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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








날개의 딜레마



                                                                                                       예상 표절이라는 말이 있다. 상식을 뒤엎는 전복적 사고로 패러독스를 생산하는 피에르 바야르는 < 현재의 작가 > 가 < 과거의 작품 > 을 표절하는 전통적 표절을 벗어나 거꾸로 < 과거의 작가 > 가 < 현대의 작품 > 을 표절할 수 있다는 예상 표절을 주장한다. 쉽게 말해서 신사임당이 신경숙을 표절한 것이다. 처음에는 개똥 같은 주장이라고 생각하지만 피에르 바야르가 쓴 << 예상 표절 >> 이란 책을 읽다 보면 묘하게 빠져드는 구석이 있다.

나는 " 봉황에 닭을 비교한다 " 는 오래된 한국 속담을 접했을 때의 충격과 공포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천 년 후, 대한민국 궁궐에서 벌어질 난장판을 표절한 이는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 조상이었던 것이다. 으째 알았스까잉 ?                         날개의 딜레마라는 사회심리학 용어가 있다. 사전을 찾을 필요는 없다, 내가 이 글을 쓰기 위해서 갓 지어낸 신조어이니까 !  옷이 날개라는 속담은 좋은 옷이 사람을 돋보이게 만든다는 뜻인데 한편으로는 동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동의하지 못하는 구석도 있다. 좋은 옷이 사람을 돋보이게 만드는 데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영화배우 정우성처럼 사람 자체가 날개인 사람이 좋은 옷을 입으면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지만 하는 짓이 똥인 사람이 좋은 옷을 입는다고 해서 멋스럽게 보일 리 없다. 아르마니 명품 양복이라고 해서 누구나 " 개간지 " 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마크롱이나 정우성이 입으면 멋스러움은 배가 되지만 트럼프와 홍준표가 입으면 ?!  ...... 멋스러움은 배가 되기는커녕 대추로 쪼그라들 것이다. 아무거나 입어서 촌스러운 사람은 뭘 입어도(심지어, 격식과 양식을 갖춘 옷을 입어도) 촌스럽다. 옷이 사람을 촌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 자체가 스스로를 촌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비린내 나는 고등어를 명품 루이비통 가방으로 포장한다고 해서 영광 굴비가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결론은 옷이 날개가 아니라 사람이 날개'다. 청와대는 대한민국 통치자를 상징하는 문장으로 봉황을 사용한다. 청와대 정문에는 국화인 무궁화를 중심으로 양 옆에 봉황 두 마리가 지키고 있는 돋을새김 조각이 새겨져 있다. 그러니까 봉황이라는 새와 대통령은 서로 동급이다. 문제는 쥐와 닭이 봉황 행세를 하며 호가호위하는 데 있다. 쥐가 봉황 행세를 하며 호가호위했던 일화는 다음 지면에서 하기로 하고 오늘은 닭이 청와대에서 봉황 행세를 했던 비극을 다룰까 한다. 닭과 타조가 날지 못하는 이유는 몸집에 비해서 날개가 작다는 데 있다. 점보 비행기에 선풍기 프로펠러를 부착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리라.


날개를 활짝 펴고 ~ 세상을 자유롭게 나는, 노래하며 춤추는 아름다운 나비 닭은 없다. 그것이 닭의 숙명이다. 그런데 주제 파악도 못하고 벼랑 끝에서 날개를 활짝 편 닭이 있었으니..... 그 유명한 박근혜'다. 물론 그 스스로도 자신의 날개로는 창공을 날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날지 못하는 닭1)이다 보니 봉황처럼 높이 그리고 멀리 나는 날개를 가지고 싶었던 박근혜는 넓고 우아한 날개에 대한 선망이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닭 날개, 이 초라한 결핍을 감추기 위해서 최순실은 의상실에서 가짜 날개를 만들어 청와대로 공수한 것이다. 옷이 날개이니까. 패션 정치의 시작이다. 

언니이 ~  옷이 날개라니까. 언니 몸에서 날개 분리시키면 우린, 다 ~ 죽어 ~                        

문제는 닭의 몸뚱아리에 봉황의 날개를 붙인다고 해서 봉황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박사모 회원들에게는 미안한 소리이지만 박근혜 대통령 각하 님께서는 봉황 인형탈을 쓴 닭이었다. 하여, 최가박당 게이트는 닭이 봉황을 흉내 내려다고 좆된 경우다.   어쩌면 박근혜가 거울방을 통해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올림머리가 아니라 비단으로 만든 봉황의 날개였을 것이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배탈이 안 나듯이, 최가박당에게 딱 맞는 옷은 강남 의상실 옷이 아니라 수의(囚衣)다. 

내가 어렸을 때 극장 간판을 그렸던 아버지는 이문열 원작을 영화로 옮긴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 라는 동명의 영화 간판을 그리면서 제목을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 라고 잘못 써서 극장 사장에게 혼난 적이 있다. 그때는 자식된 도리로써 아버지의 문학적 소양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었는데 박근혜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는, 미리 앞날을 보시고 예상 표절하신 아버지의 인문학적 소양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그래요, 아버지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습니다 ■ 

 

 

 

                                    

1) 닭의 아비 이름이 닭고기맛있오(다카기 마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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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4 0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4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7-06-14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때 봉황 탈을 쓰고 호가호위했던
위정자의 말로가 참 씁쓸합니다.

다음에 이어질 봉황 행세를 하려던 쥐
에 대한 서사도 기대해 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6-15 12:41   좋아요 0 | URL
그냥.. 제가 보기엔 우리 근혜는 모지리 같습니다. 모자란 바보 같다고나할까요.
법정에서 비실비실 웃기나 하고..
이걸 여전히 빨아주는 박사모도 불쌍하고..ㅎㅎ

마립간 2017-06-14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 글의 곰곰발 식 ‘날개의 딜레마‘라면, 마립간 식 ‘날개의 딜레마‘는

날개 있는 것도 추락할 수 있고, 날개 없는 것도 추락할 수 있다. 그러나 부러진 날개로는 날 수 없다.

로 하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6-15 12:42   좋아요 0 | URL
그러면 이렇게 정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마립간의 딜레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