었다. 내게 없는 키노가 궁금한 것이다. 95년도 7월 호에는 어떤 내용이 있는 것일까 ? 99년 10월 가을에 개봉한 영화는 무엇이 있을까 ? 궁금한 것이다. 그래서 중고 서적을 이리저리 뒤져서 10년 전 영화 잡지'를 구매했다. 95년이면 17년 전 잡지다.

 

주문하고 나서 곰곰 생각하니, 정말 미친 짓 같다. 20년 전의 월간 잡지 '를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 " out of sight out of mind " 라는 서양 격언이 있다. 어찌나 쉬운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인지, 나 같은 알파벳 까막눈'도 잊지 않고 자신있게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문장이다.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뜻인데, 이 격언을 들을 때마다 피식 웃는다. 사실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간절해진다. < 섬 > 이 아름다운 이유는 멀리 있기 때문이다. 지평선이 아름다운 이유도 마찬가지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이루어진 사랑'보다 아름답다.

 

읽지 않은 책'을 읽는 행위는 무인도 섬을 향해 가는 행위'와 동일하다. 읽는다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혼자의 힘이다. 그 시간은 오롯이 섬이 되는 순간이다. 섬이란 유행과는 거리가 멀어서 오래된 고딕 양식의 클래식 정장' 같다. 그러므로 베스트셀러 목록은 수상한 목록'이다. 혹여, 실망하여도 어쩔 수 없다. 또 다른 섬으로 떠나면 되니깐 말이다. 그동안 수천 개의 < 섬 > 을 돌아다녔다. 섬을 접기도 하고, 밑줄을 긋기도 했으며, 섬을 베개 삼아 잠을 자기도 했다. 맘에 드는 섬도 있고, 맘에 들지 않는 섬도 있었다.

 

 

 

+

한때 열심히 옛날 신문을 읽었다. 언제부터인가 남산/용산 도서관'에 가면 정기간행물실에 가서 10,20,30년 전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거라. 하루종일 읽은 적도 있다. 낄낄거리며 웃으면, 사람들이 나를 우스운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옛날 신문을 보며 웃다니, 말이다. 옛날 신문을 보며 울기도 했다. 엉엉 울면, 사람들이 나를 우스운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신문을 볼 때는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은, 무표정한 표정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나를 정신 나간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에라이, 시부랄 !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하냐 ?

 

 

 

 

옛날 신문을 읽었어 : http://myperu.blog.me/20168576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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