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왕의 고뇌
에밀 아자르 지음,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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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읽은 책들.

 

 

 

10년 전이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 자기 앞의 생 > 이란 책을 발견했다. 내가 그동안 이 책을 읽지 않은 이유는 아동 청소년 책'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나는 꽤나 어려운 소설을 읽었다. 로브그리예, 사르트르, 까뮈,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읽기 어려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던 시절이었다. 마치 구하기 힘든 영화'만 찾아다니는 컬트 마니아의 자랑스러운 필생의 목록'처럼 말이다. 이런 내가 그 흔해빠진 청소년 소설 나부랭이'를...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 자기 앞의 생 > 을 읽었다. 그러다가 그만 눈물을 쏙 빼게 되었고, 그 후 며칠 동안 도서관에 비치된 로맹가리/에밀아자르의 소설'은 모두 읽게 되었다. 나의 닉네임인 " 페루애 " 도 그의 단편집 < 새들은 "페루에"서 죽다 > 에서 따온 것이다. 너무 급히 읽은 탓일까 ? 내가 읽은 로맹 가리의 소설들은 각자의 소설'이 아닌 6권'으로 된 한편의 장편 소설'로 기억되었다. 말이 좋아 " 기억 " 이지, 사실은 " 뒤죽박죽 " 이었다.

 

 

< 자기 앞의 생 > 에 나오는 에피소드는 < 유럽의 교육 > 으로 편입되고, < 유럽의 교육 > 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 가면의 생 > 에 나오는 인물로 착각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 새벽의 약속 > 에 나오는 에피소드는 엘리엇 카네티의 < 구제된 혀 > 와 혼동하기도 했다. 만약에 누군가 내게 그의 소설에 대해 물어오면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오줌을 지릴 것이다. 결국 나의 독서'는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망각 행위였다. 3초 기억력인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줄거리를 보는 것이 더 경제적인 것은 아닐까 ? 고통스럽게 4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읽느라 시간을 낭비하느니 말이다. 내 스스로 한심하고, 한심하고, 한심하고, 한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설을 읽느라 밤을 보낸다. < 솔로몬 왕의 고뇌 > 는 로맹 가리의 책 중에서 내가 읽지 않은 몇 권의 책 중 하나'였다. 고로 10년 전 도서관에는 없던 소설'이었다. 전처럼 눈물을 쏙 빼는 서사'는 없지만 여전히 낙관적이며 유머 감각이 풍부한 문장을 선보인다. 사실 그의 전 작품과 이 작품을 비교 평가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왜냐하면 내가 읽은 로맹 가리의 소설을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주제에 감히 초기작에 비해 문장의 호흡이 부드러웠다느니, 짧은 문장으로 깊이 있게 파고드는 손 기술에 탄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내 놀랐다.

 

 

건방지게 들릴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쓰는 문체가 로맹가리의 문체와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깐 나는 그의 소설을 잊은 것이 아니라 365일 그의 영향 아래 놓인 것이었다. 다만 그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까마귀'처럼 말이다. 사람이란 결국 자신이 읽은 책들로 만들어진 스타일'이다. 무엇을 채우느냐가 그 사람의 스타일을 만든다, 사상을 만든다. 당신이 여자를 꼬실려고 내뱉은 근사한 말은 누군가가 썼던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이거나 로맹 가리의 근사한 문장을 흉내냈겠지 ! 그리고 입만 열면 졸음이 쏟아지는 그 지긋지긋한 말투는 제임스 조이스의 문장을 흉내낸 탓이리라. 이처럼 한 사람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은 그동안의 독서'가 큰 몫을 차지한다. 니체를 탐독한 자'가 물개처럼 발랄하게 촐랑거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독서의 총합이 스타일을 만든다. 누군가의 문장은 당신에게 피와 살이 되어 뇌하수체로 흘러 뇌를 조종하거나 전립선을 타고 남근으로 우르르 몰려가 시도 때도 없이 발기시키는 주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또한 그렇다. 잊혀진 것이 아니다. 어쩌면 365일 작동하고 있으나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일지도. 하늘에 떠 있는 인공위성'처럼 말이다. 365일 반짝 반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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