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에 대하여 :

 


​1. 김성주   

mbc  오락 프로그램 << 아빠, 어디 가 >> 가 선풍기도 아니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을 당시에,  나는 이 프로그램이 " 아동 노동 착취 금지 협정 " 을 어겼다고 어깃장을 놓은 적이 있다. 자식을 앞세운 아비들의 앵벌이라는 격정적 표현도 사용했다. 내 글에 대한 반응은 대동소이했다. 뜯다 뜯다 헐뜯을 게 없어서 이런 걸로 시비냐, 쑥이나 뜯어 이 새캬 _ 라는 댓글이 대부분이었지만,

내가 보기에 이 프로그램은 어린이판 << 체험, 삶의 현장 속으로 >> 였다. 새벽 일찍 일어나고 싶은 아이가 어디 있을까 ?  오지를 돌아다니며 갯벌 체험을 하거나 한겨울에는 산속 깊은 곳에서 빙어 낚시에 동원하기도 했으며 밤 늦게 촬영이 끝나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오, 맙소사 !  지저스 크라이스트.    라스베가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헐리우드 영화 공장은 아역 배우들의 노동 시간에 대해 매우 엄격하다. 촬영은 대부분 나인 - 투 - 파이브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부득이 야간 촬영을 해야 하는 경우는 부모와 아역 배우의 자발적 동의 없이는 밤에 촬영이 진행될 수 없다.

만약에 이를 어기면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그것은 헐리우드 영화 공장이 아동 노동 착취 금지 협정을 철저하게 준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린이판 << 체험, 삶의 현장 속으로 >> 는 ?!    이 오락 프로그램의 중심에는 김성주가 있었다.  내가 김성주를 콕 짚어서 말하는 이유는 다른 출연 가족과는 달리 부자 관계'가 곰살궂지 않았다는 데 있다.  부자 간 애착 형성 과정에 실패한 가족 같았다.  다른 아빠 - 들'이 아이와 함께 " 체험 " 을 하고 있었다면,  김성주는 아이와 함께 " 체험 학습 " 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카메라를 의식해서 친절한 아빠 역할에 충실하고자 노력했지만

몇몇 장면에서는 애써 화를 삭이고 있는 얼굴 표정이 역력했다. 나는 그 친절함이 불편했다. 이웃들에게는 웃으면서 착한 아들이라고 소개하지만 이웃이 보이지 않으면 냅다 아들의 등짝을 후려치는 부모처럼.  최근에 주진우 기자는 김성주를 거론하면서 김장겸이나 김재철 같은 인간도 역겹지만 김성주 같은 인간도 패주고 싶다는 말을 한 모양이다(자세한 내용은 다들 아시리라 믿고 생략한다). 나는 사람들이 그가 맡고 있는 프로그램에서 하차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를 지지할 생각도 전혀 없다. 그는 염치없는 사람이 맞다.



2. 최영미

종종, 술자리에서 한국인은 교양 수준이 떨어져서 순수 문학이 팔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는 작가들이 글만 써서 먹고 살 수 있겠냐 _ 며 한숨을 내쉬고는 한다. 그가 내뱉은 한숨에는 그래도 나는 교양인이어서 순문학 졸라 많이 읽었지롱 _ 이라는 행간이 숨어 있어서 웃음이 났다.  순수 문학이 팔리지 않는 것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나 똑같다. 고진의 말처럼 근대 문학(순수 문학)은 죽었다 !   글만 써서 먹고 살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인데, 프랑스 작가들은 글만 써서 먹고 살 수 있다. 프랑스 문화 예술 지원 정책 때문이다.

프랑스 교육 문화 예술 지원 정책은 빈민가 아이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좋은 스승 밑에서 바이올린을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렇기에 프랑스 예술인은 국가 지원(국가에서 제공하는 일자리)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인은 예술인을 베짱이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끼니를 굶은 아이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다니 !     이런 식'이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것은 대대로 돈 많은 부자의 후원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바그너는 오토 베젠동크의 경제적 후원을,  니체는 마이젠부르크의 경제적 후원을,  릴케는 베르너 라인하르트라는 후원자가 있었기에 창작을 할 수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순수 창작만으로 밥을 먹고 살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바그너에 대해, 니체에 대해, 릴케에 대해 놀고 먹는 염치없는 베짱이라고 흉보는 사람은 없다. 내 개인적 취향을 고려하자면 최영미 시인의 시와 글은 질색(특히,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한심하기는 하지만...)이지만 문화 예술 생산자로서 후원자의 지원을 바라는 마음을 염치없다고 비판할 생각은 없다.  순수 예술인은 창작만으로는 밥 먹고 살 수 없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밥 먹고 살 수 있게 지원을 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그를 지지한다. 그에게 전망 좋은 방이 생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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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7-09-17 0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곰곰발님께서 해주셨던 찰스 부코스키가 출판사로부터 받았던 지원(이 지원은 물론 위 글에서 나오는 국가적 차원의 지원과는 현격히 다릅니다만) 이야기가 생각나는군요. 출판사에서 죽을 때까지 매달 부코스키에게 100달러씩 주기로 하고, 부코스키는 이 지원에 힘입어 ˝여자들˝, ˝우체국˝ 같은 걸작들을 썼지요.
저도 최영미 시인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ㅡ저는 최영미 시인의 글들이 시인화된 공지영 같다는 생각이 좀 들더군요ㅡ그녀가 바라는 지원을 ‘거지 구걸‘, ‘염치없는 베짱이‘ 같은 식으로 이해하려는 세간의 인식에는 별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9-17 18:51   좋아요 0 | URL
저는 한국 출판사가 최승자 시인이 정신병원에서 생활하도록 방치하는 것을 보고 참 염치없는 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승자 시인 정도라면 어느 정도 출판사의 후원은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뭐, 출판사별로 후원회의 밤이라도 개최해서 세상에 알리고 돕는.. 뭐, 그런... 정말 그런 짓도 안 하더군요.

cyrus 2017-09-17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술가가 가난해서 굶어죽거나 자살하는 소식이 들려오면 대부분 대중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예술가를 외면한 사회 탓, 예술 활동을 장려하지 않은 정부 탓합니다. 그런데 예술가가 경제적 지원을 요구하면 속물이라고 욕합니다. 이래서 우리나라에서 예술로 밥 먹고 살기 힘들어요. 최영미 시인을 욕하는 사람들 중에 시집을 한 권이라도 사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9-17 20:49   좋아요 0 | URL
이율배반이로군요. 사학 재단에 들어가는 국가 세금으로 교육 예술 지원에 투자하면 양질의 문화 교육을 받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2017-09-19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9-19 18:55   좋아요 0 | URL
오, 바로 그겁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그 노동의 대가를 고스란히 글로 녹여내는 것이니까요. 국가의 지원이 왜 그들에게 가야하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문화 유산은 대대손손 엄청난 가치를 생산하니까요. 섹익스피어를 보십시오. 이 양반의 경제적 가치는 얼마일까요 ? 이런 국가적 경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국가는 문화 산업에 많은 투자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네 도로 아스팔트 까는 비용 줄여서 이런 데 투자해 보십시오. 문화 강국 되면 이득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