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강요하는 사회
하나. 외국에서 살다 왔다는 데 지나치게 오리지날 토종 한국어 발음을 구사해서 의심스러운 친구'가 있었다(정확히 어디에서 왔는지는 잊어버렸으나 진돗개 만한 도마뱀과 놀았다는 말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도마뱀이 아니라 이구아나인 것 같다. 이구아나가 도마뱀인가?!).
한국어는 물론 영어 발음도 뭔가 토종 냄새'가 났다. 아빠 따라 외국에서 오래 살았다는 놈이 " 반기문 - 잉글리쉬 " 를 하고 있으니 의심스러울 수밖에. 차라리 " (송)성문 - 잉글리쉬 " 를 배운 놈의 발음이 더 < 잉글잉글 > 했다. 너 외국에서 살다가 온 놈 맞냐 ? 우리가 외국에서 온 녀석'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그 녀석의 혓바닥이 아니라 손바닥에 있었다. 그는 수업 시간에 궁금증이 생기면 가차없이 손을 들고 질문을 던졌다. " 슨상님, 쪼까 질문이 있는데요 ! " 이 낯선 풍경. 그리고 이구동성. " 저 녀석, 외국에서 살다 온 놈 맞네 ! " 질문에 대처하는 선생의 자세도 꽤나 인상적이었다.
" 질문은 수업 끝나고 해라. 수업 방해하지 말고....... "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처음 목격한 해'였다. 둘. 강의를 마치면 교수는 짧은 질문을 던진다. " 질문 ? " 질문하는 학생이 없으면 교수는 또 짧게 되묻는다. " (질문) 없어? " 조용 ~ " (수업) 그만 ! " 한국 사회가 질문하지 않는 사회가 된 지는 이미 오래. < 질문하는 방식을 배우지 못한 학생 > 이라는 프레임보다는 < 질문하는 방식을 가르치지 않은 선생 > 이라는 프레임이 더 선명한 틀'이다. 한국 사회는 사회 구성원에게 침묵을 강요한다. 선생은 학생에게 질문하는 방식을 가르치지 않고, 기득권은 노동자에게 묵묵히 일만 하는 노동자상을 요구한다.
또한 남자는 말이 많은 여성을 < 칠거지악 > 가운데 하나로 규정한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니 북어와 마누라는 삼 일에 한 번씩 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뿐이 아니다. 강도는 소리 지르면 죽인다고 협박하고 강간범은 가만히 있으면 목숨은 살려준다고 협박한다. 이래저래, 권력 피라미드 구조에서 상위 포식자(피억압자)는 하위 포식자(억압자)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하위 포식자(남성) 또한 자신보다 더 낮은 최하위 포식자(여성)에게 침묵을 강요한다. 먹고 먹히는 관계.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구조가 침묵의 카르텔'이다.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힘은 바로 침묵이다.
침묵은 약자의 굴종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강자'가 휘두르는 무기이기도 하다. 하수는 상대를 큰소리로 협박하고, 넘버3는 상대를 부드럽게 협박하고, 넘버2는 상대를 손짓으로 협박하며, 넘버원은 눈짓으로 상대를 겁박한다. 이처럼 침묵은 약함의 징표이면서 동시에 강함의 표시'이다. 그 결정체는 바로 세월호 침몰 사건'이었다. 승객의 생명을 자신보다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켜야 할 승무원들이 승객에게 명령한 것은 가만히 있어라, 라는 명령이었다. 질문은 한자로 본질 質에 물을 問으로 구성된 말이다. 본질에 대한 물음이 질문인 셈이다. 세월호 침몰 사건이 우리에게 준 교훈은 질문하는 방식을 배우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구의역 포스트잇 시위와 강남역 포스트잇 시위는 세월호의 침몰이 침묵에 대한 강요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선행 학습한 결과'다. 그들은 편안한 침묵보다는 불편한 외침2)을 선택했다. 침묵하면 죽는다는 것, 어떻게 해서라도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 꾹꾹 눌러 쓴 글씨가 어쩌면 침묵을 강요하는 주먹과 맞서 싸울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한 것이다. 침묵은 금이 아니다. 은도 아니다. 더더군다나 침묵을 통치 수단으로 활용했던 한국 사회'라면 침묵은 동이 아니라 똥이다. 이제 질문을 던지자. 왜 그러셨어요, 네에 ? 질문은 어떤 식으로든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물음이다 ■
1) 이구아나가 도마뱀인가?! 헷갈린다.
2) 편안한 침묵보다는 불편한 외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