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엄마는 있니 :
꼭꼭 숨어라, 몸통 보일라
괴수 怪獸 를 좋아하다 보니 괴수가 등장하는 영화는 의무감으로 보곤 한다1). 지루하기 짝이 없는 멜빌의 << 백경 >> 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은 데'에는 < 위대한(great) 문학 > 에 대한 갈망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 거대한(moby) 녀석 > 의 활약상을 보기 위해서다. 거대 개미도 있고, 거대 거미도 있으며, 거대 어미2) 도 있다. 와와, (괴수 종류가 다양하니) 재미'도 있다. 뭐니 뭐니 해도 괴수물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괴수가 등장하는 장면. 그중에서도 백미는 괴물의 전신-숏'이 아닐까. 머리부터 꼬리'까지, 몸통이 드러났을 때 느끼게 되는. 아아, 아찔한 쾌감. 시커멓고 끈적끈적거리며, 울퉁불퉁하고 뒤틀린 하드 바디(hard body)는 경이로웠다.
저, 피조물은 신이 짜놓은 설계'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돌연변이'에 해당되지만 나는 돌연변이'가 인간을 이기기를 바랐다. " 비록, 이 형은 먼곳에 있으나 마음만은 너를 응원하마. 부디, 살아서 너의 뭉툭한 발바닥으로 이 찬란하고 오만한 도시를 짓밟아다오. 역사는 말한다. 창조는 파괴에서 비롯되나니 네가 즈려 밟고 지나가는 길에 무한한 영광 있으라 ! " 나태주 시인이 << 풀꽃 >> 이라는 시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말했듯이, 괴수 또한 자세히 보면 예쁘고 오래 보다 보니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너무 큰 것(괴수)과 너무 작은 것(풀꽃)은 서로 상반되는 몸뚱아리를 가지고 있지만 둘 다 " 시각의 사각지대 死角地帶 " 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닮은 꼴이기도 하다.
무슨 말인가 하면 : 너무 작아도 볼 수 없지만 역설적으로 너무 거대해도 볼 수 없다. 지구인이 지구의 구형을 볼 수 없듯이 말이다. 괴수는 거대해서 작은 존재'다. 그렇기에 괴물은 나에게는 미물(微物)이어서 연민의 대상이었다. 영화에서 괴물이 등장하게 되면 과학자들이 제일 먼저 분석하는 것은 << 괴물의 발생학 >> 이다. 어린 놈이 버르장머리가 없으면, 윗마을 어르신이 대뜸 던지는 말이 < 뉘 집 자식 - 論 > 이듯이, 괴수가 탄생하게 되면 그 어미부터 찾게 된다. " 넌, 뉘 집 자식이니 ? " 하지만 괴수에게는 어미가 없다. 그것들은 스스로 폐허 속에서 태어나서 스스로 자라나 비장하게 죽는다.
영화 << 마더 >> 에서 김혜자가 자기 아들 때문에 억울하게 누명을 쓴 종팔이'를 향해 " 너 엄마는 있니 ? " 라며 울먹거렸듯이, 나는 죽어가는 괴수를 보며 꽉 쥔 주먹을 입에 물며 이렇게 묻곤 한다. " 너...... 부모님은 계시니, 엄마....... 없어 ? " 엄마 없는 하늘 아래'에서 돌연변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비참이다. 누가 이 괴수에게 돌을 던지랴. 눈물이 앞을 가린다. 하지만 괴수 영화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어미 없이 태어나는 짐승'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는 법이니깐 말이다. 결국 그들이 찾아낸 어미는 " 핵 방사능 " 이다. 핵 방사능 누출로 돌연변이가 탄생했다는 논리'이다. 그들이 보기에 핵 방사능'은 괴수가 태어난 자궁이요, 탯줄이자 동시에 모유'이다.
이 오브제는 개연성 없는 엉터리 줄거리'를 그럴 듯하게 풀어낼 수 있는 만능 열쇠'다. 설명이 불가능한 것은 모두 방사능 누출 탓으로 돌리면 되니까. 마치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가 프로이트의 범성론을 비판하면서 말했던 조롱과 오버랩된다. " 꿈에 막대기가 나오면 페니스라고 말해. 안 그러면 따귀를 맞을 테니깐...... " 괴수 영화가 엉터리 줄거리'를 봉합하기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 어미3) 를 호출하듯이, 기생충 같은 정치인은 항상 무력한 야당의 책임을 " 친노 패권 세력 " 으로 돌린다. 모든 잘못의 원인은 친노의 갑질'이다. 그런데 정작 친노 패권 세력'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다. << 패권(을 행사하는 자) >> 란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호기를 부린다는 의미'이다.
그런 점에서 친박이야말로 진정한 패권 정치 세력'이다. 어흥 !!!! 그들은 박근혜라는 거죽을 뒤집어쓰고 호랑이처럼 군림하니깐 말이다. 권력은 산 자에게서 나오지 결코 죽은 자의 곁에서 나오지 않는다. 여우가 호랑이 흉내를 낼 수 있는 데에는 호랑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사실은 친노 패권'이라는 프레임이 허구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정승이 죽으면 문상객이 없어도 정승댁 개가 죽으면 문상하러 오는 사람이 있는 법이요, 죽은 정승이 산 개만도 못하다는 속담도 같은 맥락'이다. 노무현은 죽은 자이지 산 자'가 아니지 않은가 ? 또한 문재인이 당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고 이해찬과 정청래가 컷 오프로 후보 경선에서 탈락되었다는 점도 이 악의적인 프레임이 허구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 친노패권주의 " 가 먹히는 이유는 유권자들이 주류 언론의 프레임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데 있다. 친노 세력은 이미 폐족이 된 지 오래이다. 여전히 친노 세력을 들먹이며 날선 공격을 하는 이들에게, 혹은 주류 언론의 나발에 추호의 의심도 없이 좀비처럼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나는 묻고 싶다.
너, 엄마는 있니 ?
1) 심형래 표 괴수 영화들도 빠짐없이 보았다. 티라노의 발톱에서 용가리까지. 괴수에 대한 애정은 스플래터 괴물들과 좀비물로 확장되었다.
2) 피터 잭슨의 << 데드 얼라이브 >> 에서는 위대한 엄마'가 아닌 거대한 어미'가 등장한다. 피터 잭슨 영화 가운데 가장 웅장한 영화가 << 반지의 제왕 >> 시리즈'라면, 가장 피터 잭슨'다운 영화는 << 데드 얼라이브 >> 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