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화 잡 담
스스로를 영화광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 있다. 언어 능력이 탁월하여 자막 없이도 몇몇 나라의 영화를 보는 사람이다. 영화제 기간이 되면 종종 보게 되는 이이여서 알음알음 한 다리 건너 통성명을 하게 되는 사이가 됐다. 구라파 언어에 자부심이 대단했던 그는 내가 종종 생각없이 업계 용어인 우라까이나 가께모찌 같은 말을 쓰면 인상을 찡그리고는 했다.
내가 이 사람을 인상 깊게 본 계기는 GV(영화가 끝나면 감독과의 대화) 시간이었다. 그는 유창한 외국어로 감독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하아유, 아엠 파인 탱규 앤듀 따위의 수준이 아니었다. 외국어 까막눈인 내 귀에는 쏼라쏼라처럼 들렸다. 외국어가 쏼라쏼라로 들리는 관객은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가방 끈이 가장 긴 세대라고는 하지만 그 자리에 모인 대개는 까막눈이었으리라. 나는 이 상황이 매우 유감이었으며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 무대는 감독과 함께 통역사도 참석하는 자리였다. 그가 굳이 감독과 직접적으로 외국어로 대화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가 다른 관객들을 배려했다면 그런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니미, 허세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어느 날, 영화 모임에 참석했더니 그도 있었다. 이런저런, 그런 수다가 이어졌다. 그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연출한 << 다크 나이트 >> 에서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를 극찬하기에 내가 개소리하지 말라고 했다. " 개소리라니요 ? " 화가 난 그는 내 쪽을 향해 뾰족한 말풍선을 띄웠지만 나는 포크로 그 말풍선을 터뜨리며 말했다. 새소리보단 낫잖습니까.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를 못하는 배우라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그를 좋아하고 훌륭한 배우라는 사실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영화 << 다크 나이트 >> 에서는 연기의 신 로버트 드니로라고 해도 제대로 된 연기를 선보이지는 못할 것이다.
배트맨 가면 쓰고 연기하는 장면이 팔 할인데 어떻게 제대로 된 연기 실력을 뽐낼 것인가. 물론 얼굴 표정 연기가 전부는 아니다. 연기에는 액션도 포함된다. 배트맨 역은 안타깝게도 신체마저도 갑옷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제대로 된 메소드 연기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를 극찬한다는 것은 웃긴 일이다. << 배트맨 >> 은 가면 쓰고 진검승부를 가리는 복면가왕은 아니다. 나한테 개소리라는 소리를 들은 그는 기회를 만회하고자 우아한 영화로 화제를 돌렸으나 내 취향은 " 막가는 영화 " 쪽이어서 탁자 위에서 오고가는입말이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았다.
뚱한 표정으로 듣는 둥 마는 둥 시큰둥한 얼굴을 하자 배려심 깊은 A가 나에게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때다 싶어 나는 잽싸게 대답했다. 내 얘기 좀 들어보실라우 ? 막가는 영화 몇 편을 이야기하자 그가 비웃듯이 말했다. 호호호. 아니 무슨 그런 영화를 보세요. 수준 떨어져서 대화를 못하겠다는 말투였다. 이때는 영화 << 아수라 >> 가 개봉되기 전이었기에 그때가 << 아수라 >> 개봉 이후의 일이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물론 속으로만. " 좆이나 뱅뱅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