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한 소음



 





                                                                                                         말이 주는 위로가 지겨웠기에 말로 표현된 위로를 믿지 않는 편이다. 말은 오염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말보다는 글의 세계에 빠지게 되었다.

말이 생물이라면 글은 사물(死物)에 가까웠다글이라는 문자가 주는 건조한 물성이 좋았다. 언제부터인가 글에 감성이 묻어나는 것보다는 차라리 감성이 배제된 배열에 마음이 끌리게 되었다. 그러니까 신경숙 소설을 읽는 것보다는 전자 제품 사용 설명서나 제품 영양 성분 따위를 읽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은 김훈과 감성적 혹은 감상적 맥락을 같이 한다. 습기를 주의하시고 건조하고 서늘한 장소에 보관하십시오 ! 이 얼마나 아름다운 문장인가.



오래 전, 낚시 방송을 즐겨 봤다. 불면에 시달려 본 사람은 모두 다 동의하겠지만, 소음이 없는 완벽한 정적만큼 숙면에(도움을 주기는커녕) 방해가 되는 요소도 없다. 불을 끄고 텔레비전 볼륨을 낮추면 최상의 조도와 최소한의 소음이 제공되어서 수면에 도움이 된다. 시청이라기보다는 청취에 가까웠다. 내가 낚시 방송에 중독된 이유는 모든 방송 채널을 통틀어서 말의 비율이 가장 적다는 데 있었다. 방송에서 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이 정도 말의 소음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요즘은 그나마도 간간이 오고가는 말조차도 없는 영상을 보게 된다. 다음은 유투버 ishitani의 가구 공정 과정을 담은 영상-들이다.




나무보다 매력적인 물성이 또 있을까 ?   목수는 말없이 나무의 치수를 재고 재단하고 잇는다. 분명 저것들은 가구의 어느 편린들일텐데 우리는 처음에 그 쓰임의 행태를 잘 모른다.  하지만 공정이 진행되다 보면 저 편린은 서랍의 틀대가 되고 저 편린은 버팀목이라는 사실을 목격하게 된다. 편린과 편린을 잇고, 다시 편린과 편린이 만나서 하나의 완성된 가구가 되는 것을 바라보게 된다. 정수리에 대못을 박지 않아도 단단하게 화합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은 듣기 좋다. 그것은 관계와 관계 사이에서 맺게 되는 최소한의 소음이다. 인간의 관계도, 그리고 관계와 관계 사이에 맺게 되는 말도 딱 이 정도의 소음이었으면 싶다. 

따스한 말의 효용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떠들며 말 한 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고 강조할 때마다 절망하게 된다. 선생님, 천냥 빚은 일을 해서 갚을 생각을 해야지 말을 꾸며서 갚을 궁리부터 하시면 안 됩니다. ㅅㅂ !  간결한 말이 그립다. 질이 질(質)을 만들어 내는, 그러니까 < - 질 > 이라는 접사가 사물의 속성, 가치, 유용성, 등급 따위의 총체인  < 질質 > 을 만들어 내는 톱질, 대패질, 망치질이 내는 간결한 소음, 그런 간결한 말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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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8-01-31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모임 다녀온 오늘, 말의 무게를 새삼 느낍니다. 내가 뱉은 말이 허망해서 후회를 곱씹네요. 쓰잘데기 없는 말들을 쏟아낸 자신이 부끄럽고 짜증나고. 가만히 듣기나 할 것을. 저는 여전히 애정결핍인가봐요.
김훈, 『공터에서』로 얘기 나눠 안 그래도 김훈 얘기를 했는데 마침 곰발님이 사용설명서 얘기를 했네요. 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8-02-01 10:11   좋아요 0 | URL
김훈이 사전이나 소방 실무서 따위의 책을 즐겨 읽는다고 하죠 ? ㅋㅋ
처음에는 뭐 이런 작가가 다있나 했는데 이제는 이해가 가능합니다아..

표맥(漂麥) 2018-02-01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3분 동안 유심히 목공 일을 지켜본 1인...^^

곰곰생각하는발 2018-02-02 09:06   좋아요 1 | URL
말 한 마디 없는 영상인데 참.. 사람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