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페미니즘 VS 나쁜 페미니즘 :
미스터 그레이트 빅 퐈이어 에그 씨
바지 단추와 배꼽이 일치할 때가 최상의 패션이라고 믿는 그는 언제나 바지춤을 위로 추켜 입었다. 밑위길이가 길면 그나마 볼썽사납지는 않은데 밑위가 짧으면 차마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밑위가 짧은 바지 단추를 배꼽에 끼우면, 아...... 아아, 이런 씨불알 ! 남근이 돋보이게 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바지 속에서 봄에 피는 쑥도 아니면서 불쑥 쏫은 (남근과 불알로 추정되는) 그것을 본다는 것은 지옥 같은 맛이다. 설상가상 웃옷을 바지 속으로 넣어 입으면 점입가경이라. 볼썽사나우면 안 보면 되지 _ 라고 말하는 이도 있겠으나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게 아니다. 그럴수록 자꾸 그곳에 눈길이 가기 마련. 그런데 독특한 점이 있었다. 퐈이어 에그(FIRE EGG 혹은 火卵)의 크기가 남다른 것이다. 내 뽜이어 에그가 지구 크기였다면 그는 천왕성이었다.
비밀은 화장실에서 밝혀졌다. 그는 대물이었다 ! 그러니까 바지춤을 최대한 위로 추켜 입는 그의 패션은 " 그레이트 빅 퐈이어 에그 " 를 만천하에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대다나다. 그는 대물답게 남성우월주의자였다. 입만 열면 남자가 돼서 _ 이라거나 여자가 감히 _ 라고 말하는 부류였다. 이쯤되면 나이 지긋한 중년의 남자이겠거니 지레짐작하겠지만 아니올시다. 그는 피 끓는 삼십 세'였다. 열혈남아답게 강건한 몸이었다. 철근도 씹어먹을 것 같은 대식의 소화력과 터질듯한 허벅지는 남성다움을 과시하기에 좋은 체형이었다. 당시에 그는 같은 직장에 다니는 사무실 직원을 짝사랑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그녀는 나와 함께 배꼽을 바지 단추 구멍에 끼우는 패션을 혐오하는 부류였다. 사달은 같은 직장에 다니는 직원의 신혼부부 집들이에서 벌어졌다. 자신이 짝사랑하던 직원이 다른 남자에게 호감을 보이며 호호호 _ 하자 그레이트 빅 퐈이어 에그의 마음은 퐈이어 ! 질투에 사로잡힌 대물은 그 남자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 " 형씨, 형씨가 이 동네에서 그렇게 술을 잘 마신다며 ? 나랑 술 내기 한번 합시다. 병나발 원샷, 오케이 ? " 맞장구를 쳐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놀랍게도 대물의 제안을 받은 사내 A는 게임을 받아들였다. 집들이에 초대된 사람들은 모두 다 말렸으나 두 사내의 호기를 막을 힘은 없었다.
대물이 먼저 소주 뚜껑을 따서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A도 소주를 따서 벌컥벌컥 마셨다. 1차 병나발전은 무승부. 대물이 다시 소주 뚜껑을 따서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그 다음 차례는 A였지만 뚜껑을 따기도 전에 2차 병나발 게임 포기 선언을 했다. 대물은 승리에 도취돼서 불콰한 얼굴로 자신이 짝사랑하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나, 이런 남자야 _ 이런 표정으로. 대물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소주 한 병을 더 따서 병나발을 불었다. 소주 세 병을 마시는데 걸린 시간은 10분이 채 지나지 않았다. 문제는 10분 후에 발생했다. 속이 더부룩하다며 화장실에 간 그는 변기 밖에다가 어마어마한 토사물을 쏟아냈다.
위액이 분비되어 음식을 삭이기 전이라 그가 쏟아낸 토사물은 무척 싱싱했다. 오징어꼴뚜기대구명태거북이연어알물새알, 신혼부부 화장실을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만든 것이다. 신혼부부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이가 없네. 당연히 집들이는 파투가 나고 손님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렇다면 여기서 끝이냐 ? 아니올시다. 미스터 그레이트 빅 퐈이어 에그 씨는 신혼부부가 어렵게 장만한 아파트를 나서면서 계단을 한 층 내려오다가 아래층 문 앞에 토사물을 다시 한번 쏟아냈다. 5, 4, 3, 2, 1. 퐈이야 ~ 오징어꼴뚜기대구명태거북이연어알물새알. 그렇게 두 번을 더 쏟아낸 다음에야 그는 그곳을 떠났다.
