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물러설 수 없음, 벼랑



 

메두사, 광부의 딸



                                                                                                                                                               막장 드라마는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는, 혹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을 설정한 후 끝까지 몰아부친다. 설정이 자극적이며 극단적이다 보니 개연성이 없고 황당하며 억지스럽다. 막장 서사의 으뜸은 << 햄릿 >> 이다.

관객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하다. 쉴 틈 없이 등장인물이 죽어나가기 때문이다. 선왕을 필두로 플로니어스 재상도 죽고, 오필리어 공주도 죽고, 거투르드 왕비도 죽고, 클로디어스 왕도 죽고, 레어티즈도 죽고, 결국에는 햄릿도 죽는다. 무대 위에 오른 주요 등장 인물이 모두 죽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 햄릿 >> 은 무대 위에 오를 배우들이 없어서 중단된 연극이다. << 햄릿 >> 은 기승전결/起承轉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승 起承 혹은 기승전 起承轉 에서 막을 내려,  結 없이 끝나는 이상한 연극이다. 셰익스피어는 관객들이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려고 등장인물을 연쇄적으로 죽인 것이다. 마치 10대를 겨냥한 슬래셔 무비 - 서사'처럼 말이다.

<< 햄릿 >> 은 최초의 슬래셔 문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햄릿 >> 이 막장이 아닌 걸작일 수밖에 없는 데에는 연쇄적 죽음이 필연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이 필연이 될 때 그것은 비극이 된다. 막장이란 탄광굴의 끝을 의미한다. 탄광 입구에서 가장 깊숙한 곳이 막장'이다. 이곳은 갱도가 제대로 만들어진 상태가 아니기에 그만큼 위험하며 그만큼  품삯도 높지만 돈이 궁한 광부는 갈 데까지 갈 수밖에 없다. 갈 데까지 간다는 점에서 막장은 섹스 행위와 동일하다. 섹스란 월경이다. 사회적 거리를 좁혀 내부로 침투하는 것이 섹스다. 뜨겁고 검은 구멍 속에서 화려한 궁을 발견하는 것, 더워서 땀이 나고, 호흡이 가쁘다는 점에서 막장 속 광부와 침대에서 사랑을 나누는 사람은 동일하다.

프로이트가 관능(에로스)와 죽음(타나토스)는 함께 한다고 했을 때, 서로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영역의 합일은 < 막장 > 이라는 비소성(非所性)에서 찾을 수 있다. " 우리는 많은 동물이 산란을 하거나 짝짓기를 하는 순간에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무엇이 끝난 것이다. 가장 강렬하게 사랑할 때 무엇이 끝난다 2) ". 그렇기에 " 사랑은 나의 행복이자 나의 불행이며, 사랑은 나의 천국이자 나의 지옥3)" 이 된다. 이처럼 여성의 갱도'는 愛와 死가 공존하는 텅 빈 기호'이다. 그런 점에서 메두사는 나르시소스 신화와 닮았다. 나르시소스 신화에서 서사를 작동시키는 주요 감각은 < 본다 > 는 행위이다. 마찬가지로 메두사 신화가 가지고 있는 본질도 < 본다는 행위 > 에 있다.

지난 글에서도 지적했듯이 메두사는 여성 성기에 대한 은유이다. 50마리의 뱀은 거웃이고 얼굴은 여성 성기'이다. 나르시소스가 물 위에 반사된 자신의 얼굴을 봤다면, 메두사는 방패에 반사된 자신의 얼굴을 본다. 전자가 자기애에 의한 죽음이라면 후자는 자기 혐오에 의한 죽음인 셈이다. 정신의학에서 자기애와 자기혐오를 동일한 감정으로 보는 이유이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은 역설적으로 자기 혐오에 빠지기 쉽다.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한통속이듯이 나르시소스와 메두사 또한 한통속이다. 공포가 아름다움의 첫 번째 현존이다(플라톤) !  나향욱이 민중은 개·돼지라며 자신은 1%에 소속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라고 소개했을 때, 나는 속으로 웃었다. 아무리 화려한 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당신이나 나나 막장 인생인 셈이다.

인간은 모두 막장에서 석탄을 캐야 하는 광부에 지나지 않는다. 쾌락에는 죽음이 내포되어 있다. 쾌락을 탐닉할수록 위험도 그만큼 높아진다. 그것이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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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6-07-15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고 나니, 생각해 볼 흥미로운 주제가 떠올랐습니다.

제 글을 통해 아시겠지만, 저는 대칭성의 파괴에 의한 대립적 대칭성으로 해석하는 것을 즐겨합니다.

자기애와 자기 혐오의 대립적 대칭은 (우월감과 열등감이 동전의 앞뒷면이듯) 쉽게 이해가 되는데, 자긍심의 대립적 대칭에 뭐가 있을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5 11:11   좋아요 1 | URL
글쎄요.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군요.
문득 플라톤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공포가 아름다움의 첫 번째 현존이다 !

소조 2016-07-15 12:4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역시 마립간님. 책 사는 것만큼이나 마립간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알라딘을 이용하는 이유..

마립간 2016-07-15 14:13   좋아요 0 | URL
소조 님, 칭찬 말씀 감사합니다. 과찬입니다.

yureka01 2016-07-15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애와 자기혐오는 같다..캬오..그러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