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와 편집자

만약에 미키 루크가 내 글을 읽는다면 그는 고래도 아니면서 고래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겠지만 미키 루크는 잘생긴 얼굴보다는 망가진 얼굴이 더 잘 어울린다. 잘된 일이다. 몰락이 결국에는 영광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의 연기 인생에서 화룡점정을 찍은 << 더 레슬러 >> 는 망가진 얼굴이 만든 서정의 극점'이다.
그 얼굴은 위스키와 담배, 오욕과 모욕 그리고 주먹질이 만든 작품이었다. 이음매 없는 매끈한 얼굴이 아닌, 꿰맨 얼굴을 볼 때마다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을 읽게 된다. 나는 꿰맨(이음매 있는) 얼굴이 좋다. < 흉터 > 는 세상과의 불화를 시각화한 서사'이다. 그것은 시작은 음각으로 새겨졌으나 끝은 양각으로 남게 되는 기록물이다. 그런 점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창조한 괴물은 숙명적으로 세상과 불화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젊은 미키 루크(이음매 없는 얼굴)가 << 술고래 >> 라는 영화에서 곰보인 찰스 부코스키를 연기했다는 사실은 아니러니하지만 한편으로는 숙명이라는 생각도 든다. 조각 미남이었던 미키 루크는 세월이 흘러 추남인 찰스 부코스키를 닮아갔으니 말이다.
아, 하게 되는 대목이다. 출판사 편집장이 찰스 부코스키에게 전업으로 글을 쓰면 평생 매달 100달러를 지급하겠다고 제안한 일화는 유명하다. 실제로 부코스키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대물을 볼 줄 아는 편집장의 재능이 돋보인 경우'다. 그 편집자가 아니었다면 루저의 제왕이자 신화인 찰스 부코스키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 편집장(자)와 작가는 한 번 인연을 맺으면 끝까지 가는 경우가 많다. 그 작가(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담당 편집장(자)'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자신의 원고를 들여다보고 충고를 하거나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다시 쓰기를 권고할 때 분개해서 화를 내기도 하지만 일정 부분 동의하기도 한다.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는 친애하는 적'이다.
그런데 한국 문단을 보면 인기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여러 출판사로 분산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작가가 신경숙이다. 신경숙은 창비, 문지, 문학동네 출판사에 자신의 작품을 절묘한 황금 분할로 내놓는다. 당연히 담당 편집자와의 끈끈한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3대 대형 출판사에서 애지중지하는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이다보니 출판사에 소속된 편집 위원들은 신랄하게 신경숙을 비판할 수 없다. 비록 이번 신간은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으나 다음 차례는 자사 출판사에서 출간될 확률이 높기에, 출판사 입장에서는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를 비판했다가는 나중에 작가와의 관계 단절이라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삼성이 광고로 신문사를 길들이는 방식과 유사하다(삼성은 자사에 비판적인 기사를 작성한 신문사에 광고를 싣지 않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신경숙이 여러 출판사에 골고루 자기 작품을 배분하는 방식은 일종의 < 우리가 남이가 > 라는 이상한 이름의 뇌물인 셈이다. 비단 신경숙만의 수작은 아니다. 한국 문학의 질적 저하는 소설가의 수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천명관이 " 선생님 " 이라고 지적한 문단 마피아의 횡포에 있다. 신춘문예 심사위원, 문예지 편집 위원, 문창과 교수. 등단 제도를 권력으로 사용하는 그들이 바로 천명관이 말하는 " 선생님 " 이다. 천명관이 지적했듯이 등단 제도는 일본과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이다. 문학 강국들은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며 응원하는 역할을 문단 어르신들이 아니라 문학 에이젠트나 출판사 편집장이 한다.
미국이 한국의 등단 제도를 도입했다면 찰스 부코스키 같은 작가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문학을 썪게 만드는 주범은 선생님들이다. 이음매 없는 매끈한 얼굴로 평론가 행세를 하며 지도편달이라는 고상한 이름으로 행하는 " 야로 " 를 놓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역겹다는 생각이 든다. 천명관의 말투를 흉내 내자면 이렇게 말하겠다. "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불편함을 느꼈다면 그가 바로 문단 마피아의 일원이거나 패밀리와 커넥션을 갖고 있는 작자일 것이다. 패거리를 짓고 조직을 만들어 권력자로 군림하려는 그런 새끼 말이다. " 문단 어르신 특유의 허옇고 매끈한 얼굴을 볼 때마다 흉터투성이 얼굴을 한 불굴의 얼굴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