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품격 





                                                                                   

                                                                                                     검색창에 분골쇄신(粉骨碎身)이라는 사자성어를 입력하고 뉴스를 검색하면 대부분 거대 조직 밑에서 기득권을 행사하는, 혹은 부패한 조직의 무리'가 영혼 없이 내뱉는 상투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일파만파 " 라는 사자성어가 없었다면 조선일보는 조선 쪽파 신세가 되지 않았을까_ 라는 군걱정을 한 적이 있었는데,  " 분골쇄신 " 도 부패한 권력 집단'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사자성어'라는 생각이 든다.  

粉骨碎身 ㅡ 뼈를 가루로 만들고 몸을 부순다는 뜻으로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다짐'이다. 여기에 뼈를 바꿔 끼우고 남의 (아기) 태를 빼앗아 뒤집어쓰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 환골탈태(換骨奪胎) " 라는 말을 곁들이면 그로테스크하며 호호호, 호러블한 결기'가 엿보인다.  " 분골쇄신의 마음으로 환골탈태하겠습니다 ! "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 한국 사회에서 최상위 리더들이 즐겨쓰는 표현이다.  또한 언론이 사설이나 논평을 통해 정치권에 변화를 주문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기도 하다.  남성 문화가 강한 조직일 수록 이런 " 막가파 언어1) " 를 즐겨 사용한다.

이 독한 표현 앞에서 아아, 하게 된다.  뼈를 가루로 만든다고 하질 않나, 뼈를 바꿔 끼우겠다고 하질 않나, 몸을 부수겠다고 하질 않나, 아기 태를 뒤집어쓰겠다고 하질 않나.......  자해공갈단이나 정육점 발골사'가 작성한 작업 일지 같다.  살벌한 표현이다.  이처럼 허세 작렬하는 최상위 불알후드(brotherhood)의 카니발적 폭력성 앞에서는 할 말을 잊게 만든다.  더군다나 아기 태'를 빼앗아 뒤집어쓰겠다는 굳은 다짐에는 영화 << 텍사스 전기 톱 살인마 >> 에 나오는 살인마의 모습이 보인다.  얼굴 가죽을 벗겨 뒤집어쓰고는 전기톱으로 사람을 죽이는 레더페이스(leather face) !  

내뱉는 말이 그 사람의 품격을 드러낸다는 점을 감안하면 분골쇄신과 환골탈태를 즐겨 사용하는, 살벌한 입말의 장관'을 엿볼 수 있다.  열 아홉살 청년이 안전문과 전철 사이에 끼여서 몸이 분골(粉骨)되고 쇄신(碎身)되는 사건2)이 발생했다.  분골되고 쇄신되는 고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통증이 몰려오는데 열 아홉 청년은 얼마나 아팠을까 _ 라는 생각을 하면 숙연해진다.  정작 분골쇄신해야 될 대상은 따로 있는데_  라는 독한 생각도 든다.  조선일보 05월 31일 자 사회면 기사'는  사고 당시 수리공이 개인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는 기사를 전송했다.  구조적 문제라기보다는 노동자 과실로 이 사건을 해석한 것이다. 

일하는 시간에 노동자가 "  딴짓 " 을 하다가 전동차가 진입하고 있다는 안내 방송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 주요 논조'다.  하지만 다음날,   메트로 측은 cctv를 통해  안전 도어 수리 노동자는 사고 당시에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없었다고 최종 확인했다. 하루만 지나도 뒤집어질 픽션을 팩트로 이해하는 기자 정신.  그러니까 조선일보 기사는 100% 오보인 것'이다.  오보라면 정정 보도와 함께 피멍 든 피해자 가족에게 사과를 해야 마땅하지만 그런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1등 신문인 조선일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신문의 품격이다.   

설령, 그가 작업 도중 " 딴짓 " 을 했다는 것이 " 팩트 " 라고 해도 뼈가 부서지는 고통 속에서 죽어간 청년에게 < 네 탓 > 이라고 지적할 필요가 있었을까 ?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낙담. 애도보다 책임부터 따지는 언론. 왜 그렇게까지 모질 게 죽은 자를 질책해야 했을까 ?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기자는 사회적 약자의 불행한 고통은 외면한 채 자신이 속한 조직'을 위해 그들 편에 서서 기사를 작성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보수의 품격인가 ? 열아홉 청년의 죽음을 보자 켄 로치 감독이 연출한 영화 < 내비게이터, 2001년 > 가 떠올랐다.


이 영화는 " 영국 철도 민영화 이후 " 를 다룬다. 대처가 후계자로 지목한 존 메이저 총리'는 철도 민영화'를 1995년에 시작해서 1997년에 마무리했지만 결과는 재앙이었다. 1997년 급행열차와 화물열차가 충돌해 7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1999년에는 래드브로크 그로브에서 열차 충돌이 일어나 31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사고 원인은 민간 철도 기업인 " 레일 트랙 " 이 비용 부담을 이유로 자동안전장치를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의역 안전문 사고도 핵심은 " 사람보다는 돈 " 이라는 사고 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비용 절감을 위한 외주업체의 노동자 인원 감축이 주요 원인'이다.

