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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리포트 - 필립 K. 딕 단편집
필립 K. 딕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5년 7월
평점 :
불 안 의 반 대 말 :
마이너리티 리포트
기승전결이라는 오랜 서사의 방식은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부터, 보다 정확하게 기술하자면 2014.04.16일 이후부터, 내 글의 대부분은 기승전朴이 되었다. 나는 모든 잘못을 박근혜 탓으로 돌렸지만 그 사실을 부끄러워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아직 읽지 않은 이 글의 끝을 미리 추론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닭대가리가 아니라면 말이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 아직 발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어떤 근심 " 이기에 항상 미래형 가정법일 수밖에 없다. 이 단어의 반대말은 편안'이 아니라 " 오늘 " 이거나 " 어제 " 이다. 나는 꽤 오랫동안 불안과 싸워야 했다. 그것은 변검의 달인처럼 다른 얼굴로 찾아오곤 했다. 어느 때는 무기력이었고, 어느 때는 대인 기피였고, 또 다른 때에는 공황 장애, 우울증, 불면 따위로 나를 찾아왔다. - 똑, 똑, 똑 ! - 누구세요 ? - 네에, 고객님 ! 제 이름은 불면증입니다아 ~ 이름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불안'이다. 오늘만 생각하는 사람은 내일을 걱정하는 사람보다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
개미보다는 베짱이가 행복하다는 말이다. 누군가 나에게 현대 자본주의의 악덕은 무엇인가_ 라고 묻는다면 " 미래 상황에 대한 불필요한 강요 " 라고 대답하겠다. 자본주의 사회는 상품을 팔기 위해서 소비자에게 아직 발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어떤 근심을 유포한다. 건강 상품이 대표적이다. 자본가는 병적 증후를 과장하거나 겁을 주어서 소비자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래야만 소비자는 지갑을 열기 때문이다. 보다 희망찬 내일을 위해 지금 투자하십시오 ! 교육 상품도 마찬가지'다. 교육 마피아들은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행복하게 뛰노는 꼴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부모에게 아이가 베짱이처럼 놀다가는 또래 아이들의 학습 능력을 따라갈 수 없다고 충고하며 선행 학습을 강요한다. 교육 마피아가 내건 슬로건은 미래 가치에 대한 투자'이다. 말이 좋아 남들보다 앞선 투자이지 나쁜 말로 하자면 걱정을 미리 하는 꼴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교육 마피아의 감언이설에 불안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곰곰 생각하면 " 소비자의 아직 발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어떤 근심 " 을 이용하는 자본의 속성은 광범위한 영역에 퍼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박근혜는 이런 방식의 수작이 매우 능한 인간이다.
통진당 해산 사태가 대표적이다. 통진당 해체는 발생하지 않은 내란에 대한 박근혜식 중대한 법적 조치인 셈이다. 그러니까 통진당 내란 사건을 심리학 용어로 설명하자면 " 박근혜의 자기 실현적 예언 self-fulfilling prophecy 의 결과 " 인 셈이다. 저잣거리 입말로 쉽게 표현하자면 " 내 뜻대로 " 이고 박근혜 어법을 흉내 내자면 " 내가 간절히 원하면 우주의 기운이 도와주는 상황 " 이다. 이 효과를 사회학자인 토마스는 이를 " 상황 정의 definition of the situation " 라고 부른다. 즉, 누군가가 어떤 상황을 진실이라고 정의하면, 그 상황은 결과적으로 진실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박근혜의 자기 실현적 예언은 필립 딕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 마이너리티 리포트 >> 를 떠올리게 만든다.또한 마이너리티(minority)라는 단어의 의미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어 불평등하게 차별 대우를 받는 사람을 지시한다는 점에서 청와대 " 블랙리스트 문건 " 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 마이너리티 리포트 " 인 셈이다. 블랙리스트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원래부터 감시가 필요한 위험 인물이 아니었지만 명단에 이름을 올린 후부터 위험 인물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 또한 상황정의에 따른 자기 실현적 예언의 결과인 셈이다.
대만 감독 차이 밍량은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는 무엇인가 _ 라는 질문에 " 나쁜 영화는 지구의 종말을 걱정하는 영화고, 좋은 영화는 나의 내일을 걱정하는 영화다. 나는 거기에 진리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 고 대답했다. 차이 밍량은 " 나의 내일 " 이라고 표현했지만,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 지금 여기 " 이다. 백 년도 못 사는 인간이 만 년 후를 걱정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의미'이다. 정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 나쁜 정치는 대한민국의 종말을 걱정하고 좋은 정치는 당신 혹은 우리의 오늘'을 걱정한다. 그리고 훌륭한 과학자는 보다 먼 미래를 걱정하지만 훌륭한 정치인이나 종교인은 보다 가까운 당대의 비참에 관심1)을 가진다.
박근혜 탄핵을 반대하는 집회에서 쏟아지는 슬로건을 볼 때마다 오늘 일도 모르는 인간이 쓸 데 없이 천 년 후의 대한민국을 걱정한다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박근혜에게 한마디 하련다. 나랏일 걱정하기보다는 당신 앞일'이라 잘하시라.가장 흥미로운 권투 경기는 도전자가 졌을 때가 아니라 챔피온이 무너졌을 때이며, 보다 극적인 경기는 100전 100승의 챔피온이 무너졌을 때이다. 나는 당신의 쓰빽따끌한, 한방에 훅 가는 그런 몰락을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