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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말리온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76
조지 버나드 쇼 지음, 김소임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6월
평점 :
발 연 기 의 재 발 견 :
나는 바닥을 보는
재미 때문에 뮤지컬 영화를 본다
호러와 고어를 포함한 B급 영화를 좋아하는 내가 뮤지컬 영화도 좋아한다고 고백하면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짓곤 한다. 내가 아크로바틱한 슬랩스틱 코미디와 뮤지컬을 좋아하는 데에는 영화의 속성에 가장 충실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슬랩스틱과 뮤지컬 영화가 자막 없이도 내러티브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는 이유는 비언어적 표현에 속하는 배우의 몸짓이 언어를 대체한다는 데 있다. 특히, 뮤지컬 영화에서 배우의 동선은 내러티브와 심리 상태를 훌륭하게 재현한다. 그렇다, 뮤지컬 장르는 당신에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뮤지컬 배우의 발걸음만 놓고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기분 좋을 때 걷는 발걸음, 슬플 때 걷는 발걸음, 화가 날 때 걷는 발걸음은 물론이고 발소리의 강약과 걸음 폭도 제각각 다르다. 스릴러 장르가 클로즈업된 얼굴'에 바치는 오마주라면 뮤지컬은 발끝의 소리와 형태에 바치는 오마주다.
좋은 뮤지컬 영화와 배우는 보다 다양한 발걸음과 발소리를 선보인다. 나는 바닥을 보는 재미 때문에 뮤지컬을 본다. 지금까지 수많은 배우의 발 재주를 보았지만 가장 탁월한 발 연기한 배우는 진 켈리와 도널드 오코너였다. 그들은 감정에 따라 제각각 다른 스탭을 보여준다. 그들은 폴짝과 팔짝의 섬세한 차이를 탁월하게 연기했을 뿐만 아니라 촐싹의 느낌도 재현할 수 아는 예술가였다. 니체도 발소리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정직한 사람이라면 걸어갈 때 발소리가 나는 법이다. 그러나 고양이는 대지 위를 살금살금 돌아다닌다. 보라, 달이 고양이처럼 다가온다. 정직하지 못하게.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바닥을 보는 재미로 뮤지컬은 본다. 조지 쿠커 감독이 연출한 << 마이 페어 레이디, My Fair Lady, 1964>> 는 황홀한 바닥을 보여주는 뮤지컬은 아니지만, 조지 버나드 쇼의 원작 < 피그말리온, 1913 > 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내러티브와 오드리 햅번의 눈부신 아름다움만으로도 정신줄 놓고 보게 되는 영화'다. 오드리 햅번은 아무리 보아도 지상의 피조물은 아닌 듯하다. 천상의 피조물을 보는 듯하다. 우선 네이버 영화에서 제공하는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언어학자인 헨리 히긴스 교수(Professor Henry Higgins: 렉스 해리슨 분)가 그의 절친한 친구인 피커링 대령(Colonel Hugh Pickering: 윌프리드 하이드-화이트 분)과 묘한 내기를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즉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하층 계급의 여인을 한 명 데려와 정해진 기간 안에 그녀를 교육시켜 우아하고 세련된 귀부인으로 만들어 놓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이 내기의 실험 대상으로 선택된 여인이 바로 빈민가 출신으로 꽃을 파는 부랑녀 일라이자 두리틀(Eliza Doolittle: 오드리 헵번 분)이다. 그녀는 히긴스 교수로부터 끊임없는 개인 교습을 받게 되는데, 그녀 자신은 이 교육을 하나의 고문으로 받아들인다. 마침내 히긴스 교수가 요구하는 중심 문장 "스페인에서 비는 평야에만 내린다(The Rain-In Spain-Stays-Mainly In The Plain)"를 유창하게 구사하게 된다. 