영국 철도 민영화 이후의 흑역사를 보더라도 대형 참사'에는 인건비 절감을 위한 노동자 감축이 있었다. 이 시기에 철도 노동자는 16만 명에서 1997년 9만 2000명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국민 생명과 관련이 있는 안전 부문의 외주화가 위험한 이유'이다. 끼니를 때울 시간마저 주지 않는 노동 환경은 외면하면서 근로자의 근태를 직면하며 쓴소리를 내뱉는 기자에게 묻고 싶다.  밥은....... 먹고 다니니 ?  너, 착한 놈인 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3)

 

 

딴소리      ㅣ      마음에는 없는데 인사치레'로 하는 말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하는 말이 대표적이다. " 왜 벌써 가시려구요 ? " 눈치가 없는 시어머니라면 며느리의 말에 주저앉겠지만 대부분은 빈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쩌다 오면 손님이 되지만 자주 오면 진상이 된다. 박근혜를 보면 한편으로는 부럽고 한편으로는 부끄럽다. 남들은 내 돈 내고 여행을 하는데 박근혜는 국민 세금으로 세계 여행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국내보다 국외에 머무르는 나날이 더 많은 것 같다. 이 정도면 타자(他國)에 대한 민폐가 아닐까. 명색이 한 나라 대통령이니 오지 말라 할 수는 없는데 허구헌날, 참새가 방앗간 찾듯이 뻔질나게 귀빈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오니 난처할 것이 분명하다. 부끄럽구요, 부끄럽구요. 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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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사용하는 < 단도직입/ 單刀直入 > 도 " 칼 들고 난장 부리겠다 " 는 뜻이다.

2)      1시간 이내에 사고 현장에 도착하지 못하면 하청(계약 乙)은 원청(계약 甲)에게 약속 위반에 따른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고 한다.  열 아홉 청년이 서둘러 안전문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나간 이유에는 그 계약 조건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문득 당일 배송을 하지 않았다고 항의를 하던 내 모습과 오버랩되었다. 혹시,  내 불평이 담당 택배 노동자에게 불이익이 주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소비자로서 당연한 권리'가 누군가에게는 불이익이 되는 구조. 생각해 볼 문제'다

3)      " 너 착한 놈인 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마음 이해하지 ? "  영화 << 복수는 나의 것 >> 동진(송강호)이 유괴범 류(신하균)에게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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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과의 품격
    from 새빨간 활 2016-06-03 13:20 
    사과의 품격 노인 한 명이 죽으면 거대한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고 청년 한 명이 죽으면 작은 우주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문학적 표현으로 과장이 팔 할이지만 노인의 지혜와 청년의 우주'라는 비유가 틀린 말은 아니다. 선량한 시민이 억울하게 죽어나가는 것은 자본주의적 시각으로 해석해도 큰 손해'다. 조선일보는 5월 31일 자 신문에서
 
 
2016-06-02 09: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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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2 09: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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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2 09: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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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2 10: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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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2 1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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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2 10: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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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2 10: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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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2 10: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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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6-02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혜 누님이 체력이 좋은가 보다 해요. 적은 나이도 아닐 텐데...
이명박 보다 더 자주 나라를 비우는 것 같더군요.
아버지는 나라 비우면 안 된다고 재임 기간 어디 순방했단 소리 못 들었는데 말임다.

우리나라 거지 근성 뭐라고 하지만 갑질 근성은 정말...ㅠ

곰곰생각하는발 2016-06-02 16:15   좋아요 0 | URL
체력 나빠도 전혀 상관없죠. 비행기 안에 주치의 있겠다.
비행기 내리면 알아서 기사들이 숙소 데려다주겠다.
여행 시 신경 쓸 일 비서들이 다 하겠다..
뭐 물 한 잔 마시는 것도 다 시중 드는 사람이 하겠다..
손가락 움직일 일만 있으면 일년 내내 여행해도 불편한 점 없을 겁니다.
이걸 국민 세금으로 쑤셔박는다는 게 문제..

수다맨 2016-06-02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켄 로치 같은 사람들이 든든하고 미덥더군요.
제 친구는 켄 로치를 가리켜 매일 비슷한 얘기만 하고, 사실주의에만 완강히 얽매인 사람이라 비판을 하던데, 그럼에도 켄 로치의 작품이 지니는 위의나 가치는 절대로 얕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야만과 억압의 시대에 살다 보니, 켄 로치 같은 사람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6-02 20:29   좋아요 0 | URL
노동 문제. 자본 착취의 형상은 각 나라마다 다를 것 같지만 사실 전세계적으로 모두 공통점 형태를 취합니다.노동문제에 집착하는 감독이니 매일 비슷한 이야기처럼 보일 것은 분명합니다. 전.. 켄로치 영화 보면서 단 한번도 그게 그거 같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늘 새로운 이야기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