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과 나
김광석이 죽던 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밤바람이 바밤바처럼 차갑던 날이었다. 나는 일행과 종로3가를 걷고 있었다. 한겨울이었지만 나는 홑껍데기 옷 하나가 전부여서 몸을 잔뜩 웅크린 채였다. 10월 즈음에나 입을 옷을 칼바람 부는 1월에 입고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총이 따가웠다. 그때 우연히 어머니와 거리에서 마주쳤다. 이런 데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간 지 석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어머니는 분노의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머니에게도 일행이 있었다. 일행 또한 나를 뉘 집 자식인가 _ 라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어머니는 주위사람들에게 나를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아들로 소개했을 것이 분명했다. 일종의 과대 광고인 셈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표정을 하고 있을 때 레코드 가게에 설치된 야외 스피커에서 김광석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가수 김광석 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시에 나는 < 김광석의 다시 부르기 > 라는 노래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곤 했으며 친구들과 김광석 콘서트에 가자고 약속을 한 상태였다. 당황이 곱배기로 몰려오자, 나는 진짜루 당황했다. 어찌할 것인가 _ 를 고민하고 있을 때 어머니는 나를 지나쳐 갔다. 방송국에서 김광석의 죽음을 추모하는 음악을 내보냈다. 어제는 하루종일 비가 내렸어. 자욱하게 내려앉은 먼지 사이로...... 의외의 선곡이었다. 한여름에 듣던 노래를 한겨울에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언발란스한 하루였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프레베르의 << 꽃집에서 >> 라는 시가 생각난다.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일들이 동시에, 동시에, 동시에 일어나는 일들은 항상 당황스럽다.
꽃집에서
어느 남자가 꽃집에 들어가
꽃을 고른다
꽃집 처녀는 꽃을 싸고
남자는 돈을 찾으려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꽃값을 치를 돈을
동시에 그는
손을 가슴에 얹더니
쓰러진다
그가 땅바닥에 쓰러지자
돈이 땅에 굴러가고
그 남자와 동시에
돈과 동시에
꽃들은 부서져도
남자는 죽어가도
꽃집 처녀는 거기 가만 서 있다
물론 이 모두는 매우 슬픈 일
그 여자는 무언가 해야 한다
꽃집 처녀는
그러나 그 여자는 어찌할지 몰라
그 여자는 몰라
어디서부터 손을 쓸지를
남자는 죽어가지
꽃은 부서지지
그리고 돈은
돈은 굴러가지
끊임없이 굴러가지
해야 할 일이란 그토록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