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전략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 .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무턱대고 욕하진 말아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그게 뭐 잘못됐어?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 만날 나와서 사자한테 잡아 먹히는 동물 있잖아, 톰슨가젤. 걔네들 보면 사자가 올 때 꼭 이상한 데서 뛰다가 잡히는 애 하나씩 있다? 내가 걔 같애. 남들 하는 대로 하지 않고 여기는 그늘이 졌네, 저기는 풀이 질기네 어쩌네 하면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있다가 표적이 되는 거지. 하지만 내가 그런 가젤이라고 해서 사자가 오는데 가만히 서 있을 순 없잖아.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은 쳐 봐야지. 그래서 내가 한국을 뜨게 된 거야.
ㅡ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11쪽 요약 발췌 편집
 

정당은 집권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 집권 " 을 하게 되면 " 장기 집권 " 을 꿈꾸게 된다. < 집권 > 이라는 단어는 크게 두 가지 갈래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集權 : 모을 집 + 권력 권)이고 다른 하나는 執權 : 잡을 집 + 권력 권)이다1. 나는  처음에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의 한자 조합이 集權인 줄 알았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전제주의와는 달리 삼권분립이라는 장치로 권력 독점을 견제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기 있는 정치인이라 해도 그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1표일 뿐이니깐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집권 여당, 집권 세력, 장기 집권이라는 표현을 쓸 때 사용하는 집권은 바로 執權 이다. 화장실에서 똥을 누며 사전을 보다가 문득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서로 힘(권력)을 규합한 형태인 集權과 단순하게 힘(권력)을 잡은 執權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  의문점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조급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화장실을 나와 책상 앞에 앉아 조사해 보리라. 성급한 마음이 내 항문에 무리한 압력을 가했다. 치질학과 지질학의 공통점은 압력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데 있다. 웃자고 한 소리가 아니다.  한자 < 執 : 잡을 집 > 은 幸 : 쇠고랑 행'과 丮 : 잡을 극(꿇어 앉아 두 손을 내밀고 있는 모양새)이 결합한 합자(合字)다. 결국 집권이란 상대방을 힘으로 제압하여 무릎 꿇린 다음 두 손을 밧줄로 꽁꽁, 밧줄로 꽁꽁 단단히 묶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반 민주적 한자 조합인 셈이다. 이명박근혜 정권이 저지르는 패악을 떠올리면 이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행간이 절묘하다는 생각 때문에 무릎 탁, 치고 아, 하게 된다.

시민의 두 손뿐만 아니라 두 발, 나아가 입도 꿰맬 기세'다. 안철수가 화장실에서 이 두 단어가 가지고 있는 차이점을 발견했다면 탈당이라는 결심은 포기했을 것이다. 야권은 생래적으로 힘이 약한 集權 세력이다. 힘이 약하다 보니 執權 세력과 싸우기 위해서는 야권연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고 김근태 의원이 < 야권연대 > 만이 살 길이라고 외친 이유이다. 작은 힘을 모아, 모아, 모아, 모아서 싸워야 한다. 그런데 안철수는 이러한 연대를 구태의연한 낡은 정치라고 생각한다. 시베리아 벌판에서 혼자 싸우리라 !  이런 병법은 백전백패'다. 단단한 바위에 구멍을 뚫는 것은 < 물방울 > 이 아니라 < 물방울ㅡ들 > 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  권총 든 상대방을 상대로 물총으로 싸우겠다는 판단. 장강명 소설 << 한국이 싫어서 >> 에 나오는 계나의 독백을 빌려서 안철수의 속내를 까발리자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

 

" 왜 새민련'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 새민련이 싫어서 .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무턱대고 욕하진 말아줘. 내가 비록 정당을 만든 창업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그게 뭐 잘못됐어? () 난 정말  경쟁력이 없는 민주당에서는 살 수 없는 인간이야.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막 그런 걸 따져.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 만날 나와서 사자한테 잡아 먹히는 동물 있잖아, 톰슨가젤. 걔네들 보면 사자가 올 때 꼭 이상한 데서 뛰다가 잡히는 애 하나씩 있다? 내가 걔 같애. 남들 하는 대로 하지 않고 여기는 그늘이 졌네, 저기는 풀이 질기네 어쩌네 하면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있다가 표적이 되는 거지. 하지만 내가 그런 가젤이라고 해서 사자가 오는데 가만히 서 있을 순 없잖아.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은 쳐 봐야지. 그래서 내가 새민련을 뜨게 된 거야. "

소설 속 계나와 안철수는 닮은 구석이 있다. 그들은 톰슨가젤과 연대하여 사자와 맞짱을 뜰 전략을 짜기보다는 우리 밖으로 도망치는 방법을 선택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계나의 도주는 애국심 따위는 없다는 태도인 반면 안철수는 애국심 때문에 도망쳤다고 고백한다. 안철수가 내세운 탈당 명분은 거창했다. 새누리의 집권을 막겠단다. 톰슨 가젤 무리가 우르르 몰려다니며 사자의 먹잇감이 되는 꼴이 어리석어 보이겠지만 내가 보기엔 무리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이 백 배는 더 위험한 행동이다. 무리에서 벗어난 톰슨가젤은 어떻게 되었을까 ? 생존확률로 보았을 때 단독자보다는 무리 속에서 생활하는 게 생존에 도움이 된다. 톰슨가젤 한 마리의 죽음은 톰슨가젤 전체의 평화를 가져다 준다. 배부른 사자'는 코 앞에 먹잇감이 있어도 사냥을 하지 않으니까.

