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솝과 라 퐁텐느
내가 이솝 우화에서 그 유명한 << 개미와 베짱이 >> 우화를 가자미눈으로 째려보기 시작한 계기는 친구따라 과천 경마장 갔다가 인생 졸라 망친 딸을 둔 아비 때문이었다. 뭐, 그 아비라고 해서 성정이 고운 이는 아니었다.
그는 백성들이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독일로 뿔뿔이 흩어져 목숨 걸고 벌어들인 달러로 낮에는 막걸리를 마시며 서민 흉내를 내다가도 밤만 되면 아방궁에서 시바스 리갈을 마시며 여대생 젖가슴을 주물렀던 위인'이셨다. 창씨개명 다까기 마사오. 이름을 풀어 설명하면 닭고기 맛있오, 박근혜의 아비 박정희였다. 1964년, 그가 대한민국 서열 1위에 등극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 노동자 " 라는 단어를 지우고 " 근노자 " 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일이었다. 바쁜 벌꿀은 슬퍼한 시간도 없다는데, 그는 왜 많고 많은 국정 현안 가운데 제일 먼저 국어 정화 운동에 앞장섰을까 ?
근로(노)라는 단어는 노동 앞에 근(勤)이 하나 더 붙은 형태로 강조의 성격을 띤다. < 노동 > 이 사전적 의미로 " 일하다 " 는 뜻이라면, < 근로 > 는 " 부지런히(勤) 일하다 " 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자가 노동자 입장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강조한 단어라면 후자는 고용주 입장에서 노동자의 의무를 강조한 단어이다. 노동조합은 있지만 근로조합은 없고, 노동 운동은 있지만 근로 운동은 없는 까닭이다. 마찬가지로 노동 탄압이라는 표현은 있지만 근로 탄압이라는 표현이 없는 까닭은 대한민국 사회가 과잉 노동인 근로를 예찬하면서도 노동은 탄압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눈만 뜨면 나라 걱정에 가난한 백성 걱정을 했던 닭고기맛있오의 본심은 나라 사랑이 아니라 비즈니스 프랜들리였던 것이다. 각하의 꼼수를 깨닫게 되자 근면이 최고의 미덕이라 배웠던 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아따, 시발. 꼼꼼한 새끼들. 좋아, 이제부터................삐뚤어질 테다 ! < 개미와 베짱이 > 우화에서 " 개미 " 는 여름날에도 밤낮없이 열심히 일한다는 점에서 근면의 아이콘이다. 비즈니스 프랜들리한 계급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다. 더군다나 그들은 개미가 보편적 복지(무상급식)을 요구하는 베짱이를 냉정하게 문전박대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저자인 이솝이 농장 노예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솝우화는 그리스판 용비어천가'다. 그 뜻이 통한 것일까 ? (노예가 곧 재산의 일부였던 시대에) 농장 주인은 이솝을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킨다. 노예 주제에 주인의 논리를 설파하니 기특한 것이다. 우리는 그 사실도 모른 채 지혜와 교훈이라는 명목으로 노예근성을 배우며 자란 것이다, 시바. 모두가 이솝 우화의 교훈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라 퐁텐느 우화 < 개미와 베짱이 > 에서 저자인 장 드 라 퐁텐느는 베짱이를 변호하면서 개미의 무자비를 비판한다. 이솝 우화와 라 퐁텐느 우화를 비교하면 차이는 분명하다.
더운 여름날, 개미는 열심히 일하지만 배짱이는 노래만 부르며 놀았다. 추운 겨울날 배짱이는 개미를 찾아가 구걸했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 배짱이는 지난날을 후회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 이솝 우화
베짱이는 추운 겨울이 되자, 개미 집을 찾아가 먹을 것을 빌려달라고 했다. "넌 여름에 일 안하고 뭘 했니?" "그냥 놀기만 한 건 아냐. 밤낮으로 열심히 노래를 불렀어." 그러자 개미는 문을 꽝 닫으며 말했다. "여름엔 노래를 불렀으니 겨울엔 춤을 추면 되겠구나."
- 라퐁텐 우화
퐁텐느는 베짱이를 단순하게 하는 일 없이 놀고 먹는 불한당 캐릭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노래하는 베짱이는 무대 예술 노동자였다. 그는 이솝과는 달리 노동 못지 않게 놀이의 중요성을 인식했던 인물로 노동과 유희를 동일한 가치로 인식한 것이다. 이처럼 이솝과 퐁텐느를 비교 분석하다 보면 노동을 폄하하고 근로를 예찬했던 이솝(우화)가 얼마나 전근대적이며 기득권 논리에 기생한, 계급 배반적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는 미래에는 노동이 유희가 될 것이다 _ 라고 예언했는데 그 예언은 맞았다. 상상력이 생산력을 대체하면서 노동은 점점 유희에 가까워지고 있다.
영화 << 쥬라기 공원 >> 한 편이 현대자동차 1년 수익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내고, 소설 << 해리포터 >> 한 편이 삼성전자 1년 수익과 맞먹는다는 통계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솝을 틀렸고 퐁텐느는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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