떠난 자는 말 없이 떠난다지만 남겨진 자의 비애는...... 말해서 무엇하랴. 이 전설적인 이야기는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있는 그대로를 전한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한국의 가르캉뒤아, 미스터 그레이트 빅 퐈이어 에그 씨가 싸질러 놓은 어마어마한 토사물이 아니라 한국 남성들이 유아인으로 시작된 애호박 게이트를 관람한 후 입 밖으로 싸질러 놓은 관전평'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페미니즘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남근 대신 핏대로 텐트를 세우던 남성들이 페미니스트라고 고백한 유아인을 지지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 자지는. 오타다. 이 지지는 논리 모순이다.
이 모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페미니스트 유아인이 가짜이거나 아니면 대개의 한국 남성들이 알고 보니 페미니스트여야 한다. 그동안 한국 남자들 위악 떨고 있엇구나아. 물론 대개의 한국 남성들이 페미니스트라는 가설은 잘못되었으니, 유아인의 페미니즘이 가짜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유아인이 남초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영웅으로 등극한 데에는 그가 사용하는 언어에 있다. 꼴페미, 메갈짓 따위는 남초들이 평소 즐겨 사용하는 언어였기 때문이다. 유아인은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착한 페미니즘과 나쁜 페미니즘으로 구별 짓기를 시도한다.
그는 자신이 믿고 실천하는 것은 착한 페미니즘이고 상대방은 나쁜 페미니즘이라는 주장한다. 그런데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착한 페미니즘 운운하는 방식은 이미 구라파에서 오래 전에 유행했던 의 구닥다리 방식이다. 서프러지스트(suffragist)와 서프러제트(suffragette)의 관계를 이해하면, 왜 유아인이 착한 페미니즘과 나쁜 페미니즘을 이용하려 하는지 알 수 있다. 서프러지스트는 1860년대부터 시작된 여성 참정권 운동을 지지한 사람을 지시하는 단어이고, 서프러제트는 1910년대 평화적 저항에서 무력 저항으로 노선을 바꾼 세력을 지시하는 단어이다.
서프러제트는 서프러지스트와는 달리 조직적으로 무력 시위에 가담했다. 평소 서프러지스트의 평화적 저항에 대해 초지일관 무관심(무려 50년 동안이나 !)으로 대응했던 남성들은 서프러제트의 과격 시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남성들이 서프러지스트를 서프러제트라고 비틀어버린 데에는 조롱의 의미가 담겨 있는데 작은 것'을 의미하는 어미(-ette)를 붙임으로써 그들을 비하했던 것이다(한국에서 페미니스트를 꼴페미라고 말하는 것과 유사하다). 남성들은 폭력은 옳지 않다면서 서프러제트는 서프러지스트의 평화적 저항을 배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성들은 서프러제트에 대항하기 위해 서프러지스트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서프러지스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던 그들은 서프러제트가 출몰하자 비로소 서프러지스트의 말에 귀를 기울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똥 묻은 개보다는 겨 묻은 개가 낫다. 유아인이 진짜 페미니즘과 나쁜 페미니즘(메갈짓, 꼴페미, 워마드) 프레임으로 갈라치기하는 방식도 이와 유사하다. 그는 나쁜 페미니즘을 공격하기 위해서 착한 페미니즘 전략을 차용한 것뿐이다. 그 옛날 구라파 남성들이 서프러제트를 공격하기 위해서 평소에는 마음에도 없던 서프러지스트를 지지(하는 척)했던 것처럼 말이다. 유아인의 전략이 기만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유아인의 애호박 게이트'를 보면서 그레이트 빅 퐈이어 에그 씨의 에피소드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그 싱싱했던 토사물들. 토사물을 뒤적거리다 보면 아마도 싱싱한, 아직 삭지 않은 애호박 하나 정도는 있지 않았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