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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의 열 가지 얼굴 ㅣ 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이재현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3년 2월
평점 :
내가 서울이라는 도시로 보이니 ? :
공포 특급 : 오세훈과 도시

내가 공포 영화를 즐겨 보기 시작한 동기는 " 매우 " 불손했다. VHS 시절, 비디오 대여점에서는 신간 대여료가 2000원이었던 반면에 신간을 제외한 공포 영화는 대여료가 1000원에 세 개'였다. 무엇보다도 신간은 대여 기간이 1박'이어서 한 번에 서너 개씩 빌렸던 나는 대여료보다 비싼 연체료를 내거나 보지도 못하고 반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에 반해 신간을 제외한 공포 영화는 대여 기간이 무려 열흘이었다. 말이 열흘이지 열흘을 넘겨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부터 대여점 한쪽 구석에 먼지 쌓인 채 방치된 공포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선택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다. 진열장에 나열된 순서대로 3개씩 뽑아서 집으로 모셨다. 처음 세 편을 보고 나자 비디오 대여점 주인이 왜 공포 영화를 박리다매로 대여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한 마디로 그, 지, 같,(았), 다. 그럴 때마다 나는 SF 작가 테어도어 스터젼이 했던 말을 상기하며 스스로 자위했다. " SF의 90%는 쓰레기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의 90%도 쓰레기다. " 나는 쇼파에 앉아서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내가 고른 작품은 공교롭게도 90%에 해당되는 작품이었을 거야. 9편까지는 정말 쓰레기'였다. 드디어 10번 째 관람.
쓰레기'였다. 뭐냐 ? 이 어처구니없는 확률은. 모난 돌에 정 든다는 속담이 있다. 그 사이 나는 싸구려 공포 영화와 정이 든 모양이었다. 참고 견디는 순간이 오더니 어느덧 그 세계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1년 동안 공포 영화를 집중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아 ! 무릎 탁 치고 아아, 했다. 영화 모임에서 사람들이 공포 영화 장르를 조롱할 때마다 나는 괄약근에 힘을 주며 말했다. " 공포 영화,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군가를 위해 피 흘린 적 있는냐 ? " 범죄 영화를 포함한 공포 영화 장르는 < 곳 > 에 대한 이야기'다.
범죄 영화(미스테리,스릴러 장르)는 " 그곳에 있었느냐 ? " 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장르이고 공포 영화는 " 왜 그곳에 갔는가 ? " 고 탓하는 장르이다. 공포를 다룬다는 측면에서 성격이 비슷한 두 장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 알리바이 " 다. 알리바이'는 alius ( 다른 ) + ibi ( 거기에 ) 를 합친 것으로 " 다른 + 곳에 " 라는 뜻이다. 그러니깐 용의자가 살인이 일어난 곳'에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알리바이'다. 현장부재증명/現場不在證明'은 곧 타소존재증명/ 他所存在證明'을 의미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 A 라는 곳에 내가 없었음(부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B 라는 곳에 내가 있었음(존재)를 증명 " 하면 된다.
예를 들어 종로에서 사건이 발생했다고 했을 때 같은 시간대에 영등포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면 알리바이는 성립되는 것이다. 형사가 당신에게 묻는 것은 범죄 현장이 아니다. 반면, 공포 영화는 가지 말라고 수없이 경고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곳에 간 희생자를 탓하는 장르'다. 거봐, 가지 말라고 했잖아 ? 아닌게 아니라, 관객인 우리는 영화 속 희생자가 소리 나는 벽장문을 열려고 다가갈 때(혹은 지하실 문을 열고 내려가려고 할 때) 동시다발로 소리친다. " 왜 거기를 가냐고요, 가지 말라니까요 !!!!!! " 공포 영화 대여료에 투자한 돈이 얼추 2,3만 원이 되자 내 눈에 < 장소성 > 이라는 철학적 개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정도 비용을 투자하고 철학적 개념 하나를 얻으면 훌륭한 가성비가 아닐까. 누가 공포 영화나 범죄 영화를 하위 장르라고 흉보는가 ! 내가 < 거기(곳) > 를 크게 장소와 공간으로 분류했다면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는 장소와 대비되는 곳으로 공간 대신 "비장소(non-places)" 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인다. 그가 말하는 비장소는 " 전통적인 장소의 요건인 관계성, 역사성, 정체성을 갖지 못하는 그런 곳을 의미한다 "1). 즉, 사회적 맥락이 끊긴 곳이 바로 비장소'인 셈이다. 그가 내린 정의에 의하면 모텔, 기차역 대합실, 미술관뿐만 아니라 SNS라는 공간도 비장소인 셈이다. 도표로 작성하면 다음과 같다.
