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빈민들  :  드라큘라 그리고 사도세자

 

  

메트로폴리스로 향했던 사람들은 사막으로 떨어졌다

    - 페페 칼레

 

                                                          저택1과 주택은 사소한 < 한 끗 > 차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이즈가 다르다. < 주택 > 이냐 < 저택 > 이냐를 가르는 기준은 내 방에 거실이 있는가 / 없는가에 달렸다. 내 방에 거실2이 있다면 그 집은 주택이 아니라 저택이다. 방 안에 거실이 있는 풍경이 괴이하지 않는 것처럼 저택 안에 집이 있다는 표현도 그다지 어색한 표현은 아닐 것이다. 단순한 공식으로 설명하자면  :  상류층은  방 안에 거실'이 있는 저택에 살고, 중산층은 방이 있는 집에 살고, 빈민층은 방은 있으나 집은 없는 곳에서 산다. 방은 한 그릇의 " 따순 " 밥과 같다.  세 가지 기본 요소에 속하는 의/식/주에서 < 방 > 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주(住)의 최소 단위'인 셈이다.

옥탑 방이란 말은 자연스럽지만 옥탑 집이란 표현은 어색한 이유이다. 반 지하 방이란 표현도 마찬가지그런데 빈민층 중에서도 극빈층은 최소 주거 환경인 방에서조차 살지 못한다. 그들은 < > 이 아니라 < 쪽방 > 에서 산다. “ 쪽방 은 온전한 방이라 할 수 없다. < 쪽 > 이 " 쪼개진 물건의 한 부분 " 이라는 사전적 의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쪽방은 주(住)의 최소 단위라 할 수 있는 방이 쪼개진 형태를 의미한다. 그것은 방이 아니라 파편'이요, 조각'이다. 이 곳에서 쪽방 벽은 독립, 분리, 분할 기능을 담당하지 못하고 단순히 사무실 파티션으로 쓰일 뿐이다. 시선은 차단되지만 소리는 공유된다. 파티션(partition)이란 시야를 차단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니 말이다. 쪽방이라는 공간에서 모든 소리는 소음이 된다.

고시원((考試院)은 이름만 다를 뿐 쪽방을 확장한 형태다. 재미있는 사실은 고시원3에서 < - 원 /院 > 의 쓰임'이다. < 院 > 은 언덕((=)과 담장()으로 이루어진 한자'다. 다시 말해서 주위에 담을 두른 초원 위의 저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비극이다. 그러니까 방의 온전한 형태를 갖지 못한 그들이 사는 곳은 주위에 담을 두른 저택'에 산다는 것은 모순이자 비극인 것이다. 21세기 하꼬방인 고시원(고시텔)이라는 이름은 도시 빈민이 꿈꾸는 희망사항이자 동시에 유토피아에 가까운 지옥'이다. " 고시텔(-tel) " 은 " 고시헬(-hell) " 이다.  그들은 쥐 죽은 듯 살아간다. 살아도 사는 게 ~ , 아닌 것처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쪽방 거주자는 한 방에 모여사는 동거인이지만 왕래는 없는, 하지만 소리를 공유하는 이상한 공동체'다.

이 두 공간은 불평등한 자본주의적 세계가 폭주한 결과'이다. 고시원의 탄생은 아파트 난립과 맥을 같이한다. 달동네가 아파트촌으로 바뀌자 저가 주거 형태인 단칸방을 빼앗긴 달동네 빈민 가족은 각자 뿔뿔이 흩어져 1인 주거 공간으로 터를 잡기 시작했다. 이처럼 한쪽은 방 안에 거실이 있고 집 밖에 저택이 있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 > 보다 조금 넓은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점에서 관 속에서 산다. 드라큘라는 쪽방 거주자. 명색은 백작이지만 사는 곳은 2평 남짓한 관 속이니 말이다. 그는 몰락한 가문의 후손으로, 흡혈 후의 모습은 마치 폐병 환자가 쏟아내는 각혈처럼 보인다. 그는 결핵균을 보유한 빈자'라는 점에서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할 불가촉천민인 것이다. 드라큘라 서사는 이종(異種)에 대한 차별, 그리고 나쁜 피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텍스트'다.

