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패러디
괴물은 이름이 없다, 괴물을 지시하는 것은 it 이거나 thing 이라는 지시어일 뿐 ! 메리 샐리의 무, 무무무무시무시한 고딕 호러 << 프랑켄슈타인 >> 이야기'다.
괴물을 창조한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괴물에게 자신의 성(性)을 부여하지 않는다.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공포스러운 네 형국이 추악하기 거지없구나! 아비로부터 호부호형을 허락받지 못한 그것은 단지 조각나고 꿰매진 몸이며 남골당에서 뒹구는 시체 - 들의 총합이다. 또한 죽은 사회의 단편'에 불과한 존재이다. "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 은 자아(프랑켄슈타인)에 의해 창조된 타자(괴물)이면서 동시에 타자로서의 자아'이다. 하지만 적극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프랑켄슈타인(자아)과 괴물(타자)은 서로 " 더블 " 이며 " 도플갱어 " 이다.
랭보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타자다잉~ (Je est un Autre) . 그러니까 "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 이라는 문장에서 조사 < - 의 > 는 소유격이 아니라 동격으로 활용된 셈이다. 타자라는 괴물을 통해서 나의 추악한 욕망을 읽어내는 방식은 <<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1896 >> 에서도 반복된다. 알파벳 y를 i로 전환하면 작가의 숨은 의도가 읽힌다. 지킬(jekyll)이라는 이름은 je + kill 나는 살인한다 1) 으로 해체되고 hyde는 hide로 변환된다. 하이드는 지킬 박사의 욕망이 낳은 또 다른 자아'이다. 괴물은 항상 자신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지킬 박사는 모든 잘못을 타자이자 괴물인 하이드'에게 돌렸지만,
하이드의 추악한 범죄는 지킬 박사의 맬랑꼴리한 패로디'에 불과하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지킬 박사의 하이드는 실재(實在)하지만 부재(不在)하는 존재이며 실재하지 않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실체하는 실제이자 실재이다. 그것이 바로 타자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전복성과 환상성이다. 조르주 바타이유는 << 문학과 악 >> 에서 환상이란 존재하는 것에 대한 불만족을 드러낸다고 지적한 적 있다. 그러니까 드라큘라, 뱀파이어, 괴물이라는 타자는 사회적 억압에 의해 드러나지 않은 욕망이 환상이라는 이름으로 재현된 자아가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사르트르가 타자는 지옥이라고 말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문학의 영역인 " 환상성 " 을 현실 정치 영역으로 치환해 볼까 ? 여왕인 박근혜는 지킬 박사이고 비선 실세인 최순실은 하이드'이다. 그 반대 설정도 가능하다. 두 사람은 분리된 각각의 객체이지만 동시에 분열된 하나의 동일한 주체이기에 이란성 쌍둥이이면서 동시에 일란성 쌍둥이이다. 뗄래야 뗄 수 없는 그들은 젖은 뗄감이 아니라 더블이며, 도플갱어이고, 쌍생아이다. 박근혜는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모두 최순실 탓으로 돌렸지만 그 행위는 누워도 침 뱉는 꼴이다. 박근혜는 내부자'이다. < 그 > 는 히키코모리이며 광장공포증을 앓고 있는 전형적인 은둔형 외톨이'이다. 변기에 대한 강박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새장 속에 갇힌 새는 항상 세상 밖을 그리워하지만 막상 새장 문이 열려도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생활 반경이 평생 새장이라는 공간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는 외부에 대한 욕망을 최순실을 통해 투사한다. 최순실은 내부자인 박근혜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외부자'다. 박근혜는 외부자인 최순실을 통해 배설 욕망을 실현한다. 우리 순실이는 밖에서도 똥을 잘 싸요. 그것은 마치 다이어트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먹방을 보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대리 만족과 비슷한 심리다. 오모모모 ~ 사람이 집이 아닌 공중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똥을 쌀 수도 있다니 신기하구나, 호호.
" 박근혜의 최순실, 혹은 최순실의 박근혜 " 라는 문장에서 격조사 < 의 > 는 누가 누구의 소유격이 아니라 동격으로 활용된다. 박근혜와 최순실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근사한 퀴어영화의 멜로디를 꿈꿨지만 당신의 패러디는 실패로 끝났다. 최순실이 싼 똥은 곧 박근혜가 싼 똥이다 ■
1) je : 프랑스어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