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가 보여 :
안성기의 개소리
모던 롹 밴드 그룹 델리 스파이스의 < 차우차우 > 라는 곡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에는 이 곡보다 좋은 노래는 없다. 노래하는 화자는 " 너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 하소연한다.
① 너의 목소리가 들려, ② 너의 목소리가 들려, ③ 너의 목소리가 들려, ④ 너의 목소리가 들려. 듣기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면 듣기 싫은데 듣기 싫은 소리가 계속 들리니 노래하는 화자에게 그 목소린 한 서린 소리처럼 들리는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데도, 시바 조낸...... 너의 목소리가 들(ⅹ16번) " 린다고 고백한다. 눈 감아도 들리고 귀 막아도 들리니 앉으나 서나 대략 난감이라. 누군가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_ 라고 주문하는 순간부터 코끼리만 생각나듯이 떠난 애인을 잊어야 겠다고 마음 먹는 순간부터 너의 아름다운 목소리만 들린 것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
차우차우라는 노래 제목이 중국 황실에서 키우는 개의 종류'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노래하는 화자가 지시하는 < 너의 목소리 > 는 < 개 소리 > 라는 의미가 된다는 점에서 듣기 거북한 소리'에 가깝다고 해야 될 것이다. 이 노래에 대한 제 10자평은요? 개소리 말라우. 그러니 "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데..... " 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암, 그렇고 말고..... 듣기 괴롭지 ! 나는 최근에 안철수가 고양이가 기분 좋을 때 내는 그르렁 소리를 내며 연설을 할 때를 떠올리며 무릎 탁, 치고 아, 했다. 말 그대로 개소리괴소리를 내지르는 것이다.
듣기 싫은 말(text)뿐만 아니라 듣기 싫은 소리(voice)도 고문인데 하물며 듣기 싫은 목소리로 듣기 싫은 말을 할 때의 청감은 분필로 칠판을 긁을 때 나는 소리에 버금가리라. 남들은 사춘기 때 찾아온다는 " 변성기 " 가 안철수에게는 지명(知命)과 이순(耳順) 사이에 놓인 오십 중반에 찾아왔으니, 신소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앵앵거리던 소년의 목소리에서 개소리괴소리로 변신한 것을 두고 " 안성기의 혁명적 레볼류션 " 이라고 흉볼 만하다. 들을 때마다 개소리요, 괴소리'다. 마치 카스트라토였던 파리넬리'가 헤비 롹 밴드 corn의 창법으로 메탈을 선보이는 꼴이다. 피가 모자라 ~ 피가 모자라 ~ 피가 모자라 ~
듣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토록 가벼운 소리로 이토록 무거운 노래를 부르니 갈수록 맨탈이 붕괴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안성기 씨, 저인망 그물처럼 밑바닥을 탈탈 털어 소리를 끌어올리시다가는 배탈나기 딱입니다. 이해를 못하는 바는 아니다. 대통령이 될 후보가 앵앵거리는 모기 창법을 가졌다는 것은 큰 손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어쩌랴, 모건 프리먼 같은 성대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가 나쁜 성대를 가졌다고 해서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목소리도 아니면서 자기 목소리인 척 꾸미는 모사(模寫)가 거북하다는 지적이다.
차우차우를 노래하는 청자는 " 너의 목소리가 들 " 리면 귀를 " 막아 " 도 " 너의 목소리가 들 " 린다고 하소연하지만, 나는 다행스럽게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서 귀를 막으면 너의 목소리가 들리지는 않는다. 문제는 " 너의 목소리 " 가 보인다는 점이다. 세상을 다 가졌으나 새소리를 내는, 대통령을 꿈꾸는 남자의 운명을 보면서 신은 공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덧대기 +
너의 목소리가 들려 / 너의 목소리가 들려 / 너의 목소리가 들려 / 너의 목소리가 들려 /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데도 /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데도 / 너의 목소리가 들려 / 너의 목소리가 들려 /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데도 /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 너의 목소리가 들려 / 너의 목소리가 들려 /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데도 /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 너의 목소리가 들려 / 너의 목소리가 들려 / 너의 목소리 / 너의 목소리 / 너의 목소리가 들려 / 너의 목소리 / 너의 목소리 / 너의 목소리가 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