톰슨가젤 무리가 100마리'라고 했을 때, 자신이 죽을 확률은 1/100'이다. 반면 무리에서 벗어난 톰슨가젤이 사자 무리를 만났을 때 죽을 확률은 ? 톰슨가젤의 최고 속도는 80km/hr이다. 사자도 최고 속도는 80km/hr이다. 그런데 어쩌나 ?  사자는 사냥을 할 때 무리끼리 합동 사냥 전술을 편다. 톰슨 가젤이 1000미터를 존나게 달릴 때 사자 열 마리는 각자 자신이 맡은 100미터만 전속력으로 질주한다. 서로 협력하여 바톤 터치를 하는 것이다. 지치는 것은 사자가 아니라 톰슨가젤이다. 무리에서 벗어난 톰슨가젤이 죽음의 경주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안철수를 보면 자꾸 톰슨가젤이 떠오른다. 연대(集權) 없는 執權은 불가능하다. 김영삼은 3당 합당을 해서 대통령이 되었고,

김대중은 JYP연대로 정권을 잡았으며, 노무현은 정몽준과의 연합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 모든 것은 연대의 힘이었다. 진보가 정권을 장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보는 장기 집권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반면 보수가 집권하게 되면 진보 세력보다 장기 집권 할 확률이 더 높다. 왜냐하면 < 밥그릇 > 을 놓고 진보와 보수가 서로 다른 성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진보는 밥그릇 크기를 줄이는 한이 있어도 밥그릇 수를 늘리는 정책을 편다. 그것이 진보의 기본 자세'다. 예를 들면 밥이 모자라면 밥 한 숟가락씩 덜어서 100개의 밥을 만드는 것이다. 보수도 겉으로는 밥그릇 크기를 줄여서 밥그릇 수를 늘리자고 말은 하지만 속내는 전혀 다르다. 그들은 오히려 밥그릇 수를 줄인다.

그렇다면 < 밥그릇 수를 줄이는 게 왜 보수의 장기 집권에 유리 > 할까 ? 사람 수에 비해 밥그릇이 줄어들면 " 경쟁 " 이 발생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밥그릇 수를 더 많이 줄이면 경쟁은 더욱 치열하게 진행된다. 밥그릇 수를 줄일수록 상황은 " 발등에 떨어진 불 " 이 된다. 그렇게 되면 자기 " 앞가림 " 하기도 바쁘기 때문에 주변을 돌볼 여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들은 서로 이편 저편 나뉘어서 싸우게 된다. 보수 집권 세력 입장에서 보면 노동자의 단단한 연대(集權)보다는 노동자 간 분열(分裂)이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그들은 항상 분열 정책을 펼친다. 이명박근혜는 밥그릇을 모자랄 정도로만 공급한다. 그러면 젊은 세대들은 모자란 밥그릇을 차지하기 위해서 서로 싸우게 된다.

연대의 힘은 그만큼 약해지는 것이다. 세대 간 갈등으로 시작해서 지역 간 갈등, 심지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골도 깊다. 어디 그뿐인가 ? 로스쿨 학생과 고시생 간에도 감정의 골이 깊다. 그들은 서로 상대방을 향한 증오(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 현상들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이데올로기 갈등에서 밥그릇 갈등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보수 집권 세력이 오랜 시간 공을 들여서 만들어놓은 세계다. 장기 집권을 꿈꾸는 보수 집권 세력 입장에서는 백성이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다.

  





 

  1. 전자는 권력을 한군데로 모음이라는 뜻이고, 후자는 권세나 정권을 잡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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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1-04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사람들이 독립심이 의외로 강하잖아요.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줄부터 긋고, 쫓아내거나 나가라고 그러고.
그러니 이참에 독립하자. 뭐 그래서 떨어져 나와서 교회도 세우고, 회사도 만들고,
무슨 당도 만들고 그러는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연대나 연합이 잘 안 되는 민족성을 기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통일 반대론도 나오는 거 아니겠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05 11:14   좋아요 0 | URL
이게 독립심일까요 ? ㅎㅎㅎㅎㅎㅎㅎㅎ
독립심의 발현이라면 환영합니다만.....

그런데 사실 이 나라 정치는 연합을 잘하비다. 3당합당도 그렇고 제와이피연대도 그렇고, 노무현 + 정몽준 연합도 그렇고 말입니다....

5DOKU 2016-01-05 0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뉴스룸 토론을 봤습니다. 알맹이 없는 말만 해대는 안철수 측 패널을 보니 그냥 절망적이더군요. 어찌나 그리도 똑같은 사람들끼리 뭉쳤는지.... 곰곰발님의 비유에 따라 `새민련이 싫어서` 나갔다면 최소한의 비전(살겠다)은 있어야 할 텐데 그게 없어요. 구구절절 진부한 말만 읊어대는데 결국은 그냥 `새민련이 싫어서` 나간 겁니다. 계나는 솔직하기라도 했지요. 물론 아직 신당이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판단하는 건 무리겠지만 뭐 그런 느낌이 있잖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05 11:15   좋아요 0 | URL
안 봐도 비디오죠... 뭐. 저는 소설 속 계나를 지지합니다. 애국 따위는 개나 줘야 합니다.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을 억압한다면 말이죠... 이제는 뒷방 늙은이들이 애국, 애국, 애국하는 거에 질렸습니다.