그것은 주류가 비주류(소수자)에게 보내는 폭력의 서사이며 중심이 변방을 바라보는, 혹은 제국이 식민지'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주류이자, 중심이자, 제국주의자가 보기에 드라큘라는 가까이 하면 위험한 불가촉천민일 뿐이다. 조선 왕조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물로 기록될 사도 세자'는 드라큘라'와 닮은 꼴이다. 뒤주는 드라큘라의 관이요, 쪽방'이다. 아버지 영조는 아들에게 주거지 강제 퇴거 명령을 내린다. " 너는 궁원(宮園 집 궁, 동산 원)에서 살 자격이 없는 놈이다. 시궁창에서 살거라 " 그에게 내린 형벌은 뒤주라는 쪽방으로 내쫓는 것이다. 이 사건은 두 가지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하나는 금단의 열매를 따 먹은 벌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에 대한 이야기와 다른 하나는 임신거부증에 걸린 임산부(-夫)에 대한 이야기'다.

 

영조는 임신거부증에 걸린 임부'다. 그가 머무는 거처는 서래마을'이며 그는 베로니크 쿠르조'이다. 그는 못난 자식의 아비란 사실을 거부한 채 아들을 궁 밖으로 쫓아낸다. 이 두 개의 서사'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자식을 안락한 자궁(에덴 동산과 궁원)에서 내쫓는다는 데 있다. 한자 궁(宮)에는 오형(五刑)가운데 하나인 " 생식기를 없애는 형벌 "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또한 宮 은 시체를 넣는 관'을 닮았다. 실제로 이 한자'에는 시체를 넣는 관이나 궤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 널 > 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보다 더 " 몰락의 통증 " 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치는 없다. 사도는 따순 피와 부드러운 살로 이루어진 자궁이 아니라 나무 궤짝으로 만들어진 가짜 자궁 속에서 미숙아로 죽는다. 그는 완생(完生)이 아니라 미생(未生)이다. 

그의 사인은 사산(死産)이다. 쪽방 거주자도 이와 닮았다. 죽지 못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관 속에서 쥐 죽은 듯 살아간다. 달동네를 강제 철거하고 아파트를 세운 국가와 자본은 달동네 원주민을 보이지 않는 곳에 분산시켰다. 도시 빈민은 더 이상 빈민촌이나 판자촌에 살지 않는다. 그들은 원룸이라는, 미니텔이라는, 리빙텔이라는, ~ 하우스라는 곳에서 산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슬럼가가 없는 이유이다. 

 




 



 

  1. 저택(邸宅) : 1. 규모가 아주 큰 집 2. 예전에, 왕후나 귀족의 집
  2. " 내 방 거실에 텔레비젼에 생겼어요 ! " , 이다인
  3. 쪽방이 고시원이란 이름으로 포장되었다면 고시원은 이후, '원룸텔', '미니텔', '미니 원룸', '리빙텔', '~하우스' 등으로 빈민의 흔적을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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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지나가는이 2016-01-12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번글은 정말 좋아요. 읽다가 소름 돋았어요. 이렇게 해석이 가능하군요. 상상도 못했네요. 아니 어떻게 이런 해석을 내릴 수있죠? 사도에 대한 리뷰 중 가장 참신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님 크레이지보이 아니 원더보이예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12 12:2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드라큘라 생각하다가 문득 다르큘라와 사도세자가 좀 비숫한 구석이 있더군요........ 개인적으로 저도 마음에 드는 글입니다.

stella.K 2016-01-12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택이 그런 뜻이었나요?
전 무조건 크고 궁전 같은집인 줄 알았다는...
얼마 전 런던도 치솟는 월세난 때문에 보트 생활자가 늘어난다고 하던데
우리나라도 언젠간 저 지경 나겠지 싶어 한숨이 나오더군요.ㅠ

곰곰생각하는발 2016-01-12 12:26   좋아요 0 | URL
대저택이라는 말은 있지만 소저택이라는 말은 없지 않습니까. 후후..
영국 보트 그거 국회의원인가 그 사람이 그렇게 산다고 하죠 ?
근데 보트 가격이 장난이 아닐텐데 말입니다. 고거 하나 팔면 전세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samadhi(眞我) 2016-01-12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큘라를 빈민으로 만들어버리는 힘센 곰발님 드라큘라가 들으면 자만심 상해 목덜미를 물려고 덤벼들지도 몰라요. 목도리 하고 댕기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12 16:59   좋아요 0 | URL
뭐 한국 정부처럼 드라큘라 씨가 나를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걸겠습니까... 마늘 잔뜩 먹어놯야 겠ㅅㅂ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