비장소 | 장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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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 transit의 실재물 (임시수용소, 환승객) | 주거 residence 또는 거주의 실재물 |
나들목 interchange (아무도 다른 사람의 길에 끼어들지 않음) | 교차로 crossroads (사람들이 서로 만남) |
여행객 passenger (종착지가 있음) | 여행자 traveller (자기의 길을 걸어감) |
거주지역 housing estate (더불어 살지 않으며 어떤 곳의 중심도 아님) | 유적지 monument (사람들이 공유하고 기념함) |
커뮤니케이션 communication (코드, 이미지, 전략과 결부됨) | 언어 language (입으로 말을 함) |
* 출처 : 오제(Augé, 1995), pp.107~108에서 재구성.
[네이버 지식백과] 비장소로서의 SNS (SNS의 열 가지 얼굴, 2013. 2. 25., 커뮤니케이션북스)
공포 영화는 대부분 마르크 오제가 명명한 " 비장소 " 에서 이루어진다. << 13일 밤의 금요일 >> 에 등장하는 청소년 캠프장은 환승의 실재물에 해당된다. 그곳은 잠시 머물다 떠나는 임시수용소이자 환승객이다. 슬래셔 무비 속 희생자는 대부분 여행객들이다.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현실 세계에서 강호순을 비롯한 수많은 범죄자들이 시체를 즐겨 은닉하는 장소로 나들목을 선택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맥락이 끊긴 곳은 위험하다. 내가 오세훈의 디자인 서울 정책을 비판하는 대목은 그가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 장소 > 를 < 비장소 > 로 리모델링한다는 데 있다.
리모델링한다는 의미는 " 장소의 역사성 " 을 빠르게 삭제한다는 뜻이다. 오세훈은 맛집이 몰려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랜 역사의 흔적이 있는 골목에 대한 향수 때문에 사람들이 피맛골에 간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는 " 장소는 사랑이지만 공간은 공포 " 로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철학이 부재한 탓이다. 서울은 600년이나 된 도시이지만 이젠 그 흔적도 없다. 600년은 고사하고 5년 전 단골 분식점을 찾기도 힘들다. 서울은 빠르게 탈역사화된 공간으로 변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2)가 서울을 두고 "600년 된 도시라는데 마치 30년 된 신도시처럼 느껴진다 " 고 말한 맥락도 서울이 비장소'라는 지적일 것이다.
서울에 사는 사람은 서울에 대한 애착이 없다. 애착이라는 것은 과거에 대한 향수 혹은 기억인데 과연 기억할 만한 장소가 남아 있나 의문이다. 기억이 삭제되었으니 서울 사람들은 기껏해야 맛집 정보만 내놓게 된다.

어디에나 있고 아무 데도 없다
다시 공포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자. 내가 空間3)으로 인식하고 마르크 오제가 비장소로 명명한 곳은 더불어 살지 않으며 어떤 곳의 중심도 아닌 곳이다. 그곳은 맥락이 끊긴 곳이요, 속이 빈 공간'이다. 홍대 정문에 세워졌다가 부서진 일베 조각상 제목이 < 어디에나 있고 아무 데도 없다 > 라는 것은 " 어디 " 와 " 데 " 가 모두 < 곳 > 을 지시하는 단어라는 점에서 일베의 비장소성을 지시한다. 그들은 익명성 속에 숨은 여행객이며 일베 사이트는 임시저장소이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귀신이 영토를 점령한 후 소유권을 주장하기 좋은 곳이다. 좀비의 불모지인 충무로에서 << 곡성 >> 과 << 부산행 >> 4)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한국 사회가 빠르게 비장소로 변모했다는 불안 심리가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1) SNS의 열 가지 얼굴, 김재현
2) 오래된 미래의 저자
3) 공간은 한자 구성대로 틈이 벌어지고 텅 빈 곳을 의미한다. 空빌 공 + 間사이 간
4) 영화 < 부산행 > 은 개봉 전부터 화제다. 예고편 조회수가 500만을 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