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성 가 족 神 聖 家 族 :
언니를 부탁해
이명박 정권은 << 엄마를 부탁해, 2008-10 >> 신드롬으로 시작해서 << 아빠를 부탁해( 7번 방의 비밀, 2012-07 ) >> 신드롬으로 끝났다. 왜 대중은 이 시절에 엄마와 아빠를 호명했을까 ?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비행기가 쌍둥이 빌딩을 향해 돌진했던 9월 11일 이후에 미국에서 불티나게 팔린 상품은 " 콘돔 " 이었다고 한다. 재난 영화가 해체된 가족을 복원하는 장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생뚱맞은 현상은 아니다. 재난 영화 속 괴물은 가족애를 복원시켜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도로와 빌딩을 부수는 역할을 하는 캐릭터이다. 괴물이 인류의 적일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가족애의 친구인 것만은 확실하다. 폐허의 스펙타클이 " 우주적 " 일수록 가족애는 더욱 단단하게 묶인다. 당연히 콘돔도 많이 팔린다. " 여보, 당신의 동굴이 이렇게 깊고 촉촉할 줄은 꿈에도 몰랐소 " " 어머머, 당신의 그것도 8월의 엿처럼 흐물흐물할 줄 알았는데 12월의 엿처럼 단단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어머, 달다 달아 !"
꿈에도 몰랐던 부부는 폐허 위에서 격렬하게 뒹군다. 이처럼 가족 서사가 강조된다는 것은 이미 가족 해체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후이다. 이처럼 대한민국 대중이 엄마와 아빠를 호명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엄마와 아빠가 부재하는 사회라는 점을 보여준다. 정상적인 아빠도 없고 정상적인 엄마도 없다. 대중의 고아 의식, 그러니까 끈 떨어진 신세라는 상실감이 엄마와 아빠를 호명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중이 호명한 대상은 " 아픈 어른 " 이다. 엄마는 우울증에 걸려 집을 나갔고1), 지능이 모자란 아빠는 교도소를 집삼아 생활하고 있다2). 집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정상적 가족 서사는 붕괴된다. 아이를 보살펴야 하는 부모가 건강하지 않으니 아이 또한 건강할 리 없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한다. 아주리쌍쌍국에서 홀홀단신으로 독고다이하기. 이 악물고 괄약근 꽉 조이며, 헬지옥에서 독하게 살아남으리라. 온갖 수모를 겪다 보면 이러려고 이 악물고 살았나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의문이 든다. 이 혈혈(孑孑- 외로울 혈. 외롭고 외롭고 외로운)한 상실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 국민을 " 케어 " 해야 할 국가의 부재'에 있는 것은 아닐까 ? 복지 정책에 투입되어야 할 세금은 몇몇 위정자의 배를 불리는 데 급급하다 보니 이 풍요로운 시대에도 국민은 굶어죽는다.
특정 소수를 향한 대타자(국가이자 부모인)의 편애가 만든 결과이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아이의 미래는 뻔하다. 지난 대선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박근혜를 지지한 심인(心因)에는 동병상련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과부 설움은 홀아비가 안다고 하지 않았던가 ? 엄마를 부탁해로 시작해서 아빠를 부탁해(7번 방의 비밀) 열풍으로 끝났던 문화 신드롬 이면을 꼼꼼하게 살펴보면 앞으로 벌어질 비극적 결과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증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부모 없는 국민은 < 비극적 고아됨 > 을 강조했던 박근혜를 지지했다.
역설적이지만 홀아비가 과부에게 투표를 했다는 점에서 철저한 계급 투표인 셈이다. 하지만 이 동병상련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이 장막을 걷히면서 철저히 부서진다. 박근혜는 고아가 아니라 혈육보다 진한 혈맹으로, 혈맹보다 진한 신앙으로 뭉친 신성가족(神聖家族)의 보살핌 속에서 " 케어 " 받고 있었던 것이다. 저잣거리 입말로 표현하자면 박근혜는 아랫목에 엉덩이 지지며 배터지도록 잘 먹고 잘 살았던 것이다. 신파는 없었다. 박정희는 죽었지만 그 자리를 최태민이 자리잡았고, 박근령-박지만 남매를 버리고 그 자리에 최순득-최순실 자매를 앉혔다. 보다 강력해진 시스터후드의 가족 결속력으로 말이다.
그러니까 박근혜는 고아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이제는 혈혈단신 운운하며 조실부모한 고아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다. 신데렐라 전략이다.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언니와 오빠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래요. 샤바샤바 아이 시발... 세월호 참사 이튿날에도 청와대의 뜻이라며 정유라 입시에 유리하도록 언론에 압력을 가했다는, 이 기괴한 가족에 대한 집착을 보고 있으면 소름이 돋는다. 내 새끼 내가 예쁘다는데 할 말은 없지만 이 과잉의 모성애를 보고 있자니 문득 봉준호 감독의 << 마더 >> 가 연상된다. 한마디로 징그럽다. 징그럽다면 나와라, 12일이다 !
1) 대한민국에서 가족이라는 키워드는 만병통치약'이다. 외로워도 슬퍼도 가족이다. 뭔가 막힌다 싶으면 " 가족이잖아 ! " 라고 말하는 순간 모든 것을 풀린다. 그래서 일일드라마'는 가족 이야기'가 끝날 줄을 모른다. 신경숙의 < 엄마를 부탁해 > 는 이명박 각하 시대의 불행이 엄마를 무시한 죄'라고 은연 중에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가족이 복원된다고 상황은 달라질까 ? 중요한 것은 가족이 아니라 계급이다. 그녀는 그것을 아주 철저하게 무시했다. 가족은 모든 것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이토록 후진 통속극이 순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팔린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한국 문단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이다. 김치 냄새 나는 크리넥스 티슈라는 어느 외국 평론가의 시니컬한 지적은 정확하다.
2) 한국인은 바보가 어눌하게 말하면 감동하고, 일반인이 잘못을 또박또박 지적하면 화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