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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나 면   끝 난 다




 

필리버스터와 천일야화

                                                                                                                                                                                                                                                                                                         샤흐르야르,  그는 아라비아의 < 왕 > 이다.  " 하아, 부우우럽다아아아아 ~  " 하지만 그는 세상을 다 가졌으나 행복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첫 번째 아내가 바람을 피우자 분노한 왕은 아내를 죽이고 두 번째 아내를 얻지만 두 번째 아내 또한 바람을 피우네.  

이 패턴(아내의 부정)이 반복되자 샤흐르야르 왕은 여성을 극도로 혐오하게 된다.  그래서 왕은 결혼 첫날/밤에 " 거사 " 를 치르고 나서 아내가 바람을 피우기 전에 미리 죽인다.  앞으로 벌어질 정염의 불씨를 애초에 꺼버리겠다는 발상.  혼례 가마는 곧 장례(식장)로 가는 꽃가마인 것이다.  이 기본적인 서사 - 뿌리'를 바탕으로 샤흐르야르 왕을 프로파일링하자면   :   그는 < 조루 > 였을 가능성이 높다.  뽀로로 주제가 1절'조차 완창하지 못할 능력을 가진 고개 숙인 남자이다 보니 왕비 입장에서는 한 대 차 주고 싶은 왕의 등짝.  어린 신부는 차가운 식혜도 아니면서 차갑게 식어버린,  등 돌린 등신(等身)을 보며 속으로 이렇게 외쳤으리라.   " 이런~ 등짝 ! "

왕이 LTE급 조루이다 보니 엑스타시를 경험하지 못한 왕비'는 젊은 남자 품에 안긴다(라고,   나는 당당하게 황당한 주장을 하는 바이다).  아라비아 구중궁궐 속 야사(野史)가 이러하니, 왕과 결혼한 젊은 여자'는 모두 죽는다. 하지만 왕의 청혼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왕이란 절대 존엄이자 절대 권력이기 때문이다. 이때 등장한 여자가 바로 세헤라쟈데'이다. 그녀는 첫날 밤에 왕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리트리버 귀처럼 축 늘어졌던 왕의 귀가 진돗개 귀처럼 봉긋 솟아올랐다.  일일 드라마 연속극의 탄생을 알리는 시발점'이다. 세헤라쟈데가 왕에게 속삭이는 드라마는 흥미진진하다. 재미꾸나. 왕은 넋을 놓고 귀를 기울인다.  드라마 속 출생의 비밀이 누설되는 직전에 세헤라쟈데는 느닷없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다음 이 시간에....... "  

그러니까, 다스 베이더가 아들인 스카이워커에게 " 내가 네 애비다 ! " 라고 외치기 전에 세헤라쟈데'는 방송을 끊는다. 드라마에 푹 빠진 경험이 많은 대한민국 시청자'라면 왕의 애타는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왕은 이야기의 끝을 알기 위해 곶감 항아리에서 곶감을 한 개씩 빼먹듯이 아내의 처형을 하루하루 미룬다. 하지만 드라마'라는 것을 생선회와 비슷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회를 거듭할수록 신선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럴 때는 시청자의 뒤통수를 치는 수밖에 없다.  막장 드라마는 바로 이 지점에서 탄생한다.   이번에는 레아 공주가 스카이워커에게 " 사실은......  내가 네 에미다 ! " 라는 대사를 내뱉을 것만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다가 이내,  " TO BE CONTINUE...... "  

이런 식으로 네버 엔딩 스토리는 1001日이 흘러가고...   왕과 왕비 사이에 세 자녀'가 탄생한다.  아마도 왕은 드라마를 보시다가 김한길처럼 샛길'로 빠지신 모양이다. " 오랜만에 누워보는군. "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이 든 까닭일까 ?   왕은 자신이 지난날에 했던 과오를 크게 뉘우친다.  샤흐르야르 왕과 세헤라쟈데 왕비는 그 후,  백년해로했다는 이야기.

 

 

내가 최근 비상 시국인 대한민국에서 절찬리에 진행 중인 " 필리버스터 " 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 천일야화 >> 를 떠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두 서사'는 꽤나 닮았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전시와 사변에 준하는 비상사태를 선포1)   하면서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에 붙이자 제2의, 제3의 세헤라쟈데 연합이 필리버스터'라는 드라마'를 만들어 맞불을 놓는다. 그들은 테러방지법을 지연하기 위해 24시간 내내 쉬지 않고 시청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아, 가혹하여라. 이야기가 멈추는 순간,  늙은 왕은 의사봉을 두드리며 자유와 민주'에게 사형 선고를 내릴 것이다.  

앞으로 시민의 팬티 속 속사정'까지 훔쳐볼 수 있는 감시 사회가 도래하는 것이다.  << 천일야화 >> 와 << 필리버스터 >> 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 끝나면 끝난다 "  그렇지만 << 천일야화 >> 와 << 필리버스터 >> 의 결말은 전혀 다르다.  천일야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테러방지법을 저지하기 위한 필리버스터는 테러방지법을 방지하지 못한 채 새드엔딩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늙은 왕'이 계과천선할 것 같지는 않다.   누군가는 필리버스터 행위'를 두고 이렇게 비판할 것이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말이다. 이 비판은 옳다. 하지만 옳지 않기도 하다. 진짜 < 정의 > 란 못 먹는 감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찔러보는 행위가 아닐까 ?   다윗은 골리앗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골리앗에게 < 돌 > 을 던졌을까 ?  

끝나면 끝난다.  시청자는 드라마의 끝이 궁금하듯이, 필리버스터의 끝도 궁금할 것이다. 결말은 불 보듯 뻔하다.  이 드라마의 끝은 " 국가는 당신이 지난밤에 한 일을 알게 된다" ■

 

 

 

+

다음은 필리버스터 진행 중에 언급된 도서 목록이다

 

 

 

 

 


 




 

 

 

 

 

 

 

 

 

                                    

1) 전시와 사변에 준하는 비상 시국에 박근혜는 젊은이들과 만나 손가락 하트를 만들며 해맑게 웃고 있다.  박근혜가 손가락 하트'를 그리는 순간 정의화는 정희화'가 된다.  손가락 하트'가 이렇게 징그러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각하, 비상 시국입니다.  동촉하여 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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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6-02-29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걸쭉하고 왁자한 얘기 즐겁네요. ㅋㅋ

며칠 전 세월호 충격으로 아이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키우고 싶었다며 먼 나라로 이민 간 언니(과 선배)와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지요. 언니 따라 나도 뜨고 싶다고 하며...
이 나라 시민, 서민들 마음 속에 비슷한 꿈들 품고 있겠지요. 희망을 얘기하기도 지치는 이곳을 떠나고 싶은 소망.

곰곰생각하는발 2016-03-01 14:17   좋아요 0 | URL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떠나야지요.. 저도 여건되면 여기 떠납니다..
아이들에게 지옥인 나라는 변명할 필요 없이 지옥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이 지표 아니겠습니까..
누누이 하는 주장이지만 비장애인이 행복한 사회보다는 장애인이 행복한 사회가 진짜 행복한사회입니다..

새아의서재 2016-03-01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적인 글이지만, 결론은 불보듯 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끝이 나면 다시 더 힘찬 시작이 있기를. 오늘 기사에서 보니 김남주씨도 읽어주셨더군요. 기사 속 김남주 시 읽고 울컥했어요. ㅜ ㅜ

곰곰생각하는발 2016-03-01 14:15   좋아요 0 | URL
필리버스터 중단한다는 기사가 나왔네요. 뭔가, 야당은 이 현상을 잘못 받아들이지 않았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