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어마한 꿈을 꿨다



 

 


 

                                                                                                      꿈을 꿨다. 유토피아도 아니고 디스토피아도 아닌 무대. 국무장관이 나와서 연설을 하고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얼굴은 없었다. 그녀는 헌혈을 장려하는 캠페인의 주인공이었다. 

티븨에서도, 담벼락에 붙은 프로파간다 포스터에도 온통 헌혈을 장려하는 새빨간 이미지로 채워졌다. " 당신의 피 한 방울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소망입니다 ! " , " 대한민국은 역사 이래로 외부와 섞이지 않은, 순혈한 피를 자랑하는 민족입니다. 피를 나누어 꽃을 피웁시다 ! " , " 피가 필요한 분에게 소중한 생명을 ! " 티븨에서는 헌혈을 하기 위해 긴 줄을 서 있는 백성을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어디서 많이 본 기시감,  꿈속의 나는 IMF 때 집에 있던 금가락지를 자발적으로 내놓았던 < 금모으기 운동 > 이 생각나서 친구에게 노예 근성 운운하며 < 피모으기 운동 > 이냐며 비아냥거렸다. 순간 친구의 눈빛이 차갑게 변하기 시작했다( F.O

눈을 뜨니 여기는 지하 고문실. 60촉 알전구 하나가 전등갓 아래 마름모꼴 빛을 쏟아내고 있다. 스르륵, 여기저기서 숨을 죽이며 살포시 걷는 발자국 소리-들. 설핏 조명 안으로 다리 하나가 들어온다.  스펙스 ???!  80년대 유행했던 스펙스 신발을 신은 사내.  마름모꼴 조명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 아니 이런 신발,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스펙스 신발이냐 ? " 스펙스 신발을 신은 사내를 보자 << 살인의 추억 >> 에 나오는 송강호가 떠오른다. 스펙스 신발을 신은 사내는 구수한 사투리를 쓰며 내게 말하리라. " 짱똘로 주둥이를 조사부리기 전에 배후가 누군지 불어라잉 ~ "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스펙스 신발을 신은 사내는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is it safe ? " 1) 나는 당황한다, 뜬금없는 " 외래어 " 에 " 얘,뭐래 ? "  스몰한 업타운 상상했는데 글로벌한 다운타운이 무대여서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를 어쩐담. 나는 영어를 할 줄 모르는데......  아임 빠인 땡뀨, 앤드 유 ?                       꿈이란 게 그렇다. 하드보일드 서사에서는 서사가 막힌다 싶으면 총이 등장하면 되지만 꿈에서는 서사가 얽혀서 진행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무작정 장면을 전환하면 되니까. 다음 장면에서 나는 헌혈을 장려했던 여성 국무장관과 싸우고 있었다. 우렁도 아니면서 우렁차게 외쳤다. " 나와라, 시밤바.  시베리아 오호츠크 2년생 멸치 같은 새끼야 ! "

전후맥락이 생략된 채 점프 컷으로 진행된 일이지만 꿈이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 느낌적 느낌 " 이라고나 할까. 알고 보니 국무장관은 흡혈귀 마녀였던 것이다. 그녀가 입을 열자 두 쪽으로 갈라진 뱀의 혓바닥이 꿈틀거리며 튀어나오더니 내 뺨을 세게 친다. 장관이 채찍처럼 휘두른 혓바닥이 내 뺨을 스치자 이내 붉게 물든다. 아따, 시바. 장관이네, 장관 !  조낸 무섭다야.                 불꽃이 튀기고. 어마어마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 전투의 쓰빽따끌한 장관을 말과 글로 생생하게 묘사할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할 뿐이다. 여러분은 지레짐작으로 이 놀라운 쓰빽따끌을 염두에 두시라. 끝내주는 오르가슴이었으니까.

나는 우여곡절 끝에 승리를 거뒀고 꿈은 이것으로 끝났다.   꿈에서 깼을 때, 나는 비로소 어디서 많이 본 그 얼굴이 누구인가를 알아챘다. 그 사람은 박근혜였다. 그 표독스러운 눈깔과 풍성한 후까시와 빛나는 아우라가 그네를 닮았다. 뱀처럼 날름거리며 채찍처럼 휘두르던 검은 혓바닥 !  우리가 그녀에게 빼앗긴 것은 피가 아니라 세금이었던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20차 촛불 집회는 박근혜 탄핵을 염원하는 집회가 아니라 박근혜 탄핵이 인용되어 그것을 기념하는 불꽃놀이 축제'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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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 ( fade-out ) : 시나리오 방송 용어, 영상과 음향이 점점 사라지는 효과 

1) http://myperu.blog.me/20175242960 : 마라톤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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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3-05 14: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이번 주 내에 고대하던 소식이 나오면 좋겠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3-05 14:30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 님이 고대하는 소식을 기대하며 이번 주도 악의 무리를 숙대밭으로. 우리 모두 연대를 ! 이대 모두 술잔을 높이 들고 성대하게 ˝ 건대 ! ˝

samadhi(眞我) 2017-03-06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손가락을 데었는데 아파서 츠으으 크으으 하다가 욕 나오는데 저도 모르게 오호츠크가 튀어나오잖아요. 곰발님 글이 이렇게나 무섭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3-07 07:21   좋아요 0 | URL
오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