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간에 잡담
1. 시간 여행을 다룬 작품은 대부분 "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 이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 이 서사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서사'가 실패해야만 가능하다. 성공한(행복한) 사람은 " 지금 여기에 " 만족하기에 " 경계 너머 " 인 시간 여행을 하지 않는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만이 과거로 도피하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공황, 망상, 근심, 히스테리 따위)에 시달린다. 불안이란 기본적으로 발생하지 않은 사건에 대한 심리적 투사이다.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은 미래의 어느 지점에서 자신이 겪을 비극을 들여다본다. 그것은 마치 크리스마스 전야에 스쿠르지 영감이 자신의 미래를 들여다보는 장면과 같다. 찰스 디킨즈 소설 << 크리스마스 캐럴 >> 에서 스쿠루지 영감은 과거 유령, 현재 유령, 미래 유령과 동행하며 시간 여행을 하게 되는데, 그는 이 여행을 통해서 자신의 현재 삶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시간 여행은 비단 SF적 상상력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실패한 사랑을 다룬 멜로 드라마'도 시간 여행 서사의 변주로 작용하기도 한다. 영화 << 파이란 >> 은 멜로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다룬다. 이강재라는 사내 입장에서 보면 파이란이 남긴 편지는 너무 늦게 도착한 편지이자 죽은 자의 편지라는 점에서 유령이다. 이 유령은 3류 건달 이강재를 이끌고 파이란이 살았던 과거의 흔적을 보여준다. 이 과정을 통해서 이강재는 자신의 현재 삶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연출한 << 길 >> 도 마찬가지'다. 무쇠 같은 남자 짐파노는 젤소미나의 노래를 통해 과거를 회상하게 된다. 이강재와 짐파노가 후회하는 지점은 명확하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처럼 실패한 연애담은 후회를 동반한 소망을 다룬다.
2. 존 윌리엄스 소설 << 스토너 >> 는 " 야망이 없는 남자 " 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많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스토너의 삶을 < 실패 > 로 규정했다는 사실에 의아했다. 평범한 사람들은 대부분 작은 소망을 가질 뿐 큰 야망을 꿈꾸지는 않는다. 나는 커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는 부모에게 빌붙어 살아야 하는 어린 시절의 설레발일 뿐이다. 스토너가 야망이 없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스토너를 비범한 인물 범주에 놓는 오류를 범한다. 스토너와 나폴레옹을 혼동하면 안 된다. 그는 나폴레옹과는 달리("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불가능성에 대해 순응하는 인물이다. 불가능한 것을 억지로 가능하게 만들거나 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치는 것은 대부분 독재자의 목소리'다. 불가능한 것은 불가능한 상태로, 할 수 없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 스토너의 윤리적 태도다.
3. 셰익스피어 비극 << 리어왕 >> 을 읽다 보면 추석 특선 단막극 같은 줄거리에 당황하게 된다. 아버지의 재산을 노린 두 딸(첫째,둘째)은 온갖 감언으로 환심을 사 재산을 빼앗은 후 늙은 아버지에 대한 부양을 거부한다는 내용이니 말이다. 추석 명절에 농사 짓는 부모의 땅을 노리고 온갖 감언으로 환심을 사려고 모여드는 가족을 다룬 단막극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추석에 온가족이 모여 이런 종류의 단막극을 보고 있으면 모두 다 한마디 한다. " 저 가족 막장이네, 막장 ! " 우리는 항상 막장 드라마를 욕하지만 사실 셰익스피어야말로 막장 드라마의 아버지'다. 사실 고전 중에는 막장이 많다. 대표적인 작품이 << 오이디푸스 >> 이다. 이 작품은 근친상간을 다룬다. << 백설공주 >> 도 동화라는 이름을 빌렸을 뿐 내용을 보면 막장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막장을 좋아한다. 이야기의 본질은 막장이다. 그렇기에 막장이라고 해서 모두 다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4. 수많은 드라큘라 영화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영화는 무르나우 감독이 연출한 << 노스페라투,1922 >> 이다. 고전 무성 영화를 선정해서 나의 과시적 교양을 뽐내려는, 계산된 수작에서 비롯된 결정은 아니다. 정말, 이 영화는 끝내주는 뱀파이어 영화'다. 모든 면에서 << 노스페라투 >> 는 << 노스페라투 >> 이후의 영화를 압도한다.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이 연출한 << 노스페라투, 1979 >> 도 훌륭하긴 하지만 비교 대상은 아니다. 이 영화를 빛나게 하는 주요 원인은 조형의 순수성과 더불어 노스페라투를 연기한 맥스 슈렉이라는 배우의 아우라가 차지하는 몫이 크다. 압도적인 비주얼은 신화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어서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이 무성 영화에 사운드를 입힌 블루레이가 출시되었지만 이보다 멍청한 기획은 없는 듯하다. 이 영화는 사운드 없이 무성으로 감상해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 노스페라투, 1922
무엇보다도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는 인간적이다. 그는 자신이 누울 관을 직접 들고 다닌다. 프랑코 모레티는 드라큘라를 자본(가) 상징'으로 읽었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불가촉천민처럼 보인다. 지상의 방 한 칸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현대판 하우스푸어 같기도 하다. 설핏, 웃음이 나는 대목이지만 이 어설픈 설정이 마음에 든다. 노스페라투, 무시무시한 걸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