이제 그녀에게서는 더 이상 투박한 런던 말씨와 촌스런 액센트를 들을 수 없게 되고, 결국 히긴스 교수의 이상적인 여인상으로 변한 엘리자가 그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이 영화 줄거리를 읽고 나서 아, 하는 독자가 많으리라 짐작된다. 명절 특집 영화로 자주 방영되었던 영화였으니 말이다. 10년 전에 보았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눈에 거슬리는 대목이 있다. 영화 << 마이 페어 레이디 >> 와 << 귀여운 여인, 1990 >> 는 서로 닮았다. 영화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이 << 귀여운 여인 >> 에 대하여 " 과시적인 소비와 마주쳤을 때 어떻게 '똑바로' 행동할 것인지에 대한 불안함을 보여주는 " 영화라고 비판한 대목1)은 고스란히 << 마이 페어 레이디 >> 에도 적용된다. 관객은 빈민가 출신으로 거리에서 꽃을 팔았던 부랑녀 일라이자 두리틀이 혹독한 음성 교정 수업을 거쳐
왕실의 무도회에 성공적으로 입성하게 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데 영화는 상당 부분 하층민이 과시적 소비(왕실 무도회, 경마장, 살롱)와 만났을 때 벌어지는 트러블을 재미있게 소비한다. 이 영화가 윤리적, 정치적으로 비판받아야 할 대목이다. 하지만 원작의 결말은 영화와는 전혀 다르다. 조지 버나드 쇼는 조물주인 남자(헨리 히긴스)에게 포섭되는 여성이 아니라 남자에게서 독립하는 여성으로 그린다. 조물주에게서 벗어나 독립된 여성으로 살아가겠다는 일라이자 두리틀의 당당한 선포는 호쾌하며 윤리적으로 온당하다. 조지 버나드 쇼는 신데렐라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정반대의 신데렐라 이야기로 끝을 맺은 것이다.
끝으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더하자면 원작의 결말을 비틀어버린 남성 중심 서사가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뮤지컬을 보는 재미는 충분하다. 뮤지컬을 재미있게 감상하는 방법 중 하나는 바닥을 보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뮤지컬 영화 << 마이 페어 레이디 >> 는 뮤지컬 전문 배우가 출연해서 화려한 바닥(발 재주)을 선보이는 영화는 아니지만 광장에서 꽃을 파는 부랑녀를 연기하는 오드리 햅번의 바닥 생활을 보는 재미는 충분하다. 뮤지컬 영화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바닥을 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사랑에 빠진 연인은 권태에 빠진 부부의 걸음보다 느리다.
오래 전 일이다. 그녀와 걷다가 그녀의 걸음이 평상시보다 빨라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내 걸음이 평상시보다 빨라져 보조를 맞추느라 그녀의 걸음이 빨라진 것인지도.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나는 그녀와 헤어졌다 ■
1) 영화의 진짜 초점은 섹스도, 돈도 아니라 사실은 비비안이 거리에서 일하다가 에드워드의 호텔에 들어갔을 때 느끼는 경외심과 계급적 불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 관객도 공유하게 되는 감정인데 우리는 그녀가 호텔 로비에 들어설 때 " 와우 " 하고 놀라게 되고 에드워드의 펜트하우스의 스위트 룸에 가면 더 이상 말을 못할 정도가 된다. 샴페인을 딸기와 함께 먹고, 로데오 드라이브의 가게 간판과 윈도의 디스플레이, 고급 레스토랑, 거기다 개인 비행기로 샌프란시스코로 오페라를 보러가는 것 등은 너무도 대단한 체험이어서 우리는 혹시 이러한 성스러운 특권에 대해 뭔가 " 잘못 행동하는 것 " 은 아닐까 하고 불안해 할 정도이다. 실제로 이러한 경우에 비비안이 잘못 행동하는 것이 영화에서 웃음을 끌어내고 있다. 딸기를 먹지도 않고 샴페인을 한 번에 들이켜 버린 것, 로데오 드라이브의 고급 부티크에서 망신을 당하지만 다시 그것을 복수하는 것, 고급식당에서 포크 사용법을 몰라 사고를 일이킨 것, 오페라를 보고 나서 " 너무 재미있어서 오줌을 지릴 정도였다 " 고 한 것 등
- 에센셜 시네마 430 , < 육욕과 돈 > 프리티 우먼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