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보다는   하드    :







어디선가 당신을 향한 총성이 울리고







                                                                                                       지금은 나이가 들어 하드(hard)보다는 아이스크림(icecream)를 좋아하지만, 한때 부드럽고 물컹거리는 아이스크림보다는 발기된 남근처럼, 아...... 딱딱한 하드'를 좋아했던 적이 있다.

취향이 이렇다 보니 크림한 소설'보다는 하드한 소설'을 좋아했다. 레이몬드 챈들러'였던가 ?  책을 읽는 독자의 눈꺼풀이 무거워질 때 무조건 총을 등장시키라고.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하지 않던가. 독자는 느닷없이 등장한 총을 보고 놀란 가슴에 토끼 눈이 되어 페이지를 후다닥 넘기게 된다. 이런 식으로 총성은 네다섯 번 울리고, 독자는 총 든 자'가 누구인지 궁금하여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는 결(結)를 향해 치닫는다. 그런데 알고 보면 총(을 쏜 자)은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은 독자를 속이기 위한 맥거핀인 경우가 많다.

드라마 < 밀회 > 의 주인공 김희애였다면 우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이거 뭐야, 속았잖아. " 그러니까 하드보일드 소설'에서 총은 참선 중 졸고 있는 중생을 향해 내리치는 죽비이며 졸음을 쫓는 카페인'이다. 하드보일드한 총은 주의를 다른 곳으로 환기시킨다. 총성이 울리는 순간, 모든 시선은 총성이 울린 곳을 향하게 된다. 하지만  그곳은 nothing이며 먼 산이다. 이처럼 총성은 하드한 세계, 그러니까 쮸쮸바를 빠는 세계'에서는 매우 중요한 클리셰'이다. 그렇다고 해서 총을 남발하게 되면 하드의 맛이 떨어지게 된다. 하드보일드 소설에 등장하는 총은 현실에서도 존재한다. " 북풍 " 은 잘한당(자한당 자유한국당 의 줄임말)이 총선이나 대선 때 분위기 반전을 위해 준비한 총성이다.

 

북쪽에서 총성이 울리면 언론은 총의 의미를 확대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이 딱총이건 새총이건 상관 없다. 웃긴 것은 총성은 북쪽에서 울렸는데 스모킹 건'은 남쪽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그때부터 종북 좌익 빨갱이 개호로새끼와 종북 좌익 빨갱이 개호로새끼와 접선한 세력을 집요하게 공격한다. 말레이지아 국제 공항에서 벌어진 김정남 암살 사건'도 위기에 빠진 보수를 구원할, 분위기 반전을 위한 총성'처럼 들린다. 쮸쮸바를 좀 빨아본 사람들(스파이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김정남 암살 사건에서 스모킹 건'을 쥔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숙한 행동을 했는가를 단박에 알 수 있다.

살해범으로 지목된 여성이 김정남을 암살한 후 공항을 빠져나와 공항 택시를 타고 도망쳤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 나는 그녀가 스파이 교육을 전문적으로 받은 인물이 아니며 북한 소행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암살범이 공항 택시를 타고 도망쳤다는 사실은 " 도주로 " 를 준비하지 않았다는 의미인데, 쮸쮸바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암,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스파이는 도주로 확보가 성공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지방 변두리에 있는 새마을 금고를 터는 은행강도도 시동이 걸린 차를 미리 대기시키는 마당에 북한에서 고난이도 스파이 훈련을 교육받은 이들이 택시 타고 도망쳤다 ?! 더군다나 자신이 묵었던 숙소1)에서 내렸다 ??!!

 

김정남을 살해한 배후 세력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북한 스파이의 소행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국제 스파이'가 택시 타고 도망치는 서사는 " 하드(첩보물) " 하기보다는 " 아이스크림(블랙코미디) " 적이다.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등장하는 총성은 첫 번째가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독자는 첫 번째 총성을 흥미진진하게 생각하지만 첫 번째 총성 이후 총성 횟수가 잦으면 잦을수록 나중에는 진부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잘한당의 총성'도 그렇다. 이제 독자는 총선이나 대선 때마다 벌어지는 총성에 심드렁하다. 우리는 " 북한에서 울린 총성 " 보다는 박근혜를 향한 " 당신들의 기이한 충성 " 에 관심이 많다. 내일은 16차 촛불 집회가 예정되어 있다.

 

 

 

 

 

 

 

 

 

덧대기 ㅣ 김정남 암살 사건이 청부 살인이라고 가정했을 때, 핵심은 저격수가 아니라 청부의 주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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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7 12:25   수정 | 삭제 |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2-17 15: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내일 제사가 있어 1부 집회만 참석해야할 것 같네요.. 이제 남은 몇 번 안나가면 가고 싶어도 못갈테니 마지막으로 힘을 모아야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2-17 15:54   좋아요 1 | URL
이제 2번만 가면 되니.. 유종의 마무리를 위해서 저는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굿뉴스 들으니 살 만한 세상이라는 생각도 드네요..ㅎㅎ

cyrus 2017-02-17 1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순실 박근혜 뉴스가 워낙 충격이 커서 그런지 김정남 암살 소식에 무덤덤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2-18 14:00   좋아요 0 | URL
첫 번째 총성보다 두 번째 총성은 효과가 떨어지고, 두 번째 총성은 세 번째 총성보다 효과가 떨어지고...
아마도 김정남이라는 총성은 42번째가 아닐까 싶네요... 효과가 없는 거죠. 일종의 학습 효과라고나 할까요.
이제 북풍은 잘 안 먹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